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시
10월 / 김순호
담쟁이 넝쿨 열매가 점점 까맣게 쪼그라든다
천변의 억새가 하얗게 올을 풀어낸다
나뭇잎들이 수액을 버리기 시작한다
먹이를 보채던 새끼참새들이 어미와 구별되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가 주머니마다
돌멩이를 채워 넣고 강물 속으로 들어갈 때의 외로움처럼
살갗에 한기가 느껴진다
조금씩 낮시간을 잘라내며
검은 산이 먹어치우는 햇덩이를 본다
어느 날인가 멈춘 채
전류를 잡고 있는 에어컨의 굳은 손을 뽑아 펴준다
오렌지빛 하늘을 하얗게 긋고 가는 비행운처럼
날아가는 나뭇잎을 따라간다
거기엔 먼저 도착한 낙엽들이 모여 웅성거린다
시집『아포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