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셸 뒤샹의 『샘』을 마주하며, 주도적 삶의 즐거움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 Museum)을 향하면서 나는 내내 마음속으로 최면을 걸었다.
‘나는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이것을 처음 보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마주한 마르셸 뒤샹의 『샘』.
곡선으로 이루어진 형체. 상부 쪽은 좁고 하부 쪽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구조. 하부 좌우 바깥쪽으로 연결되는 작은 네모 부분. 상부 안쪽에 세로로 작은 구멍이 네 개, 하부 안쪽 삼각형배열의 작은 구멍 여섯 개. 도기 하단에 안에서 바깥쪽으로 뚫려있는 구멍. 하얀 빛깔의 도기재질. 전체적으로 가로의 두 배정도 되는 세로길이…
유리관 안에 고이 전시된 이 작품을 바라보며 상상을 펼쳤다.
‘만약 이게 유물이라면 어떤 용도로 쓰였을까?’
‘예술작품이라면 내게 어떤 영감을 줄까?’
다행히 평일이라서 생각보다 관람객이 붐비지는 않아서 나만의 상상의 즐거움에 빠져서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고, 발걸음 소리와 낮게 울리는 전시장 음악만이 들렸다. 작품과 나 사이에는 오직 시선과 사유만이 존재하는 듯했다. 바로 앞으로 가기도 하고,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 천천히 돌며 360도 작품의 전체를 감상하기도 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작품을 보러 가는 동안은 아무리 머릿속으로 ‘나는 이것을 처음 본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어도, 딱풀처럼 내 머릿속에 ‘변기’라는 이미지가 딱 붙어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 작품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느끼고 상상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샘』을 나만의 백지 위에 새롭게 새겨가고 있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에 전시되어 있는 마르셸 뒤샹의 『샘』은 그렇게 내게 사유의 샘을 뚫어주었다.
마르셸 뒤샹의 ‘샘’이 나의 생각의 샘에 퐁 던져 준 사유의 돌!
보이는 것과 보는 것.
'보이는 것'은 이미 정형화되어 있는 것, 고정적인 경험과 사고에서 비롯된 틀, 고유명칭으로 굳혀있는 것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보는 것'은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뒤샹은 일상의 변기를 예술 작품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을 제안함으로써, 그 예술을 향유하는 자에게 그 예술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나의 사유의 샘에 퐁당 던져진 뒤샹의 돌멩이의 파문은 더욱 번져갔다.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이다.
주어진 대로 보이는 대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의 자세보다는 나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재해석하는 삶이 훨씬 즐겁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끌려가는 삶이 아닌, 보는 것의 즐거움을 찾아가는 예술적인 삶 곧 삶의 예술가가 되면 좋겠다.
P.S. 열흘간의 런던놀이터에서 잘 놀다 왔습니다. 런던은 여러모로 너무 매력적인 도시였습니다. 문화 역사 예술 여가생활이 모두 한데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더군요. 그래도 또 느끼는 점은, 한국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점입니다^^ 여름이 참 길었지만, 이제 제법 가을이 조금씩 느껴지네요. 두 주만에 고향같은 브런치 놀이터에 놀러 오니 역시 즐겁고 정답습니다. 글벗님들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오마이 뉴스> 사는이야기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