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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득여사 Jul 15. 2024

참 기가 막히게 좋은데, 절판이라니!


나의 놀이터 중 한 곳인 ‘지지향’에는 천정부터 바닥 끝까지 사방의 모든 벽면이 책으로 둘러 쌓여 있다. 시간만 나면, 나는 지지향으로 간다. 특히 풀에 덮인 연못과 육교가 그림처럼 펼쳐진 통창 곁 테이블에 앉아서 글도 쓰고, 수많은 책들 중 마음 가는 책도 꺼내 읽고 향기로운 커피도 마신다.

힐링스페이스이자 작업실 결국 나의 재미난 놀이터이다.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 있었다. <쥘리에트가 웃는다>이다. ‘뭔가 써야지’ 노트북을 열고 자판기 위에서 허공에서 손가락만 허우적 거리기를 몇 십분. 창 밖의 살랑대는 연못 위의 웃자란 물풀을 넋 놓고 바라보기 한 십여분. 에라이, 안되겠다. 잠시 머리나 환기시키고자 벽탐방(지지향의 온 벽면은 책으로 가득차서)을 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한 엄청난 책들의 향연을 뒷목덜미가 뻐근하게 위로 올려 보다가 손에 잡은 책이었다. 그 날의 나의 목표는 글쓰기 였기 때문에 사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날 지지향에서 글은 한 줄도 쓰지 못했다. 책을 정신없이 느라!

이 책은 재밌었다. 마치 한편의 재미있고 따뜻하고 위트가 넘치는 영화시나리오 같았다. 보통 지지향에서 읽던 책은 다 못 읽으면 기억했다가 다음에 왔을 때 다시 읽는 식의 책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는 그 책이 재밌기도 했지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취향이기도 해서 최소한 일주일을 기다렸다가 다시 읽기가 싫었고 그렇다고 다 읽을 때까지 지지향 머무를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서점이트를 검색했다.


이런!  ‘절판’이었다. 아니, 이렇게 재밌는 소설이 절판이라고?


사고 싶었던 상품이 품절이라면 안달이 나는 심정이랄까? 상당히 아쉬웠다. 아쉬움에 이리저리 검색하니 중고 상품으로는 구매 가능했다. 일단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리고 그 책 커버 뒷면의 몇 권의 책 소개를 살펴보았다. 만약 이 책 스타일과 비슷한 책들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검색에 들어갔다. 앗, 그 책들도 마찬가지로 대부분 절판이었다. 다행히, 중고 구입은 가능했다. 바로 장바구니에 줄줄이 담았다. 중고 서적 플렉스를 했다.



하루 이틀 뒤, 인쇄 냄새와 커버 광택을 발산하는 자태는 이미 시간의 허공에 날린 지 오래인 상태의 책들이 속속 배송되었다. 다행히, 책들의 상태는 양호했다. 내심 안심이었다. 가장 먼저 지지향에서 읽다 만 <쥘리에트가 웃는다 : 엘자 샤브롤 지음>를 시작으로 <개를 돌봐줘 : J.M. 에르 지음>를 읽었다. 이 책도 내용 전개와 구성이 매우 흥미로웠다. 두 권을 연달아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책들도 나름 흥미로웠다.


절판되었기에 중고 구매한 책들을 따로 모아놓고 가만히 보고 있는데, 마음이 좀 그랬다. 일단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안쓰러움이었다. 이렇게 소설 한 편을 완성해 내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자신의 영혼을 갈아가며 썼을 텐데, 충분히 재인쇄의 축복을 누릴 만 한 것 같은데 첫 무대가 마지막 무대가 되어버리다니! 비단 이 책 뿐이랴! 수많은 책들이 같은 운명을 얼마나 맞이했을까? 그나마 이 책들은 무대에 화려하게 올라가 보기라도 했다. 절판된 책들 보다 더 수많은 창작품이 작가의 땀과 진으로 형체를 부여 받았으나, 마지막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지 못한 채 죽은 태아처럼 화석이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왜 이렇게 이 녀석들이 안쓰러운지, 절판된 책들을 하나 씩 쓰다듬어 본다.

‘너희들은 멋진 녀석들이야. 너희들이 무대에서 내려 온 것은 부족하거나 덜 매력적이라서가 결코 아니야. 단지 상황이 그렇게 된 것일 뿐. 너희의 가치는 결코 빛 바래지지 않아!’



그야말로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전문성을 인정받은 학술서의 책 소개는 넘쳐다. 나는 절판이라는 ‘쓴잔’을 마신 이 녀석들을 사진 한 컷으로라도 그 가치를 알리고 싶었다. 찰칵!

                                                                                  


어쩌면 이 책들을 알리고 싶었다기보다는 이렇게 좋은 작품을 세상에 태어나기까지 수고한 작가들에게 위로와 찬사를 보내고 싶었던 것 같다. 더 나아가 자신의 꿈과 열정 그리고 힘을 쏟으며 작품을 써 가는 수많은 씨앗작가(나 자신을 포함해서), 땅속에서 움트기를 기다리며 애쓰는 작가님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 오늘도 어딘가에서 영혼을 갈아 넣고 있는 작가님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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