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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이 날아왔습니다

씨앗

by 우연 Jan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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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의 마지막 해였다. 한창 추워질 무렵 우리를 뜨겁게 달군 일생일대의 화제가 있었으니, 졸업 사진 촬영이었다. 여름에도 학교와 이어진 공원에서 푸릇푸릇한 얼굴로 풀잎을 배경 삼아 찍었지만, 겨울에 찍는 개인사진과 단체 사진이야말로 졸업사진의 꽃이었다. 다들 누구보다 예쁜 꽃을 피우고 싶었기에 출석 번호 순서대로 5명씩 찍는 컨셉 사진에 어마어마한 공을 들였다. 아무래도 그 다섯은 무작위의 모임이라 컨셉을 선정하는 데에 있어 나름 치열한 공방전이 있다고 들었다. 내 친구인 오리너구리(별명)는 홍일점이라 조폭 컨셉이 되어버렸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조는 청일점이 존재한 덕분에 여자 넷이서 개화기 의상으로 몰아붙일 수 있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괜히 들뜬 마음은 졸업 사진을 찍고 나서도 두 발을 땅에 붙이지 않아 앞으로 걸어 나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친구들과 어느 고등학교에 지원할지 떠들어대도 2학기가 다 되어가도록 경각심은 둥둥 떠다녔다. 고등학생이 된 모습을 아주 머나먼 미래 언저리라고 치부했던 탓이었다. 그저 친구들과 끝을 위한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에게는 세상 쓸데없고 누군가에게는 새삼 소중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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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네컷을 찍으러/반 단합을 하며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전교권 성적이 아까워서 특목고에 가야겠다는 얄팍한 다짐은 불면 날아갈 정도로 가벼웠다. 그렇다고 일반고는 괜스레 자존심이 긁혔다. 그게 뭐 대단한 생채기라고 대학 입결이 낮기로 소문난 학교는 무시했다. 이 바보 중학생이 가여웠는지 하늘이 나를 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가 나를 도왔다. 내 친구 엄마들의 카톡 프로필을 살펴보다가 초등학교 절친의 언니가 국제고에 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 나태로 늘어진 나를 보고 내심 조마조마했던 엄마는 얼른 정보를 읊어주었다. 나는 “외고가 더 멋진데…”라며 철이 집 나간 반응을 했지만 서서히 구미가 당겼다.

 국제고가 개교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대학 입결이 썩 극적이질 않아서 지원서나 면접에 대한 정보가 적었다. 그런데 웬걸, 하늘이 “옛다, 행운이다!”라며 인심을 쓴 모양인지 무작정 가입한 특목고 입시 카페에서 엄마에 이은 또 한 명의 은인을 만난다. 국제고를 졸업한 선배이자 꽤 오랜 기간 동안 나처럼 길 잃은 어린양을 친히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던 분이었다. 자료를 달라는 요청을 최대한 덜 무례하게 늘어놓은 메일이 적잖이 갑작스러웠을 텐데 친절히 답신을 주었다. 이후로는 쓰고, 쓰고, 말하고, 말하고. 혹여라도 국제고 면접을 준비하는 후배 예정자가 있을까 봐 조언한다. 지원서는 남이 써주는 게 아니다. 문장이나 어휘는 당연히 도움을 받되 내용은 줏대 있게 밀고 가라. 결국 면접에서는 오로지 나 혼자서 해결해야 하니까.


브런치 글 이미지 4

 

 귀를 툭 치면 와르르 깨질 면접 날의 아침이 밝았다. 이번에는 하늘이 또 다른 불쌍한 중학생을 돕고 있는지 하필이면 아침 시간에 걸렸다. 고심해서 고른 적당히 예쁘면서도 적당히 모범생스럽고 적당히 화사한 옷 위에 가래떡 마냥 두꺼운 롱패딩을 걸쳤다. 지퍼를 올리니 결음 걸이가 펭귄처럼 영 하찮았다. 영혼까지 끌어올린 포니테일로 겉치레는 완성. 속치레를 하러 엄마와 포옹을 했다. 아파트를 나서자 차가운 바람에 베인 피부는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마저 가리는 심장의 절규에 얼른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도경수(디오)의 플레이리스트에서 ‘걱정 말아요 그대‘가 흘렀다. 전날 골라두었던 의도된 위로였으나 충분했다. 지하철 역에서 드디어 마지막 은인을 만났다. 중1부터 영어 학원에서 동고동락한 산채비빔밥(별명)과 면접을 보러 동행하기로 했다. 중학교에는 국제고에 지원한 사람이 나뿐이어서 산채비빔밥이 자연스레 동행자가 되었다.

 국제고를 향하는 오르막길이 어찌나 험준하던지 나와 산채비빔밥은 흐물거리는 사지를 붙잡고 겨우 올랐다. 우리는 첫 타자로 도착했다. 면접은 마지막 타자로라도 합격했으면 하고 아마 둘 다 소망했을 테다.

 면접은 평탄했다. 예상에서 크게 벗어난 질문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성 질문에 답하다 끊겼다는 점이 걸리긴 했다. 그렇다고 홀가분한 마음 앞에 걸림돌은 치워주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산채비빔밥과 헛헛한 기분으로 헤어졌다. 자꾸만 무수했던 경우의 수를 연주하는 뒷북을 뒤로하고 잠에 들었다.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사라진 만큼 꿈도 사라진 잠을 잤다.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결과가 나오는 날은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유일한 국제고 지원자이자 최초의 지원자였기에 불합격했다가는 쥐구멍도 모자라 어디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가야 할 판이었다. 하필이면 결과가 나오는 시간이 학교가 끝나는 시간과 기가 막히게 겹쳤기에 친구들이 바글바글했다. 네이버 시계를 켰다. 1분이 남았다. 친구들을 복도로 몰아넣고 텅 빈 교실에 내 쌍둥이 언니와 나만 남았다. 복도에는 친구들 뿐만 아니라 전후 사정도 모르면서 북적이길래 ‘나도 북적여볼까 ‘하는 아이들로 가득 찼다. 3, 2, 1. 빨갛던 네이버 시계가 초록색으로 변했다. 정각이었다. 도저히 눈을 뜨질 못해 언니가 대신 봐주었다.

 “합격이야!!”

 합격이다. 뒷문을 열고 소리쳤다.

 “나 합격이래!”

 눈물이 찔끔, 축하에 반비례해 나왔다. 교실을 한껏 당당하게 빠져나와 산채비빔밥의 전화를 받았다. 합격하든 말든 당일에 전화는 말자던 약속을 시원하게 어긴 진동 소리를 듣자마자 웃음이 퍼졌다. 합격했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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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격의 두 글자가 얼마나 달콤한지 아실런가 모르겠다. 학원 선생님이 늘 “고등학교 입학이 인생 업적이면 자랑스럽겠냐?” 하셨지만 자랑스럽네요, 선생님. 우선 제 16년 인생에서 제일 행복한 순간이었거든요.


 이제 중학교라는 공간을 중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입장할 하루가 손에 꼽을 정도로 남았다. 담임 선생님이 슬그머니 다가오셔서 스리슬쩍 나를 부르시길래 일단 살금살금 따라갔다. 선생님은 교무실에 딸린 상담실로 들어가시더니 무언가를 쓱 내미셨다.

 샤.

 아주 익숙한 문양의 철제 열쇠고리였다.

 “우리 딸들이 다 서울대를 갔거든. 너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정말로. 나중에 ‘예전에 내 중학교 담임이 내가 갈 대학 딱 맞췄는데.‘ 이럴 거야.”

 중간중간 혼신을 다한 손사래와 숨 막히게 뜨거워진 얼굴에도 선생님은 그렇게 말씀하셨다. 평소에 매직으로 무뚝뚝이라고 쓴 나무판 뒤에 사랑을 정으로 새기면 우리 선생님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무판이 뒤집히는 찰나가 올 줄은 상상도 안 했다. 그래서 나무판은 기억 속 깊은 곳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고등학교 입학이 인생 업적이면 자랑스럽겠냐는 물음에 17년 인생으로 대답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 눈앞의 나무 한그루 키워냈다고 뒤에 펼쳐진 사막을 무시하다니. 아무래도 나는 과하게 천진난만했던 샘이다. 고작 씨앗을 하나 심었으니.


see far…see f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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