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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너 뭐 하냐? 칼로 뭐 하냐?

3. 돈이라도 벌어서 버텼는데 부도가 나버렸네?

by 휴리네


응급실에 도착했다. 나의 상태를 확인한 간호사는 도착하자마자 대기 없이 나를 침대에 눕혔다. 탈수가 너무 심하다며 곧바로 링거를 잡겠다고 했다. 그러나 왼팔 네 번, 오른팔 네 번을 시도해도 혈관이 잡히지 않았다. 혈관이 금방 도망가 버리는 것 같았다. 너무 아프고 힘들어 말할 힘조차 없었다. 눈물만 조용히 흘렀다. 하지만 눈물조차도 시원하게 나오는 느낌이 아니었다. 내 눈물샘에 샘도 다 말라버렸나보다. 눈이 마르고 불편했다.


그때 남편이 갑자기 혈관을 잡으려는 간호사에게 버럭소리를 질렀다. 나도, 간호사도 깜짝 놀랐다.


“이렇게 많이 찌르면 어떻게 하냐!”

간호사도 이미 부담스러울 텐데, 소리까지 지르면 더 어려워질 텐데…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조용히 해. 제발. 더 부담스러워서 못 하겠어. 유난 떤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왜 난리야…”

팔에는 더 이상 찌를 곳이 없었고, 결국 손목 혈관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경험 많은 간호사가 다가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탈수가 심하면 혈관이 계속 도망가요. 그래도 수액을 맞으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

간호사의 손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힘을 내어 말했다

“넌 잘할 수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다. 두 번째 시도에서 겨우 링거를 연결했다. 휴우 십 년은 감수한 기분이었다.


수액이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느낌이 온몸으로 퍼졌다. 처음엔 시원했지만, 점점 다리가 가려워지고 피부 속이 갈라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느낌이 너무 안 좋았다.


내가 증상을 설명하자 남편은 또 너네들 무슨 실수한게 아니냐며 소리를 질렀다. 간호사들은 따뜻한 수액을 준비해 주고, 속도를 조절해 주었다. 조금씩 안정을 찾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이렇게 깊이 잠든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깨어나 보니 나는 입원실로 옮겨져 있었다.


눈을 뜨자 산부인과 전문의가 와 있었다. 의사는 나를 살펴보더니 남편을 향해 엄하게 말했다.

“식도도 다 상했고, 몸무게도 너무 많이 빠졌고, 아기도 너무 작아요. 대체 왜 이렇게 방치했습니까"

의사는 5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분이었는데, 나처럼 작은 산모는 처음 본다고 했다.

아무리 키가 작아도 그렇지, 임신 6개월이 넘었는데 38kg인 산모는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볼 일이 없을 거라면서 생명이 태어나기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다해야하는지 부모란 무엇인지에 대해 소리높여 술 냄새를 풍기는 남편을 향해 크게 호통쳤다. 그러면서 이제부터 직접 출산까지 관리할 거라면서 3주에 한번 클리닉으로 와야한다고 설명하시고 방을 나가셨다.


호주에서는 일반적으로 임신 동안 GP와 미드와이프가 관리를 담당하고, 출산도 미드와이프가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고위험군 산모로 분류되어 전문의가 출산까지 함께하게 된 것이였다.


링거 덕분인지 입덧도 잦아들었고 눈을 깜빡이기도 입안에 혀도 모든것이 편안했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기도 하고 혀도 괜시리 여기저기 이빨을 훑으며 움직여 보았다. 내몸에 기름칠이 되는것 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것 같다. 오래간만에 식도에 음식이 지나갔다.
살 것 같 다.


남편은 의사에게 심하게 혼나고 난 후, 마치 이제야 예비 아빠가 된 것처럼 보였다. 음식을 사다가 나르고 한국프로그램도 보라며 이것저것 챙겨댔다. 정신을 차린 걸까? 뭔가 깨달은 걸까?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이 순간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정리되어야 한다는 걸 배우고 깨닫게 된 시간이였나보다 생각하고 3일의 입원기간을 마치고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집에서 잠시 쉰 후, 남편은 또 사라졌다. 브리즈번에서 중요하지도 않은사람과 술을 마셔야 한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미뤄둔 술 약속을 이어갔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았다. 입덧은 여전히 고통스러웠고, 더이상 피를 토하지는 않았지만 물 한 모금 삼키는 것도 힘들었다. 에너지가 없어서 나의 뇌 안에 있는 회로들의 전원이 하나씩 내려가는것처럼 느껴졌다. 판단이라는걸 해야하는 나의 생각회로가 연료가 없어서인지 잘 돌아가지 않았다.


냉장고까지 걸어갈 힘도 없었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왜 살아야 하지는 지 모르겠다. 문득 연필꽂이에 꽂힌 커터칼이 눈에 들어왔다. 손목을 그으면 모든 게 편해질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강한 에너지가 생겼다.

칼을 꺼내 주르륵 칼심을 올리고 손목 주름 부분에 살짝 그었다.


“아야…!!!!!!!!!!!!!!!!!!!!1”

엄청 아팠다.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그 순간, 취한 남편이 들어왔다.


‘오늘은 왠일로 일찍 왔네.’

“너 뭐 하냐? 칼로 뭐 하냐?”


남편은 취한 채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내가 뭘 하는지도 제대로 보지 않는 듯했다.


‘또 음주운전했겠지? 또 집에 있는 돈 가져가서 도박하고 왔겠지?’


풍기는 술냄새에 침대까지 점령한 그에게 냄새난다 나가라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칼을 얼른 더빨리 더 깊이 그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 썰리지 않았다. 뾰족한 부분으로 꾹 눌렀는데도 큰 상처는 생기지 않았다. 아프기만 너무 아팠다.


남편이 힐끗 보더니


“야! 너 뭐 해?”

하며 칼을 빼앗아 갔다. 피가 주르륵 쏟아져 흐르긴 했지만, 이렇게 흘러서는 죽기 어렵겠는데. 죽기까지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겠다 싶었다.


‘진짜 커터칼로 손목을 그어서 피가 철철 나와서 죽는사람들은 대단하다… 얼마나 날카로운 칼로 세게 깊게 잘라야피가 그렇게 흐를까? 이 칼로는 안 되겠다. 너무 아프다.

음... 그러고보니 칼로 베이는 아픔보다 더 큰 고통이여야 베이는 아픔을 이겨내고 칼로 끝까지 잘라서 죽을수 있겠네 아우 아파'


칼도 빼앗겼고, 멀뚱히 쳐다보는 남편도 상대하기 귀찮았다. 흐르는 피는 대충 휴지로 쓱쓱 감고 그냥 다시 잠을 자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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