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그래도 보고 싶은 것.
“어이쿠, 넘어질 뻔했네.”
보통 뽀득여사의 거울가게에는 손님이 많지 않아서 짧은 시간에 연이어 손님이 들고 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런데 오늘은 여유로운 날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가게는 연이어 손님이 들었다.
목소리가 경쾌한 손님은 갓 서른 즈음이 되었을까. 반듯한 이마에 유난히 맑은 기운이 느껴졌다.
“손님, 저희 가게에 문턱이 좀 높지요. 괜찮으세요?”
그렇잖아도 나무틀로 된 앤틱 한 문이다 보니 다른 상점보다 문턱이 살짝 높은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하마터면 손님이 넘어질 뻔 해서 뽀득여사는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아니에요. 늘 그러는걸요. 여기라서 그런 게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손님은 여전히 경쾌한 목소리로 손사래까지 치면서 뽀득여사를 안심시켰다.
뽀득여사는 목소리만 들어도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이마가 반듯한 청년의 밝은 기운에 덩달아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손님은 거울들을 손으로 하나씩 만져보며 이 거울 저 거울을 구경했다. 거울의 틀도 쓰다듬어 보고 어떤 거울들은 바짝 가까이 다가가고 거울표면을 손등으로 쓸어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겸연쩍게 웃으며 말했다.
“어이쿠, 죄송해요. 사장님이 열심히 닦아놓으셨을 텐데 제가 여기저기 손자국을 남겼네요. 저도 모르게 그만 제 생각만 했네요.”
손님은 미안해하는 표정을 얼굴 가득 담고는 거울로부터 주춤 물러났다.
“아니에요. 손님. 걱정 마세요. 저는 원래 거울 닦는 게 취미인걸요. 그리고 그렇게 조심스럽게 손으로 쓸어 만지셔서 그다지 손자국도 남지 않았답니다. 보세요.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손님은 안심이라는 듯 한 웃음을 짓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사실 손자국이 남았는지 아닌지 제가 잘 보지 못해서요.”
뽀득여사는 그제야 손님이 왜 문턱에 걸렸는지, 거울을 쓸어가며 보았는지 그리고 뽀득여사를 바라보며 말하지만 눈이 서로 딱 마주친다는 느낌이 안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뽀득여사는 곡물향이 진한 아라비카향 커피를 내리며 손님에게 커피를 드시겠냐고 권했다. 손님은 여전히 경쾌한 목소리로 “저 커피마니아예요.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초록 소파 쪽으로 조심조심 걸어왔다.
“그렇다고 보시다시피 아직은 맹인은 아니예요. 보세요. 아직 까만 안경도 안 썼고, 지팡이도 짚지 않았고 맹인견도 데리고 다니지 않잖아요. 하하하.”
손님은 혹여라도 뽀득여사가 신경을 쓸까봐서인지 괜스레 두 팔까지 펼쳐가며 ‘괜찮다’는 것을 보여주려 애쓰는 것 같았다.
“네 손님. 커피마니아님에게 괜찮은 맛일는지 모르겠네요.”
뽀득여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화제를 커피 쪽으로 돌렸다. 손님은 커피 잔을 조심스럽게 찾아서 커피를 한 모금 입안에 머금고 커피 맛을 음미했다.
“커피 향과 맛이 둘 다 일품이네요. 어떤 경우에는 향은 너무 좋은데 맛이 별로인 경우도 있거든요. 제가 최근에 마셔 본 커피 중에 최고예요.”
손님이 활짝 웃어 보였다. 시원한 입매가 활짝 옆으로 퍼지면서 가지런한 이가 시원하게 드러났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환한 미소였다.
그렇게 커피 마니아들의 커피이야기가 주거니 받거니 오고 갔다. 커피 잔의 커피가 반쯤 줄어들 동안 손님도 뽀득여사도 한결 서로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뽀득여사는 이마가 반듯하고 미소가 시원한 이 청년의 눈을 바라보았다. 맑은 눈동자였다. 속눈썹이 진해서인지 마치 어린아이의 눈망울처럼 흰자와 검은 동자가 유난히 맑고 깨끗했다. ‘이 수정 같은 깨끗한 눈망울인데 왜…’. 문득 뽀득여사의 가슴이 ‘찌르르’ 해졌다.
뽀득여사의 마음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순간 청년은 뽀득여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희귀성이래요. 원인도 알 수 없고 딱히 치료방법도 아직은 없다네요. 단지 속도를 늦추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라고 ….”
“아, 그렇군요. 언제부터?”
“군 복무 중이었어요. 갑자기 어느 날 시야가 조금씩 뿌옇게 보이더라고요. 군대에서 사격에서 포상을 받을 정도였는데 어느 날 사정권에도 맞추지 못하더라고요. 시력이 워낙 좋아서 안경 한 번 쓴 적이 없었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지요. 결국 의가사제대를 하고 말았지요.”
뽀득여사는 조용히 빈 잔에 커피를 다시 채워주었다.
“그리고는 한 두 해는 미친 듯이 이 병원 저 병원 쫓아다니고 유명하다는 의사를 수소문하고 부모님은 다 정리하고 해외에까지 병원 원정을 가보자고 하셨고요. 그러다가 차츰, 부모님도 저도 정신을 차리게 되었지요. 그리고는 싫건 좋건 이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더라고요.”
“그러기까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뽀득여사의 ‘얼마나 힘드셨을까요’라는 짧은 말의 위력은 컸다. 경쾌하게만 보이던 청년은 오늘 처음 본 거울가게의 사장님에게서 지금 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라는 말에 그만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괜찮은 척, 안 아픈 척, 씩씩한 척해야만 버틸 것 같았다. 안 그러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것 만 같아서 애써 웃으며 버텼던 것이다.
“남들은 저한테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으냐고 하지만…, 사실은…, 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지… 금도 힘듭니다. 자다가도 벌떡 깨어납니다. 그리고는 ‘꿈일 거야’ 싶다가도, 깜깜한 어둠 속에서 깨어 있자면 이 깜깜한 어둠이 결국 내 눈을 어느 날에는 덮쳐 버릴 거라는 무서움에 잠을 못 이룹니다.”
결국 청년의 맑은 눈망울에서 수정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뽀득여사는 조용히 같이 있어줄 뿐이었다. 이 순간에는 그 어떤 말도 군더더기 일 뿐이다. 이렇게 뽀득여사는 청년이 마음 놓고 울음을 토해낼 수 있도록 안전하고 따뜻한 요람이 되면 충분한 것이다.
청년은 그렇게 한참을 그동안 꾹꾹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다.
그렇게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눈물이 조금씩 잦아들어가고 있었다. 뽀득여사는 조용히 청년에게 티슈를 건네주었다. 청년은 눈물이 아직은 그렁그렁한 눈망울의 눈물을 티슈로 닦아내고 코를 가볍게 풀었다.
“더 세게 코를 풀어도 돼요. 시원하게요.”
일부러 뽀득여사는 가볍게 농담을 건네며 티슈통을 청년 앞으로 밀어주었다.
청년은 아직은 코가 막힌 듯 한 소리로 ‘하하하’ 웃으며 티슈통에서 티슈를 여러 장 뽑아서 ‘흥’하고 시원하게 코를 풀었다. 그리고는 빨개진 코로 아이처럼 뽀득여사를 바라보며 해맑게 웃었다. 뽀득여사도 같이 그렇게 웃었다.
“어때요. 시원하지요? 그렇게 때에 따라서는 맘껏 울고 싶을 때는 울고, 맘껏 코 풀고 싶을 때는 풀어버리고, 맘껏 소리 지르고 싶을 때는 소리 질러버려야 돼요.”
“네. 시원해요. 가슴속이 뚫리는 것 같아요. 그동안 두려웠거든요. 울고 싶다고 울어버리면, 한탄하고 싶다고 한탄해 버리면 정말 제 인생이 끝장날 것 같았어요. 영원한 패배자로 살아갈 것 같은 두려움이 늘 저를 채찍질했어요. 이겨내야 해, 이겨내야 해 하면서요. 어떨 때는 일부러 혼자 입 꼬리를 손으로 올려가며 억지웃음을 지으며 문밖을 나가기까지 했어요.”
청년은 큰 숨을 두 어 번 내쉬더니 편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맑은 청년의 이마와 눈망울이 다시 빛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요즘은 의식적으로 제가 보고 싶은 것, 기억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다니고 또 그것들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가까이서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고 하고 있어요. 진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기억하고 싶어서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때는 자꾸 떠올려 봐요. 우리 부모님 얼굴, 동생 얼굴, 옛날 여자 친구 얼굴, 내 방의 책꽂이, 우리 아파트 단지 공원의 나무, 호수공원…. 그러다가 문득 제 얼굴을 떠올려 봤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제 얼굴이 정확하게 떠올려지지 않더라고요. 참 이상하게도요.”
“그러게요. 당연히 가장 선명할 것 같은데 정작 자신의 얼굴은 뭐랄까. 화선지에 물 많이 머금은 먹붓으로 그리듯이 번지네요. 머릿속에서.”
뽀득여사도 눈을 지그시 감고 자신의 얼굴을 떠올려보니 그러했다. 가장 잘 알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또 그렇지만은 않은 자신의 얼굴.
“그래서 며칠 전부터 거울로 한참씩 제 얼굴을 들여다보고 제 사진도 들여다보고 해요. 그러다가 문득 이 골목을 지나가다 거울가게가 있길래 무작정 들어온 거였어요. 제 얼굴을 보고 싶어서요.”
뽀득여사는 청년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 청년도 뽀득여사를 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소의 온기와 어스름히 찾아온 저녁 노을빛으로 뽀득여사의 거울가게는 훈훈하고 푸근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청년은 작지만 매우 선명한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그 거울을 품에 안고 가게를 나섰다.
가게를 막 나서다가 청년은 문득 뒤돌아 뽀득여사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사장님의 얼굴과 따뜻한 미소 잘 기억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은 깊이 머리를 숙이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돌아서 가게를 나섰다. 뽀득여사도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따뜻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그래요. 나도 손님의 얼굴을 잘 기억할게요. 특히, 그 맑은 눈망울을요.”
청년의 등 뒤로 저녁 노을이 훈훈히 밀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