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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 1.

프롤로그 & 제 1화 이상한 아침

by 뽀득여사

방그리와 행보기는 엘프이다. 보통 '그리'와 '보기'로 불린다. 그렇다고 방 씨이고 행 씨인 것은 아니다. 부르기 쉽게 줄인 애칭일 뿐.

엘프들의 하루는 소리로 시작한다. 밤새 어디에서 있었는지 서로 잘 모른다. 수국 꽃더미 사이일 수도, 빨간 우체통일 수도, 가로등 위 일수도, 밤새 켜져 있던 간판 밑일 수도, 빵집 창틀일 수도, 취향이 독특하다면 도로변 하수관도 가능… 그렇게 저마다의 침실로 사라졌다가 소리로 깨어나고 셋, 둘, 하나 짠! 모습을 드러낸다.


각자 깨어나는 소리도 참 다양하다.


빗방울 같은 소리

아기 딸꾹질 같은 소리

숟가락으로 유리 접시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

귀뚜라미와 개구리 소리를 섞어 놓은 것 같은 소리

파도가 뱃전에 부딪치는 것 같은 소리

전동 커피머신 추출 할 때 같은 소리

도마 위에서 당근 자를 때 나는 것 같은 소리

배고플 때 배에서 나는 것 같은 소리

숙녀의 또각또각 하이힐 굽 같은 소리

심벌즈의 차르르 떠는 공명 같은 소리

풍선껌 부풀리다가 딱 터지는 소리


그래서 엘프들의 아침은 고요한 인간세상 아침과는 정반대다.

각자 소리들의 데시벨이 그리 높지는 않아서 다행이지, 만약 조금만 더 데시벨이 높았어도 온 세상 사람들이 엘프를 잡으려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엘프들과 사람들은 같은 세상을 함께 사용하고 있지만 엘프들의 워낙 여러 재주가 많다 보니, 인간들은 엘프를 알아보지 못한다.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기에 하나의 세상 배경이지만 두 개의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엘프들은 호기심이 많다. 관심 가는 상황이면 뾰족 귀와 둥글 눈이 더욱 커지면서 듣고 본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엘프들은 성별 없음, 나이 없음, 인성이나 성격 특징도 자유자재 변신 가능하다. 고체가 아닌 액체의 느낌이랄까. 호기심 많은 엘프들은 종종 인간 세상에도 뛰어든다. 그러나 변신술의 귀재인 엘프의 존재가 발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정도쯤 기본 정보를 가지고 이제 시작해 보자.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의 이야기를.



1. 이상한 아침


‘타닥타닥 탁탁 타다닥 탁 탁.’

오늘 그리의 소리기지개는 바짝 마른 나무가지로 불 피운 모닥불 소리이다.

“셋 둘 하나! 오늘도 신난다!”


초록 모자를 한 번 다시 고쳐 쓰고는 뾰족한 두 귀를 기분 좋게 흔든다.

그리의 지난밤 침실은 어느 동네 놀이터의 시소.

그런데 여전히 들리는 소리.


‘타닥타닥 탁탁 타다닥 탁 탁, 타닥타닥 탁탁 타다닥 탁 탁.’


엘프의 아침 소리는 같은 소리가 있을 수 없다. 이것은 엘프세상의 대원칙이다. 조금이라도 달라야 한다. 그리는 얼굴에 비해 크고 뾰족한 귀를 더욱 크고 뾰족하게 세우고는 귀를 기울여본다.

역시 똑같은 소리. 이상하다.

그리는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본다. 미끄럼틀 쪽으로 가자 소리가 점점 커진다.



‘타닥타닥 탁탁 타다닥 탁탁.’

셋둘 하나 짠.

슝~, 노랑 미끄럼틀에서 초록모자를 펄럭이며 보기가 스키를 타듯 내려온다.


“오늘도 신난다!”


보기는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한 듯 두 귀를 흔들고, 팔을 흔들고, 다리도 탭댄스를 추듯 흔들어 댄다.

그리는 보기의 아침 댄스를 잠시 지켜보다가 보기의 발이 땅에 잠자코 붙어있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정말 이상한데?”

“뭐가?”

신나게 한바탕 아침춤을 추고 상쾌해진 보기는 그리를 쳐다보며 묻는다.

그리는 보기를 보며 오늘 자신의 아침소리를 내었다.

“타닥타닥 탁탁 타다닥 탁탁”

그리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타닥타닥 탁탁 타다닥 탁탁”

보기는 흥미로운 눈동자를 굴리며 자신의 아침소리를 외쳐본다.


“이상한 거 맞지?”

“이상하기는 한데 재밌는 걸!”

“하긴 이상하기는 해도 뭔가 재밌다.”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다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를 보며 동시에 외쳤다.


“재밌는 걸!”


그리고는 신난 두 엘프는 즉석에서 노래를 만들어 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빙그르르 돌고 돌아라

뱅글뱅글 뱅그르르 돌고 돌아라

셋둘하나 딱 멈춰

보인다 보여

보기와 그리

셋둘하나 딱 멈춰

보인다 보여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의 즉석 노래가 세 번쯤 돌아갈 즈음 보기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지령 확인을 해 보자. 퀸엘프님 공지가 떴을지도 모르잖아.”

“좋은 생각이야. 퀸엘프님의 재미난 공지를 확인하자.”

“재미난 건지 어떻게 알아?”

“지금까지 퀸엘프님 공지 중에서 재미없는 것이 있었어?”

“아니, 한 번도 없었지.”

“그래. 그러니까 이번에도 분명 재미있는 공지겠지!”

“아하 그렇구나. 너 참 똑똑하다.”

“그 정도 가지고 뭘. 헤헤!”



띵띵! 퀸엘프님의 지령이 도착했습니다.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 나의 엘프들아 요즘 따분한 기분이 든다는 엘프들의 징징거림으로 나의 귀가 간지러워 잠을 설칠 지경이거늘. 나 퀸엘프의 이런저런 지혜를 발휘하여 이벤트를 준비하였음을 공지하노라.

이벤트의 제목은 <열한 개 마풍 찾기>.

마풍은 마법 풍선껌으로, 힘껏 불고 불어도 절대 터지지 않지. 2엘프 1조로 팀워크 활동이며 똑같은 아침소리로 자신의 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퀸엘프는 우리 엘프들의 호기심과 장난끼 그리고 거침없음을 너무도 잘 알기에 마풍을 요정세상이 아닌 인간세상에 꽁꽁 숨겨놓았음을 알리노라. 인간세상 속에서 이리저리 뛰놀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열한 개의 마풍을 찾아오는 팀에게는 원하는 엘프능력을 선사하겠노라. 우리 엘프들을 사랑하는 이 퀸엘프의 진정성이 전해졌기를 바라며 공지문을 마치겠노라.


p·s: 마풍을 왜 11개로 정했는지 혹시 궁금해하는 호기심 엘프들을 위해서 덧붙이자면, 어떤 지식충만한 엘프가 귀띔해 주길 독일어로 엘프가 11이라는 뜻이라기에 개수를 11개로 정한 것임을 알리노라.



<그리와 보기, 보기와 그리. 제 2화 놀이터는 재밌어> 다음주에 이어집니다.

소설 또는 동화창작을 틈틈히 습작하는 가운데 <생각의 물구나무>연재에 종종 소재로 등장하는 친정엄마의 방학동 놀이터 모티브와 장난꾸러기 요정의 콜라보(?)로 동화의 첫 에피소드를 써보았습니다. 놀이터의 이야기로 다음주 까지 총 2회로 올리겠습니다. 뜬금없는 동화를 올려서 어리둥절 하셨을 우리 글벗님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이 또한 엉뚱한 물구나무 정도로 봐주셔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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