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라고 다 똑같은 시간이 아니다.
청량한 오월의 바람이 귓불을 간지려서 나를 이렇게 웃게 하는 것이 아니지.
연두 또는 초록이라고 딱 정하기 어려운 싱그런 잎사귀들의 박수 때문에 이렇게 웃는 것이 아니지.
호로로롱 파르롱롱 아카펠라처럼 노래하는 높은 나무 사이의 숨은 새들이 나를 이렇게 웃게 하는 것은 아니지.
내가 지금 이렇게 눈과 입과 마음이 실컷 웃고 있는 것은 오월의 하늘도, 바람도, 나무도, 새들 그 모든 것 때문이 아니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도 다 뛰어넘어버린
바로 저기 저 둘 때문이지.
내가 지금 숨이 차오르는 것은 폐활량이 적어서가 아니지.
앞뒤로 흔드는 팔의 움직임에 비해 발의 스텝이 더딘 것은 순발력이 떨어져서가 아니지.
저 둘과의 나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 것은 나의 스피드가 늦기 때문이 아니지.
나는 너무 보기 좋아서
나는 너무 행복이 차올라서
웃느라, 눈에 담느라, 카메라로 남기느라
나의 손과 눈이 바빠서 그런 거지.
너무 좋아서 그런 거지.
귀여운 얼굴이 돌아본다.
엄마 보고 웃는다.
듬직한 얼굴이 돌아본다.
아내 보고 웃는다.
귀여운 얼굴과 듬직한 얼굴이 서로 보고 웃는다.
행복한 내가 저 둘을 보고 웃는다.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 아침부터 바람과 햇살이 참 좋았다. 가볍게 조깅을 하고 산책을 하자고 삼총사가 의기투합했다. 평소 남편과 딸은 조깅을 즐기는 편이고 나는 산책을 즐기는 편이라서 남편과 딸이 달리면 난 뒤에서 뛰다 걷다 할 요량이었다.
동네 산책이라 남편은 조깅복이 아닌 자체 제작 허클베리핀 복장(오래된 바지와 셔츠를 가위로 잘라 입어서 붙여준 이름)을 하고, 딸은 조깅복에 모자까지 꼼꼼히 챙겼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오월의 바람과 햇살이 참 좋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삐비빅 다 끝나기도 전에 남편과 딸은 집 앞에서 제자리 뛰기를 하며 발시동을 걸고 있었다.
“먼저 뛰어가, 나도 알아서 따라갈게!”
동네 둘레길(아주 낮은 동네의 산) 입구까지 조깅해서 가기로 했다. 가볍게 뛰어가는 남편과 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안에서 행복한 웃음이 마구 흘러나왔다. 내 입장에서는 전속력을 다해서 쫓아가도 모자랄 달리기 실력인데도 너무 웃음이 나서, 너무 기분이 좋아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내 손과 마음이 부산스러워 영 발의 속도가 안 붙는다. 엄마가 뒤에 잘 따라오고 있는지, 부인이 제대로 뛰고는 있는지 궁금한 귀여운 딸의 얼굴과 듬직한 남편의 얼굴이 번갈아 뒤돌아본다. 그래서 나는 또 더 크게 웃는다. 내가 웃어서인지, 뛰는 폼이 웃겨서인지 모르지만 남편과 딸도 크게 웃는다.
동네 뒷산의 둘레길 산책시간은 한 시간 정도였다.
하루로 따지면 이십사 분의 일. 참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
객관성과 주관성을 동시에 갖는 것!
바로 시간.
시간이라고 다 똑같은 시간이 아니다!
이렇게 좋은 한 시간은, 마음에 저장되어 계속 리플레이될 테니 한 시간이 그냥 한 시간이 아닌 것.
오늘 아침의 한 시간(객관적 시간)은 내게 영원한 시간(주관적 시간)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