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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호 Oct 05. 2024

 두 번째 삶으로 찾아온 시

나의 시  쓰기


 

「나의 시 쓰기 」


 04 두 번째  삶으로  찾아온 시   /   김순호




- 인생에 실패하면 재능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시의 세계에 접근하게 된다-

에밀 시오랑 Emil Cioran (1911-1995) 철학자


   나는 언저리에서 글을 기웃거리다 시인이 된 선무당 같은 풋내기다. 내 안의 비애를 

터트릴 곳도 없이 골방에 박혀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을 빈 종이에  쏟아붓다가 운 좋게 

시인이 됐으니 '습관이 운명을 만든다'는 말 또한 나를 지칭한 말이다.  이렇게 겨우 한

발을 내디딘 나에게 '시 쓰기'라는 것이 가당키나 할까?  몇 날 가슴이 두근거리고 신

이 났다.

 

1. 나의 詩. 시원(始源)은  무엇일까


    엄마와 함께 서울서 시작된 1.4 후퇴 피난길. 퍼붓던 눈이 쌓여가는 시체 위로 버려진 한 

아이를 보았다. 눈 물 콧물이 범벅이되 울던. 그 아이가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고 나는 살았다. 

단지 그 아이와 나의 부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외딴 초가의 문간방

갑자기 들이닥친 사내

방문은 국방색 담요로 급히 가려지고

깡마른 몸에 푸르스름한 빛의 남루한 옷차림

신발도 벗지 못한 채 산적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지아비와

깔끔하게 핀으로 고정된 신여성풍 까미 머리의 지어미가

마주 보고 앉아있다

아이는 밥그릇 위로 빙 돌려 올려놓은

물에 씻은 김치를 밥에 얹어 먹으며 힐끔거린다


애원하며 흐느끼는 여인

옷자락을 잡고 매달리는

여인의 손을 잡아떼며 문을 박차고 나가는 사내

떨어져 내리는 담요를 밟고

넘어질 듯 황급히 뒤따라간 여인의 끊어질 듯한 울음소리


얼마나 지났을까

넋이 빠져 들어온 여인은 아이를 안고 또다시 숨죽여 운다

아이가 밥 한 그릇 먹어치운 그 찰나

피붙이 한번 안아볼 여유조차 없는 칼날에 선 사내- 아버지

아이는 고작 그 밤을 유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간직한다


                                             -『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 』부분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전부이자 마지막이다. 아버지는 그때 어디서 나타났고. 또

어디로 갔을까? 다급히 재촉하던 그 사내들은? 아버지는 지리산 어딘가에 묻혔을 것이다.

그때부터 방향을 잡을 수 없는 하얀 백지 같은 절망이 어린 나를 집어삼켰다. 내 앞에 펼

쳐진 세상은 다가갈 수 없는. 어떤 그들만의 축제 그들만의 함성으로 가득했다.


2. 나의 시 쓰기


      나의 시는 대체로 어둡고 우울하다. 흔히 예술가들은 작품이 자신의 운명이 될 수도 있

다는 염려의 말들을 듣는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운명에 저당 잡히듯 행복을 위장한 시를

쓸 수는 없다.

       소설 부분 첫 명문장으로 꼽히는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 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 나름으로 불행하다-

이 말을 난 이렇게 재해석하고 싶다.

-행복은 잠시 불행이 정지된 상태요 불행이야 말로 우리들 삶의 본질이다-라고. 나는 나름 나

름의 불행을 담담히 드러내 누구일지 모를 사람에게 절망을 위로하는 시를 쓰고 싶다.


잔설이 남아있는 정동진 밤바다

한 치의 틈도 없이

하늘과 바다가 마주 붙어 비벼대는 절망을 본다  

누가 저걸

탁 트인 바다라 했을까


                                     -「정동진 」 전문  


     아버지가 산으로 떠난 후 엄마는 나를 업고 날마다 캄캄한 밤바다를 헤매었다. 겨울 바다

는 나의 모태가 되었을까?

겨울이면  어린 엄마를 찾아 태백선 열차를 타고 쓸쓸한 정동진을 찾아간다. 어느새 등짝에 

기대 듣던 엄마의 흐느낌이 검은 파도를 타고 달려온다.

      

      나는 거리를 걷거나 공원 카페 식당 영화관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순간 한 문장으로 다가

오는 시의 싹을 키워 나간다. 되돌아보면 어느 것 하나 한 번에 쓰여진 것 없이 몸살을  앓는다. 

힘들게 발표한 시라 해도 다시 보면 '이게 아닌데' 하는 부분엔  탄식한다. 또 오래  묻어둔 시를

다시 들춰 고치기를 반복하는데 내 경우엔 탈고가 더 어렵다. 


전동차 문이 열리자

빗물에 곤죽이 된 검은 탄 덩이 같은 사람들

왈칵왈칵 쏟아져 나와 넘친다

출정의 북을 치듯

계단을 뛰어가는 부산한 발장단

컨베이어 벨트를

끄덕이며 돌아나가는 통조림의 행렬처럼

두 줄의 에스컬레이터

새카만 뒤통수와 빨간 얼굴들을 쉼 없이 떨궈낸다

저것은 비정한 경주 멈출 수 없는 밥그릇의 행진


                                - 「아침 환승역 」 부분


     어느 날 출근시간 난 환승역에서 사람들에게 떠밀려 나와 한동안 서 있었다. 인간 군상들이 하나

로 엉켜 소용돌이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치열함이 무서웠다. 무서움은 서러움으로  변해 둥둥 북

소리처럼 울렸다.


     시는 다가갈수록 어렵다. 나는 사유의 깊이도 없고 글의 근력도 튼튼하질 않다. 늦은 나이로 시의

세계에 들어선 만큼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읽고 쓰고 해야 할 텐데 생각뿐. 나의 삶은 유한하다.


문자로 날아온 첨부파일

두피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정수리에 얹혀진 부스스한 머리칼

미끄러진 돋보기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있는

이게 누구더라

담벼락에 쪼르르 모여

해바라기 하는 늙은 여자들

무심히 바라보며 지나쳤는데

그 모습이 바로 너라고

인증 샷으로 날아온 첨부파일 사진                         

                                 -「첨부파일 」 전문  


     난 그녀들과 다른 줄 알았다. 핸드폰 첨부파일로 날아온 사진을 보니 아니다. 읊조림으로 다가온 '시'

나는 밤에 천변 걷기를 즐긴다. 물에 거꾸로 처박힌 도시와 어둠을 베는 풀들의 소리가 좋다. 그믐밤부터

점점 차올라 보름달이 되어가는 과정을 거의 다 지켜본다. 이어폰을 타고 흐르는 베토벤이 음표로 받아낸

 '월광'의 달빛이나 쇼팽이 움켜잡은 '겨울바람'을 한 자락도 붙들지 못하고 돌아올 땐 시인으로서의 부실

함에 절망한다.


3. 서정으로 다시 찾은 유년


드럼을 치듯

감잎을 두드려대는 빗소리

처음엔

누군가 담을 넘어오는 듯

이따금씩 마른 흙을 튕겨대더니

두두두

무리 져 밤새 쏟아지는 비


비는 줄지어

수직으로 뛰어내리고

사람들은 우산을 펼쳐 들고 수평으로 걷는다

거리를 덮은 우산들 사이사이로

나는 좀처럼 오지 않는 이의 모습을

폈다 접었다 한다          

                                    -「비 」 전문


      빗속을 걸어오는 우산의 무리 속에서 희망이 숨어 올 것 같다. 아직도 나는 그를 기다린다.

  올해로 등단 7년 차 일곱 살 어린아이에 불과해 의욕만 클 뿐 느끼는 바를 제대로 풀어내지 

한다. 나를 지탱해 준 내 사랑. 내 슬픔에게.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 」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중략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 부분


우리의 삶이 죽음으로 완성되듯  문장의 운명도 끝이 나야 완성된다.

맺음으로 주술의 힘을 빌어 기원하듯 주문한다.

-내가 바라다본 그 느낌 그대로 문장이여 오라 -!


# 위 '글'은 월간『시문학』 2019년 4월호에 게재한 [나의 시쓰기]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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