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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인 작가 Jul 16. 2024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

바꿀수 없는건 받아들이기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흘린 눈물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눈물 한방울도 사치라고 생각할만큼 나는 나 자신에게  모질게, 때로는 독하게 대하며 살아왔다


그날 결국  설거지를 하다가 주저앉아 흐느껴울수 밖에 없었다

이미 어느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이젠 더이상 부인할수도 피할수도 없이

하얀 검사 종이에 굵은색 고딕체로 박힌 경계선 지능이라는 단어는 

낙인된 도장처럼 심장에 비수처럼 내리 찍혔다. 


경계선 지능이란...

웩슬러 지능검사 기준으로 지능점수가 70~79점 이거나

DSM 기준 71~84점으로 지적장애인과 비 지적장애인 사이의 경계선으로 분류되는 상태로

지적장애인에 속하지는 않지만 지능 지수가 평균보다 낮다

그래서 또래보다 정신연령이 더 낮고 학습 능력, 어휘력, 인지능력, 이해력,대인관계 

등에 어려움을 느낀다 


대표적인 특징은

- 집중력이 낮고 실수가 많다

- 의심이 적고 남의 말을 잘 믿는다

- 행동이 느리거나 지나치게 급하다

- 말과 단어들의 숨은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 눈치가 부족한 편이여서 눈치가 없다고 지적받을 때도 있다.

- 공부하는 데에 적응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불행하게도 하나도 빠짐 없이 모든 특징들이 우리 둘째 아이를 설명해주는 말들이였다.


나의 아이는 경계선 지능이라는 절대 바뀔수 없는 그 생물학적 요인으로 인해

평생을 상처받고 좌절하며 남에게 무시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생각해보니 좀 더 일찍 발견하고 치료 할 수 있는 기회들이 곳곳에 있었다

여섯살 때에는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엄마가 어린이집으로 쫓아가서 

우리 아이가 누구를 때리거나 수업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의 과장된 행동과 몸짓 때문에 본아이들이 피해를 본다며 항의를 했고

암암리에 우리 아이가 다른 어린이집으로 옮기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우연찮게 놀이터에 가서 어린이집 친구들을 만나면 

그 친구들은 우리 아이를 외면했고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으며 투명인간 취급했다.


일곱살때에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과 우리 아이 그림을 나란히 보여주면서 

검사를 한번 받아보는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남편에게 검사를 해보자고 했지만 남편은 그냥 조금 느린것뿐인데 호들갑을 떤다며

나에게 윽박 질렀다 그때는 내가 집에서 영어공부방을 하고 있었고 대학 병원을 예약하려면 

몇달을 대기해야 했으며 예약을 해도 시간이 안 맞아 내 영어수업을 빼야 했기에 

나도 선뜻 나서서 검사를 하기가 주저되었다. 

그놈의 영어수업이 뭐길래 자식일이 더 중요한데도 그때 당시 나는 중독이여서 

무엇보다 일이 너무 중요해 영어수업 하루 빠지면 죽는줄 알았고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수업을 빠지게 되서

죄송하다는 그  아쉬운 소리 한마디 하는게 너무 무책임한거 같아서 차일피일 미뤘다

그리고 하루 빠지면 수업료를 제외해야 되는데 돈도 문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암울한 결과를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나의  비겁한 핑계거리에 불과했다. 


남편은 직업특성상 스케줄 조정이 가능했기에 병원에 데려갈수 있는데도

너무 노발대발 하며 화를 내니 내 주장을 계속 내세우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이 화를 내든 말든 그대로 밀어붙여야 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말에 검사를 하고 경계성 지능아이라는 진단을 받았으니 

일찍 알았더라면 최소한 2년정도 빨리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을텐데...

암도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고 어느정도 완치가 가능하듯이 

경계선 지능 치료도 초기에 개입하면 많이 호전 될 수 있다는걸 알고 난후

나는 돈 번다고 아이를 방치했던 지난날의 나의 과오를 반성하며

며칠동안 밤잠을 설치며 내 자신에게, 내 남편에게 분노했다.


이제는 어느덧 둘째 아이가 4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데 어려움이 있고 

학교 수업 따라가기는 벅차며 

감정 기복이 커서 어디로 튈지 모르지만 

이 아이는 나에게 누구와도 바꿀수 없는 큰 선물이다.


매일 한글, 수학을 지도하면서 하기 싫다며 짜증내고 소리지르는

아이가 감당이 안되서 결국 인내심이 한계에 닿아 버럭하고

아이의 지도를 포기하고 싶은 감정들이 순간 순간 올라온다


하지만 엄마인 내가 내 아이의 지도를 포기하면 

과연 누가 이 아이를 지도하며 사랑해줄수 있단 말인가?

불치병에 걸려 매일 중환자실에서 병마와 싸우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 정도 쯤은 껌이다며 나를 위로한다.


매일 내가 이 아이에게 어떤것을 해줘야 최선일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이 아이가 나중에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기를수 있을지

매일 밤 뜬 눈으로 날새며 고민했던 날들이 셀수 없이 많았다


가장 힘든건 내가 아파서 이 아이를 보살피지 못하고 일찍 죽으면 

이 아이의 남겨진 인생은 어떻게 되는걸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나를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고

결국 불면증으로 이어져 내 몸과 마음은 망가져갔다.


영어학원 하나 운영하는 것도 벅찬 나에게 아이까지 

인생은 나에게 참 가혹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보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힘듦이 나에게 한꺼번에 왔을 때 

이 모든걸 다 내려놓고 이 생을 아주 마감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런 생각들이 꽤 지속되었고

이러다 진짜 큰일나겠다 싶어 학원을 정리했고 

지금은 나의 마음을 돌보면서 동시에 아이도 돌보고 있다. 



발버둥을 치면서 내가 아무리 벗어나고 싶어도 안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애쓰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다보면 거기서 깊은 깨달음과 감사함을 얻게 된다. 

이미 나는 지난날의 내가 더이상 아니며 그렇게 한층 더 성숙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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