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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 2.

제 2화. 놀이터는 재밌어.

by 뽀득여사
"놀이터는 역시 재밌어!"


그리와 보기는 퀸엘프님의 지령을 확인하고는 벌써 열한 개의 마풍을 찾아낸 것처럼 들떴다. 어떤 능력을 달라고 할까. 엘프의 기본 마법능력 말고 더욱 멋진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은 곧 엘프파워의 업그레이드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와 보기는 각자 어떤 능력이 더 있으면 좋을지 궁리를 하느라 잠시 서로 말이 없었다.


바로 그때 놀이터 입구에 나타난 나이 많은 여자 인간 둘이 보였다. 인간세계에서는 이들을 노인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한 노인은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빨간 왕꽃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있다. 뚱뚱한 체구 때문에 꽃이 더욱 커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또 다른 노인은 상대적으로 키는 크지만 상당히 마르고 힘이 없어 보인다. 유모차 같은 것에 몸을 의지한 채 느리게 놀이터로 들어선다.

그리와 보기는 미끄럼틀 뒤에 숨어서 지켜본다. 숨는 것은 도사인 엘프들이다.


“형님들 일찍 나오셨네요. 하기는 요즘은 점점 일찍 눈이 떠지기는 합디다.”

뒤이어 두 노인보다는 조금 덜 노인인 듯한 노인이 역시 느리지만 어떤 보조기구도 없이 휘적휘적 뒤따르며 소리 높여 말한다.


“형님들, 그 얘기 들으셨수?”

“무슨 얘기?”

“여기 의자들 치운다잖아요. 애들 놀이터에 동네 노인들 다 몰려와서 시끄럽게 하고 애들도 못 놀게 한다고 누가 신고했다네요. 그래서 구청에서 의자 다 치워버린다는데요?”

“이게 다 무슨 소리래? 아니, 힘없는 노인네들 오갈 데 없게 해서 죄송하다고 노인정을 지어주지는 못 할 망정, 쯧쯧쯧 너무 하는구먼.”

“그렇기는 한데요. 어제 다들 모여서 쑥떡 먹을 때 애들이 시끄럽게 논다고 최영감이 애들한테 소리 질렀잖아요.”

“맞아 그랬었지. 그건 좀 잘못했지. 애들이 노는데 당연히 시끄럽지. 그리고 여기는 엄연히 애들 놀이터고. 솔직히 우리도 조용히 있지는 않았었잖아. 어제 어림잡아도 열댓 명은 쭉 둘러앉아 있었잖아. 좀 시끄러웠겠어!”

왕꽃 노인은 짐짓 정의로운 표정을 지으며 양심 있는 발언을 했다.


“아마, 그 애들이 자기 부모들한테 말해서 민원이 들어간 것 같더라고요.”

“아이고,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다들 오네 그려.”


이런저런 차림과 모양새로 노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놀이터 구석의 나무그늘 밑에는 한 무리의 동네 노인들로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잠시 후 이런저런 목소리를 높여가며 노인들은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좀 떨어져 있는 미끄럼틀 기둥 뒤에서도 또렷이 쉴 새 없이 들려오는 단어는 단연 ‘의자’였다.

“역시, 인간세상은 늘 시끌벅적하다니까.”

“인간들이 시끄러운 것은 당연해.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앙앙 울면서 태어난대. 안 그러면 세상이 자기가 태어난 줄 모를까 봐 그러나 봐.”

“그래 이해된다. 우리는 잠에서 깰 때마다 소리를 내니까. 인간들이나 우리들이나 조용하기는 틀렸어. 더 중요한 것은!”

“더 중요한 것은?”

“그야말로 재미 때문이지. 조용한 게 더 재밌겠니? 시끌벅적한 게 더 재밌겠니?”

“그야 시끌벅적이지!”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는 손뼉을 치고 발바닥을 마주치며 펄쩍 뛰어오른다.



놀이터에서는 이제 웃음소리가 말소리만큼이나 많아지고 있다. 가끔 춤인지 뭔지 모를듯한 추임새를 넣는 노인이 있는가 하면, 돋보기를 올리고 내리며 핸드폰을 꺼내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일어서는 노인, 웃다가 사례가 들렸는지 쿨럭거리는 노인, 그 옆에서 바삐 주머니를 뒤적여 알사탕을 건네주는 세심한 노인도 있다.


그리와 보기는 서로 윙크를 찡긋하며 엄지와 검지를 탕탕 튕겼다. 그리고는 쫑긋 나온 두 귀를 엘프모자에 쏙 집어넣고는 휘파람을 휘휘 불며 쪼르륵 미끄럼틀 계단을 오르고는, 노랑 미끄럼틀을 슝 타고 내려왔다.

그리와 보기는 쪼르르 시소 쪽으로 달려가서 양쪽 끝에 걸터앉았다. 콩 콩 시소가 오르고 내릴 때마다 그리와 보기의 엘프 모자가 세모 모양을 보이며 공중에서 펄럭였다. “히야호!” “호이오!” 그리와 보기는 너무 신나서 이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시소를 콩콩 탔다. 노인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일제히 쏠리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귀엽기도 하지. 저기 저 애들 봐요. 요즘 부모들은 애들을 참 예쁘게도 키우지. 저런 모자는 어디에서 나서 씌웠을까. 우리 애들 키울 때는 그럴 겨를이 어디 있어. 밥 먹이고 공부시키기에도 벅찼지. 저렇게 입히고 키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고.”

“아우, 그런 소리 말어. 우리는 할 만큼 했어. 그만큼 했으면 된 거야. 이제는 딴생각할 거 없어. 우리 한 몸 잘 챙기는 게 제일 큰 일이야. 그게 애들한테 해 줄 수 있는 최고인 거 아니야? 그나저나 저 두 녀석들 참 귀엽기는 하네. 얼마나 귀한 것들이야. 요즘 같은 세상에.”

이제 노인들의 이야기는 ‘애기들이 귀해진 세상’, ‘유모차에 애기가 있는지 강아지가 있는지’등의 이야기 한마당으로 넘어가서 다시금 왁자지껄 해 졌다.


신나게 한바탕 시소 타기도 지겨워 지자, 그리와 보기의 장난기가 고개를 내밀었다.

“자, 이제 슬슬 시작해 볼까, 그리?”

“히야호! 당연하지. 안 그러면 우리가 여기 왜 있겠어, 보기?”

“너도 나랑 지금 같은 생각이야?”

“아마도!”

“하나, 둘, 셋!”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가 동시에 외쳤다.

“의자!”

“그래, 의자!”


둥그렇게 모여 앉은 노인들은 다시 이야기 삼매경에 빠져서 점점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었다. 노인들이 앉아 있는 의자들은 초록과 노랑의자들이 섞여 있었다.

보기가 엄지와 검지를 튕기며 장난마법을 걸기 시작했다.


“초록의자여, 뿍빡 거려라! 호히호!”

그리도 엄지와 검지를 탕탕 튕기며 소리쳤다.

“노랑의자여, 너울너울 춤을 추어라! 하히우!”

보기와 그리는 오른쪽으로 빙그르르, 왼쪽으로 뱅그르르 춤추듯 돌았다.


뿌~왁!!

왕꽃 할머니가 앉아 있던 초록의자에서 뱃고동 같은 소리가 길게 울렸다. 하필 왕꽃 할머니가 굽혔던 허리를 곧게 펴려던 순간이었다. 일제히 노인들의 시선이 왕꽃 할머니에게 쏠렸다.

“역시 왕꽃여사는 방귀소리도 크고 시원하시구먼!”

목소리대장 최영감이 낄낄 거리며 놀렸다.

“난 아니여! 생사람 잡네그려! 아이고!”

얼굴이 벌게진 왕꽃 할머니가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또 어디선가 삐~융!! 하며 풀피리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박 씨 영감님은 ‘흠흠’하며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아니, 다들 뭘 먹고 왔길래, 이렇게 장운동이 화끈 하신가들!”


바로 그때. 얌전히다고 소문난 새침할머니가 ‘어이쿠!’ 하더니 두 팔을 휘저으며 춤 비슷한 동작을 하는 것이었다. 건너편에 앉아 있던 빼빼 할머니는 ‘옴마야’하더니 지팡이를 흔들어 댔고, 왕년에 택시를 몰던 택시할아버지도 큰 배를 출렁거리며 얼굴이 벌게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는 삐~웅, 빵~, 푸시시시! 갖가지 방귀소리가 이 엉터리 춤판에 장단을 맞추었다. 노인들은 정신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장난꾸러기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는 배를 움켜쥐고 깔깔 낄낄 웃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엘프의 장난마법 시간은 5분.

노인들은 한바탕 방귀 춤판을 벌이고는 기운이 쏙 빠진 듯 서로의 얼굴만 두리번거리며 바라 볼 뿐이었다.



그리와 보기는 놀이터 입구 귀퉁이에 모여있는 작고 주름 없는 인간의 무리를 발견했다.

“쟤네들 좀 귀엽다. 그렇지?”

“우리랑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가까이 가보자!”


여러 명의 아이들이 놀이터 입구까지 왔다가, 울타리 밖에서 쭈뼛거리고 있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어가며 노인들이 모여있는 쪽을 살핀다.

“아이 참, 어쩌지? 그냥 모른 척하고 들어가 놀까?”

“저기 봐. 그때 소리 질렀던 할아버지도 있잖아. 그래도 엄마가 신고까지 할 줄은 정말 몰랐어.”

“하지만 우리가 잘못한 거 아닌 것 같아. 이 놀이터는 우리를 위한 거 아니야?”

아이들은 자기들의 억울함을 호소라도 하듯이 놀이터 울타리를 발로 툭툭 차거나 이마를 탁탁 짚기도 하며 뾰로통한 입술을 삐죽거렸다. 노랑 파랑 칠을 한 미끄럼틀과 시소 그리고 그네들이 오늘따라 더욱 유혹적이었다.


“얘들아? 왜 놀이터 안 들어가고 그러고 있어?”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서워서 그러는 거야?”

어느새 아이들 뒤에 와 있던 그리와 보기가 빙글빙글 모자방울을 공중으로 돌리며 말을 건넸다.


“누가 무서워한다는 거야? 우리를 어떻게 보고!”

“그러는 너희는 왜 안 들어가는데?”

아이들은 옷 차림새도 이상하고 지나치게 눈이 큰 낯선 두 아이들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아이들 중에 가장 키가 크고 마른 아이가 불쑥 보기의 모자 방울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보기는 재빠르게 펄쩍 뛰며 방울소리 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히야호! 너 참 용감하기도 하다. 감히 내 모자를 벗기려 하다니. 그렇지 친구야?”

보기는 그리를 보며 찡긋 윙크를 했다. 그리는 재미나다는 듯이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었다. 아이들은 이상하지만 유쾌한 두 아이의 좀 과한 말투와 동작에 할 말을 잠시 잊은 듯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다 같이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서로 툭툭 어깨를 치기도 했다.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 때문에 너희들 짜증 났겠다.”

그리가 빙글빙글 웃으며 아이들을 슬쩍 떠봤다.

“다는 아니야. 저기 보이지? 모자 쓴 저 할아버지가 우리한테 소리 질렀다고!”

“맞아,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안 그랬어. 그렇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기가 볼이 통통한 아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뭐가 걱정이야? 그냥 저 할아버지는 무시하고 들어가서 놀면 되잖아!”

“근데 문제는 우리 엄마가 신고를 했다는 거지. 이제 저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두 우리를 다 미워할 거야.”

파란 티셔츠를 입은 키가 껑충 큰 아이가 말했다.

아이들은 좀 기가 죽은 모습으로 괜히 서로의 어깨며 운동화를 툭툭 건드렸다.


보기가 파란 티셔츠 아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뭘 그렇게 걱정하냐? 그냥 가서 먼저 인사하는 거야. 그리고는 잊어버리는 거야. 그냥 신나게 놀면 되지!”


아이들은 일단 놀이터에 들어가서 놀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들 파란 티셔츠 아이를 격려하느라 바빴다. 아이는 아이들의 응원에 등 떠밀려 머리를 긁적이며 앞장서 걸었다. 아이들은 쫄래쫄래 뒤따랐다.

“우리 외교사절단 같다.”

뒤 따르는 무리 중 동그란 빨간 안경을 쓴 아이가 신나서 말했다.

“전쟁은 가고 평화의 시대가 오는 거야. 히야호! 이때 중요한 것은 이렇게 웃으면서 가는 거지.”

보기는 과장 되게 웃어 보이느라 가뜩이나 얼굴에 비해 큰 입이 두 배만큼 커졌다.

아이들은 보기의 입 크기만큼을 아니어도 저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뭔가 재미난 놀이가 시작된 기분이었다.



“저 애들 좀 봐요. 왜 놀이터에는 안 들어오고 밖에서 저러고들 있지?”

“고물고물 강아지들 같네그려. 고놈들 웃음소리 참 듣기도 좋다.”

노인들은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는 놀이터 울타리 밖에서 병아리 떼처럼 모여있는 아이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최영감! 행여나 애들한테 또 뭐라 하지 말아요. 저 봐요. 얼마나 보기만 해도 예쁜 것들 이예요. 천금보다 귀한 애들이 아니에요?”

왕꽃 할머니가 최 씨 영감에게 눈을 흘기며 한 마디 했다.

“두 말하면 잔소리지요. 요즘세상에 아이들이 얼마나 귀하냐고요.”

할머니들의 단속에 최 씨 할아버지는 흠흠 목을 가다듬으며 고개만 끄덕거렸다. 그렇잖아도 괜스레 애들한테 호통쳤다가 놀이터 노인친구들한테 눈치 보이고, 의자까지 구청에 뺏기게 생겼으니 여간 난처한 상황이었다.


“재들이 우리 때문에 여기 못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요?”

“사탕이라도 주고, 여기서 실컷 놀라고 해 보는 건 어때?.”

마침 여행 다녀온 할머니가 사탕이랑 망고젤리를 잔뜩 가져온 터라 아이들에게 즉각적 화해를 시도하기에 딱 이었다.

“최영감이 다녀오슈. 애초에 애들 쫓은 당사자가 달래주러 가야지!”

“아니야, 오히려 재들이 무서워할 수 있으니 제일 인상 좋은 청주댁이 제격 아닐까?”

사탕봉지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통에 꼬마 외교사절단의 방문도 눈치채지 못할 뻔했다.



아이들은 쭈뼛거리며 노인들이 모여있는 의자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파란 티셔츠 아이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지자, 아이들은 서로 등을 쿡쿡 밀어가며 걸음을 재촉했다.


바로그때, 아이들의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서 쫓아오던 그리와 보기는 장난칠 좋은 타이밍이라는 듯 서로에게 윙크를 했다. 그리고는 엘프식 몸짓대화를 서로 나누더니, 검지와 엄지를 탕탕 튕기며 씩 웃었다. 두 엘프의 입이 거의 귀까지 벌어졌다.


파란 티셔츠 아이를 중심으로 아이들이 둘러섰다. 노인들은 반가움 반 호기심 반의 눈빛으로 앉은 채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동시에 책임감 때문인지 최 씨 할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이들을 맞이했다.

쭈뼛거리는 파란 티셔츠를 빨간 안경이 뒤에서 쿡쿡 찔렀다.


“안녕하세요? 사과드리고 싶어서 왔어요. 흠흠, 근데 내 목소리가 왜!”

“오냐, 오냐, 나도 사과하고 싶었다. 근데 내 목소리가 왜!”

“아니, 별안간 최영감 목소리가… 아이고 내 목소리가 왜!”

”얘들아, 이게 다 무슨 일이… 헉 내 목소리가 왜! “


이제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왜!’라는 외침들이 마구마구 터져 나왔다. 누구는 허밍으로 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누구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누구는 허공에 ‘악악’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다. 놀이터는 그 어느 때보다 시끄러웠지만 어느 누구도 조용히 하라고 할 수 없었다. 왜냐면 자기의 목소리를 말로, 노래로, 괴성으로 확인하고자 서로 왁자지껄 있는 대로 소리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난리통에 단 두 존재. 보기와 그리만이 이 이 난장판을 재미나게 관람하고 있었다. 장난꾸러기 두 엘프들의 마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바뀌어라, 바뀌어라! 내 목소리 네 목소리! 히야호!”

“바뀌어라, 바뀌어라! 어린 목소리 늙은 목소리! 하이후!”


엘프들의 장난마법은 단 5분. 연장하려면 마법주문을 다시 걸면 되지만 그리와 보기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신나게 한판 웃으면 그것으로 오케이! 마법시간을 연장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목소리 난장판이 잦아들자, 어리고 늙은 사람들은 각자 모습에 걸맞은 어리고 늙은 목소리들로 감쪽 같이 돌아와 있었다. 저마다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니면 서로 정신줄을 놓기라도 하듯 난리를 쳤던 것이 민망하기 때문인지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뜻밖의 재난(?)을 같이 이겨 낸 끈끈한 동료애 비슷한 감정이 솟아났는지 이 평화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시간이 좀 지나자, 노인들도 아이들도 평소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아이들의 재잘거림에 함박웃음들을 보이며 “오냐오냐” “그럼 그럼” “오구구구” “이쁜 강아지들” 이런저런 감탄사들을 제각각 연발했다. 어느새 최영감은 애들 손에 사탕과 젤리를 한 움큼씩 집어 주며 ‘허허허 고놈들’하며 바람소리가 쉿 쉿 섞인 듯한 웃음소리를 연신 내었다.


이제 놀이터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런저런 소리들과, 노랑 빨강 초록 놀이기구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뛰노는 아이들의 이런저런 소리들로 유쾌함이 가득했다. 소리들이 점점 커지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만 더욱 좋아질 뿐이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눈과 입이 큰 세모 모자 친구들이 어느 틈에 사라졌는지 잠시 궁금했지만 지금 놀이가 너무 즐거워 금방 잊어버렸다.



빙글빙글 빙그르르 돌고 돌아라

뱅글뱅글 뱅그르르 돌고 돌아라

셋둘하나 딱 멈춰

보인다 보여

보기와 그리

셋둘하나 딱 멈춰

보인다 보여

그리와 보기


그리와 보기는 손뼉을 탁탁 치고 두발을 점프 점프 하며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의 노래를 신나게 부르며 빙글빙글 춤을 추었다. 그리와 보기의 파랑 목걸이 주머니에는 한 개씩의 마풍이 들어있었다. 어느새 해는 쉬러 가고 달은 놀러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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