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틈을 찾아서.
1초, 2초, 3초....
난감한 표정으로 미희님(가명)이 나를 쳐다본다. 나는 살짝 미소를 띤 채 그 눈길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녀가 힘없이 하는 말.
"놀이터가 없어요."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가정에서 열심히 아이를 키우는,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미희님이다.
늘 단정한 미희님.
차분하게 정돈된 긴 단발, 과하지도 소홀하지도 않은 깨끗한 메이크업, 흐트러짐 없는 옷매무새.
몸의 움직임, 말씨, 제스처까지 모두 공손하다.
상담가의 질문에도 충분히 생각한 뒤 조심스럽게 문장을 꺼낸다.
말이 세상에 나오기 전, 이미 몇 번의 거름망을 통과한 듯한 느낌이다.
단정하고 정돈된 미희님을 둘러싼 공기에 흐르고 있는 것은 바로,
긴장감.
살짝 솟은 어깨, 무릎 위 얌전히 얹은 두 손, 동그란 눈망울과 작은 입꼬리에 머문 미소에도 긴장이 얹혀 있다.
“미희님, 우리 틈을 만들어볼까요?”
그녀의 어깨에, 두 손에, 눈망울과 입꼬리에 그리고 마음과 생각에 틈이 있으면 좋겠다. 창문을 살짝 열어 바람이 솔솔 들어오고 나가는 정도의 틈.
활짝 열 필요는 없다. 걸쇠만 살짝 풀어놓아도, 슬며시 바람이 들어올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우리에게는 놀이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미희님에게는 어떤 놀이터가 있으신가요?”
“놀이터요?”
“네, 놀이터요. 그냥 생각 없이 놀아도 되는 곳, 뛰고 뒹굴어도 걱정 없는 곳, 그 놀이에 그냥 빠지게 되는 곳, 심심하면 가고 싶은 곳, 놀다가 지치면 미련 없이 나올 수 있는 곳. 그런 놀이터요.”
동그란 눈망울에 긴장과 당황, 공허가 어린 채, 그녀는 말이 없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인다.
“놀이터가 없어요. 제게는.”
미희님의 어깨가 풀이 죽은 셔츠처럼 순간 축 쳐진다. 조금의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살짝 실망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선생님의 놀이터는 무엇인가요?”
그녀답게, 되묻는 말에도 공손함이 배어 있다.
빙그레 웃으며 나는 대답한다.
“실례라니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음, 저의 요즘 놀이터는요.”
저는 혼자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는 놀이터가 있어요.
저는 밤에 동네를 빠르게 걷는 놀이터가 있어요.
저는 지인들과 매주 두 번씩 수다 떠는 놀이터가 있어요.
상담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해, 조심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미희님처럼 먼저 묻는 경우에는 예외다. 놀이터 이야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표정도 말투도 제스처도 상기된다.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미희님이 재밌어하는 것이 있을까요?
마음이 편하게 느껴지는 장소나 활동이 있을까요?
어릴 때부터 변하지 않고 관심이 가는 것이 있을까요?
뭔가를 할 때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 있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아요.”
“그렇군요. 그럴 수 있어요. 괜찮아요. 놀이터야말로 가고 싶으면 가는 곳이지, 일부러 가야 하는 곳은 아니니까요.”
그녀의 눈망울이 반짝인다. 그리고 하는 말.
“놀이터에 가고 싶어요. 나만의 놀이터로요.”
“그럼, 이제 미희님의 놀이터를 찾아볼까요?”
그날, 미희님은 자신만의 놀이터를 찾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어깨는 조금 내려갔고, 두 손은 손바닥이 보이게 펼쳐졌다.
그녀의 가벼운 웃음소리도 들렸다.
미풍처럼 긴장을 밀어내는 소리였다.
미희님은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놀이터에 어떤 놀잇감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녀의 놀이터에는 어떤 놀이기구가 기다리고 있을까?
당신에게도 당신만의 놀이터가 있나요?
P.S. 이번 주 후반부터 열흘정도 브런치 놀이터를 잠시 들르지 못할 예정이라, 그 시기에는 우리 글벗님들의 글방 방문도 잠시 미뤄지게 되었습니다. 잘 다녀와서 좋은 글감 풀어보겠습니다^^
아마, 제가 한국에 돌아올 즈음에는 더욱 가을이 가까이 와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해요~~ 오늘도 각자의 일터와 놀이터에서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를요^^
https://youtu.be/wkhDqE2ubbU?si=UiyIBIG2hcLWsu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