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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으로 떠나보냅니다

산들바람

by 파란


2024년 2월 6일. 마음이 자라는 속도가 몸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온통 사건 사고 투성이었던 중학교 3년의 끝이었다. 졸업식은 사실 그다지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졸업식 영상 3개 중 2개는 내가 만들어서 별 감흥이 없었다. 졸업장도, 심지어 공로상이며 개근상도 죄다 단상 아래서 줄지어 담임 선생님께 받았다. 지난 일이라 소신 발언을 하자면 솔직히 성의를 찾아보기 힘든 졸업식이었다. 시간이 걸릴지라도 한 사람씩 무대 위에 서서 3년의 결론인 종이 한 장의 의미를 느껴야 했다. 전교 10등 이내에게 주는 상 또한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러울 기회라도 주었어야 했다. 떠밀리듯 차례차례 받아낸 졸업장은 그냥 평범한 200여 장의 종이 중 하나였다.

담임 선생님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서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교무실로 찾아갔다. 다들 우왕좌왕하다 보니 몇 명은 연락이 두절된 채 실종되어 버려서 어찌할 도리 없이 9명 정도만 사진을 찍게 되었다.

아주 다사다난한 해였다. 덩치만 큰 애들을 좁은 공간에 억지로 묶어두니 당연한 소리였다. 누가 누구 욕을 하고, 누가 누구와 싸우고, 누가 누구와 사귀고, 누가 누구와 깨졌고… 누구든 누가 되기도 했고 나도 누가 돼 보기도 했다. 더러운 말로 오래도록 흉이 남는 상처를 주었다. 가벼운 말로 따뜻한 살결을 베어냈다. 나는 어리다는 변명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타당하다 선언했다. 바보같이 지난 과오에 대한 사과는 던져두고 보기 예쁜 추억으로 포장하여 보기 좋은 사진 한 장을 남겼다.

나랑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앙숙인 친구가 있었다. 오리너구리(별명)는 공부를 굉장히 잘했는데, 본인도 잘 아는 모습이 아니꼬웠다.

“아, 나 진짜 뛰어내릴래. 자살해야 한다니까?”

전 과목에서 하나 틀리고서 한 말이었다. 가장 눈꼴시린 이유는 성적에 대한 자부심을 충족시키는 실력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전교 3등으로 최고 성적을 찍었을 당시에 전교 2등이었다. 나중에는 이겨 먹으려는 욕심을 버렸다. 오히려 이 친구 덕분에 콧대 높은 과거의 내가 거울 치료되는 느낌이었다. 오리너구리를 질책하기 위한 권리를 얻기 위해 우선 나부터 겸손해져야 했다. 오리너구리랑 중학교 2학년만 친구라는 이름으로 지냈으면 이름만 친구로 남을 뻔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니 오리너구리도 지쳐 보였다. 바락바락 우기던 그 아이를 그리 질색했어도 속으로는 그런 자신감을 닮고 싶었다. 그런데 새벽에 밀려드는 숙제를 해결하는 오리너구리 한 마리가 점차 안쓰러워졌다. 오리너구리는 숙제 말고도 챙겨야 할 부담이 있었다. 부모님의 기대, 친구들의 시선, 본인의 노력… 그 사이에 자존감은 챙기기 힘에 부쳤을 테다. 다행히 오리너구리는 시간이 약이었는지, 아픈 시간이 지났는지, 참고 견디었는지 감기처럼 회복하기 시작했다. 무엇이 약이었는지는 아직도 짐작이 안 간다. 중요한 건 우리가 건강하게 친구라는 것이다.

영어 캠프 기간에 받은 응원은 마음 깊이 고마워하고 있다, 오리너구리야.


사랑하는 친구들과 멀어지는 시작을 고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겠지.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만개한 웃음꽃 입에 물고선 “안녕”이 다겠지. 미루어 온 만남의 만기일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머뭇댈지도 몰라. 하지만 너도 알잖아, 침묵 아님 추억만인 대화가 무슨 의미인지 말이야. 먼 훗날의 우리를 망상한 소녀와 머물고 있으니 아쉬워 말아. 가식이 물들어 범벅이 되어 미운 내가 꽃잎을 흩뿌려 어른이 되어 가는 너를 축복하려 해.

예상 못한 안녕도,

예상 못한 축하도,

예상 못한 다짐도,

분노와 불안과 불행과 불운이 여럿 있던 중학교 3년을 행복으로 요약할 수 있게 해 주었지.


여러분과 질풍노도의 중학생 시절을 겪어내어 영광이었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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