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할머니와 손자
며칠째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오늘은 날씨가 쨍하니 맑다. 만개한 봄꽃들은 며칠 내린 비에 더욱 생기 있기도 하고 꽃잎이 많이 떨어지기도 했다. 나뭇가지에 있든 땅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든 봄꽃은 참 예쁘다.
뽀득여사는 가게 앞에 나란히 모아놓은 아기자기한 작은 봄꽃 화분들을 바라보느라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서 봄꽃을 어루만지며 미소 짓고 있었다.
어느새 새미가 뽀득여사 옆에 똑같은 자세로 웅크리고 앉아서 봄꽃을 홀린 듯 바라보고 있다. 통통한 하얀 손으로 턱받침을 하고 있는 새미의 둥그런 얼굴이 봄꽃송이 같다. 뽀득여사는 새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둥글고 탐스러운 새미꽃이 빙그레 웃는다.
“할머니, 꽃은 어쩜 이렇게 다 예쁘죠? 세상에 안 이쁜 꽃이 있을까요?”
“글쎄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러고 보니 안 이쁜 꽃은 못 본 것 같구나.”
“어쩌면요. 안 이쁜 꽃은 꽃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아닐까요?”
가끔 새미는 뽀득여사를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심오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툭 던질 때가 있다. 지금처럼 말이다. 뽀득여사는 혹시 ‘안 이쁘다고 꽃이라 불러주지 못하는 꽃’이라도 있을까 싶어 골목을 한 바퀴 휘이휘이 몇 번을 둘러보다가 가게에 들어갔다. 새미는 어느새 아가와 이런저런 장난을 치느라 ‘까르르’ 웃고 있다.
“할머니, 왜 아가는 이름이 아가예요?”
새미는 아가의 통통한 등을 쓰다듬으며 묻는다.
“글쎄다. 너무 작고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아가라고 부르다가 이름이 되어 버린 거지.”
“저는 작지도 않고 이렇게 큰데 왜 우리 할아버지는 저를 아가라고 자꾸 부르실까요?”
뽀득여사는 재우님이 새미를 ‘아가’라고 부르는 모습을 상상하니 미소가 절로 피어올랐다.
“새미야, 고백하자면 나도 우리 새미를 보면 아가라고 부르고 싶을 때가 있는걸. 너무 사랑스러워서 말이다.”
“에이, 할머니. 이렇게 커다란 아가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말은 이렇게 해도 새미는 뽀득여사의 말이 싫지 않은 듯 배시시 웃으며 볼이 발그레해진다.
덜컹. 엔틱 유리문이 급하게 열렸다. 뽀득여사도 새미도 아가도 동시에 유리문에 시선이 갔다. 볼이 발갛게 상기된 예닐곱 살 꼬마가 벌컥 문을 열고 뛰어들어온 참이었다. 꼬마는 한참을 뛰다가 들어왔는지 작고 둥그런 어깨를 들썩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서 다시 문이 열리더니 자그마한 키에 살짝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민망하고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아가 안 돼. 거울 만지면 안 돼.”
눈 깜짝할 사이에 꼬마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반복하며 거울들에 코를 대기도 하고 눈을 바짝 붙이기도 하면서 가게 안을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꼬마의 할머니는 “아가 안 돼!”를 반복하며 두 팔을 벌리고 손자를 잡으려고 허둥대며 꼬마를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괜찮아요. 걱정 마시고 여기 소파에 좀 앉으세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작은 노인을 진정시키며 뽀득여사는 초록 소파 쪽으로 노인을 안내했다. 노인은 팔을 휘저으며 손자를 계속 잡으려고 했지만 이내 지쳤는지 ‘죄송해요’를 연거푸 말하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꼬마는 손바닥을 펼쳐서 눈앞에 대고는 좌우로 흔들다가 손바닥을 탁탁 치면서 뭐가 좋은 지 거울을 보며 웃고 또 웃었다. 뽀득여사는 당황하지 않고 지긋이 바라 볼 뿐이었다.
따끈한 자몽차를 유리잔에 채우니 금세 유리잔에 뿌옇게 김이 차 올랐다. 노인은 주름진 작은 손으로 유리잔을 감싸 쥐고는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단정하게 빗어 넘겼을 거의 백발에 가까운 가는 머리칼들이 몇 가락 주름진 이마로 흘러내렸다. 노인은 따끈한 자몽차를 몇 모금 조심스럽게 마시면서도 눈길은 계속 손자에게도 향하고 있었다. 손자는 전혀 상관치 않는 듯이 계속 거울 앞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있었다.
새미는 주머니에 있던 곰돌이 젤리를 소년에게 건네주며 새미도 빨간 곰돌이 젤리를 입에 쏙 넣었다. 소년은 새미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심히 젤리를 받아먹고는 계속 거울을 보며 손바닥을 치며 웃었다. 새미는 다시 노랑 곰돌이 젤리를 소년에게 주었다. 역시 소년은 젤리만 쏙 받아먹고는 거울만 보고 웃을 뿐이다. 새미는 소년이 아는 채도 하지 않고 젤리만 쏙 받아먹는 게 조금 괘씸했는지,
“이제 그만 줄 거야. 내가 혼자 다 먹어야지.”
새미는 일부러 크게 말해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미의 얼굴이 금방 샐쭉해졌다.
“미안해요. 우리 손자가 좀…”
새미는 금방 얼굴이 환해지더니 노인의 말을 가로막고는 말했다.
“그런데 이 꼬마는 정말 귀여워요. 어쩜 이렇게 조그맣지요. 아이 귀여워. 그래서 할머니가 쟤를 아가라고 하신 거지요?”
새미의 해맑은 웃음과 목소리에 노인은 민망함을 뒤로하고 마음을 좀 더 편히 하고 자몽차를 다시금 마실 수 있었다.
“저 녀석이 자폐라는데 아휴, 저는 사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병원에서 의사가 냉정하게도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자폐라고….”
노인의 지친 눈길은 손자를 계속 쫒고 있었다. 아이는 여전히 혼자의 세상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흑백, 밤과 낮처럼 노인과 손자의 표정은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아들내미랑 며느리랑 새벽부터 밤까지 장사를 하다 보니, 저 녀석을 젖먹이 일 때부터 내 품에서 키웠어요. 그래서 애기가 말이 늦다, 눈 맞춤이 안 된다, 어린이집에서 못 봐준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애를 잘 못 봐줘서 그런 것만 같아서 얼마나 애타던지….”
“그러게 요즘 할머니들 한창 편안하셔야 될 연세에 손주 키우시느라 허리가 굽는 분들이 태반이지요. 그리고 애 봐준 공은 없다고, 뭐 조금만 애가 그러면 할머니가 죄책감에 안절부절 들 하시고요. 아휴, 부모란 다 그런가 봐요.”
뽀득여사는 향이 짙은 자몽차를 노인의 잔에 다시 채우며 딸기잼이 가운데 박힌 쿠키와 지난번 재우가 갖다 주었던 초콜릿 상자도 찾아내어 뚜껑을 열었다. 노인에게 무언가 달고 기운 나는 것을 대접하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노인은 손사래를 치며 사양했지만 뽀득여사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노인은 차와 쿠키 초콜릿을 맛나게 먹었다.
“할머니, 꼬마 이름이 뭐예요?”
딸기쿠키를 입에 두 개나 한꺼번에 넣고 우물거리며 새미가 물었다. 새미는 쿠키와 초콜릿을 하나씩 집으며 노인에게 물었다. 꼬마에게 쿠키와 초콜릿을 주려는 것이었다.
“현준이란다.”
“현준아! 쿠키 먹을래? 엄청 맛있는 초콜릿도 있는데.”
…
“현준아!”
…
“현준아! 현준아!”
…
새미는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꼬마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꼬마는 여전히 거울 앞에서 손바닥을 치며 웃고 있을 뿐이었다. 새미는 포기했는지 살짝 뾰로통해진 표정으로 꼬마손에 쿠키를 쥐어주고는 초콜릿은 자신의 입속에 쏙 넣어버렸다. 나름 새미식의 복수라고 생각한 듯이.
“늘 저래요. 자기 이름을 듣고 ‘네’ 하면서 눈을 마주쳐 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루에도 수도 없이 ‘현준이’를 불러보지만 늘 저런 식이예요.”
“현준이가 어느 날 ‘할머니’하고 부르면서 안길 날을 기다리시겠네요.”
뽀득여사는 노인이 손자를 위해 얼마나 마음을 애태우고 있는지 절절히 느껴졌다. 노인은 뽀득여사의 위로에 눈물이 글썽였다. 헛헛했던 마음이 훈훈함으로 번졌다.
“요사이는 현준이가 힘이 세지고 빨라져서 데리고 다닐 때면 진땀을 뺄 때가 많아요. 아까처럼 이렇게 자기가 마음에 드는 것이 눈에 띄면 돌진해 버리니까요. 며칠 전에는 자동차 바퀴를 보고는 찻길로 뛰어 들어가서 얼마나 놀랐는지.”
노인은 그날이 떠올랐는지 가슴을 쓸어내리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사실이 아니기를, 꿈이기를 바라는 일들이 살다 보면 있잖아요. 그런데 결국 이게 꿈이 아니고 현실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우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노인은 뽀득여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폐라고 말하는 의사가 순 돌파리라고 아들과 며느리한테 큰소리쳤지만 사실 속마음에서는 그냥 아니라고 우기고 있는 고집 센 노인네가 딱 바로 나로구나 했어요. 왜 나인들 모르겠어요.”
“에휴, 충분히 그 마음 이해해요. 당연히 어떻게 바로 받아들여지겠어요. 금쪽같은 손자인데요.”
꼬마는 특히, 작은 꼬임패턴이 둥근 거울 테두리에 일정하게 둘러져 있는 거울 앞에서 유독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했다. 가만히 들으니 기차소리를 내면서 꼬임패턴을 계속 눈으로 쫓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기차나 엘리베이터 숫자 같은 것들을 좋아해요. 원래 자폐애기들이 그런 것을 좋아한다네요. 참 별나기도 하지요. 이런 것들은 귀신같이 기억하고 찾아내요.”
그때 아가가 뒤뚱뒤뚱 거리며 꼬마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꼬마의 작은 신발에 코를 비볐다. 그렇게 이름을 불러도 신경 안 쓰고 자기 세계에 빠져 있던 꼬마는 아가를 내려다보더니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쭈그리고 앉더니 아가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이고, 아가야 안 돼. 내려놔.”
노인은 놀라서 소리쳤다.
그렇게 뽀득여사의 아가와 또 노인의 아가는 서로 같은 눈높이에서 작은 얼굴을 서로 마주 보는 상황이 되었다. 모두들 그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새미조차도 숨죽이고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꼬마와 아가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꼬마의 까맣고 깨끗한 눈동자가 아가의 작고 빛나는 눈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1초 2초 10초 … 거의 30초 가까이 조용히 쳐다보더니 꼬마는 아가가 무거운지 아가를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꼬임패턴 둥근 거울을 보며 기차소리를 내고 깡충깡충 뛰었다.
노인도 뽀득여사도 그리고 새미도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았고, 꼬마가 다시 거울 앞으로 간 뒤에도 한참을 말없이 꼬마를 쳐다보았다.
“보셨지요? 우리 현준이가 아기돼지 눈을 한참을 들여 다 봤어요. 눈 맞춤을 했어요. 아주 의미 있게요.”
“네. 저도 똑똑히 봤어요. 한참을 서로 눈빛을 교환했어요. 아주 의미 있게요.”
뽀득여사는 한없이 따뜻한 미소를 노인에게 보내주었다. 노인은 마치 큰 자랑거리가 생긴 듯이 얼굴빛이 환해졌다. 아마 희망이라는 가루가 노인의 얼굴에 뿌려졌으리라.
노인은 처음 기진맥진해서 가게에 쓰러질 듯 들어올 때와 달리 금세 기운을 차렸다.
꼬마는 그렇게 한참을 다시 꼬임장식이 줄지어진 거울 앞에서 혼자놀이를 하더니 다시 가게 안을 이리저리 헤매 듯 왔다 갔다 했다. 노인은 이제 손자가 또 다른 데로 가자는 것 이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노인은 마르고 주름진 손으로 뽀득여사의 따뜻한 손을 꼭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 평생에 이렇게 따뜻하고 맛있는 자몽차는 처음이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여기가 이렇게 뜨끈뜨끈 할 수가 없네요.”
노인은 가슴을 쓰다듬으며 눈물 어린 미소를 보였다.
“언제라도 들르세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자몽차가 여기 늘 있으니까요.”
뽀득여사는 노인을 가볍게 포옹하고는 손자의 손을 잡고 골목귀퉁이로 돌아가는 노인과 어린 손자의 뒷모습을 그렇게 한참을 바라봐주며 배웅을 했다.
그리고 뽀득여사는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그 자몽차에는 희망이라는 시럽이 듬뿍 들어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