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큐 마이 캡틴!!
에잇 닥치면 다 하는 거지 뭐. 까짓 거 할 수 있다. 아자아자 파이팅!!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니 부담감이 엄습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삼일 앞으로 다가오니 체념의 단계에 오면서 ‘이미 월요일 오후가 되었다’라고 상상도 해 보았다. 일시적인 효과는 있었다.
“내일은 거의 못 먹으니까. 많이 먹어두는 게 좋아.”
나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경험치가 많은 내 짝꿍은 식탁 위의 빵봉지를 뜯으며 내게 권한다.
“괜찮아. 지금 배불러”
“내일 되면 이 빵이 그리울걸. 먹어두는 게 좋을 텐데.”
짝꿍은 우유를 큰 컵에 따르며 내게도 자꾸 권한다. 한 손에 빵을, 한 손에 우유컵을 들고 있는 짝꿍의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때까지는 그런 여유가 있었다.
이런 여유는 다음날 바로 후회로 밀려왔다.
아, 이래서 선배의 조언은 듣는 게 상책인데…. 다음날, 어제 남편이 큰 입 베어 물던 카스테라빵과 흰 우유가 그리워진다. 전 날, 저녁을 가볍게 먹어서인지 아침부터 배가 고팠다.
일요일 아침, 미음 한 사발을 어찌어찌 먹는데 배고파서 그런지, 아니면 이 마저도 오후부터는 못 먹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밍밍한 미음도 맛있다. 나보다는 미식가인 남편이 그래도 간장이라도 몇 방울 떨어뜨리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길 잘했다. 미음에 떨구어진 간장 몇 방울은 미음의 품격을 높이기에 충분했다.
강대상 앞에는 온갖 먹음직스러운 과일과 곡식으로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오늘은 복된 추수감사절!
은혜로운 설교 끝에 목사님은
“맛난 떡이 준비되어 있으니 꼭 모두 받아가시길 바랍니다. 꼭이요!!”
벌써 고소한 팥시루떡 내음이 코 끝에 스멀스멀 들어온다.
아~ 이것이야 말로
‘그림의 떡’이로구나!!
아직도 뜨끈뜨끈한 팔시루떡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차에 탔는데
떡이 이리도 군침 도는 음식이었구나!
“내일 이 떡 꼭 먹을 거야.”
“그래 꼭 그러자.”
남편과 나는 평소에는 그렇게 먹을 것에 탐이 많지 않은 편인데 오늘은 아주 대화가 유아적이고 본능적이다. 우리는 곱게 봉투에 싸여있는 팥시루떡을 매만지며 팥시루떡에게 내일을 기약했다.
아~~ 그 일이 지나간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지금부터의 상황을 다시 떠올리니 괴롭다.
바로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였다.
지금부터의 고통에 비하면 배고픔은 그냥 애교였다.
만 오십이 되었으니 마땅히 받아야 한다(또한 이것은 권리이다)는 나라의 엄준한 명령(?!)에 의하여 생애 최초 받게 된 대장내시경.
여러모로 인생선배인 남편은 벌써 경험한 바가 있어서 내가 비위 상하는 약물과 물을 다 복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눈치이다. 병원에서 준 가루약을 500리터 통에 털어서 희석하는 것까지 굳이 본인이 해 주겠다며 내 비위를 맞춰준다. 고마운 짝꿍 같으니라고!
앗! 크게 한 모금 꿀꺽 입안에 머금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아뿔싸, 이거 너무 역하다. 아윽!!
남편은 꿀꺽꿀꺽 단숨에 마시더니 두 번째 물통을 이미 채우고 있다. 남편의 용맹한 모습에 힘을 내어 다시 크게 한 모금 꿀꺽! 아!! 어떻게. 토할 것 같다는 기분(기분만이 아니라 실제 역류의 기운이)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남편은 나에게 ‘할 수 있다’ ‘조금만’을 외치며 응원하기 시작했다. 다시 꿀꺽! 눈앞이 흐릿해지는 듯한 착각인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한 통을 비우자 남편이 비호와 같은 속도로 물을 대령해 준다. 맹물로 세 통을 더 마셔야 한다.
짧은 시간에 500리터 물(약 탄 물 1통, 맹물 3통) 네 통을 마셨다. 어메이징(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더 이상 서술하지는 않기로)하다!!
그런데 끔찍한 것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새벽에 다시 약 탄 물 1통, 다른 약 2포와 함께 맹물 2통을 추가로 마셔야 한다.
나는 갑작스럽게 빈속에 물을 많이 마셔서인지 두통까지 와서 거의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몇 시간 뒤 남편과 나는 마치 개그프로의 한 장면처럼 남편이 윽! 하면서 복도 화장실로 뛰어가면 나는 오마이! 하면서 안방 화장실로 뛰어가기를 수 차례. 오히려 이 과정은 기쁘게 서술할 수 있을 정도이다.
행동빠르기가 둘째 가라면 서러운 남편과 나는, 가장 일빠로 병원건강검진센터에 당도하겠다는 의지로 검진센터 오픈 시간보다 한참은 먼저 당도했다. 검진 끝나고 점심으로 뭐 먹을까를 서로 의논하는 여유까지 부리면서 말이다.
수면으로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동시에 진행하는 거라, 사실 병원에서의 과정은 이미 마음의 평정심을 찾은 상태였다. 처음 입어보는 참으로 민망하고 우스꽝스러운 대장내시경 용 바지로 환복 할 때는 헛웃음이 픽픽 나기도 했다.
그날 점심으로 우리는 삼계탕을 뜨끈하게 한 그릇씩 비워내고 흡족한 표정을 지을 수 있었다.
아! 맞다. 그런데 팥이 이렇게 빨리 쉬어버린다는 것은 몰랐다. 그날 저녁. 아일랜드 식탁 위에 고이 모셔두었던 팥시루떡을 기쁜 마음에 먹으려 했더니, 시큼한 냄새가 났다.
이런! 너무 아깝다.
역시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 은혜로운 팥시루떡!!
그날 나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쌍방향으로 관통을 당했네.
수직관통!
나는 죽었다 깨나도 내 속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 긴 의료용 관에 내 몸을 맡긴 채
위에서 아래도 모자라서, 아래에서 위로까지 내 몸을 허락했구나.
수면으로 하기를 잘했지, 정신이 말똥말똥 깨어있는 상황에서 수직 상하 관통을 당하는 상태를 상상하니, 썩 유쾌할 것 같지는 않다.
'모든 길은 통한다'라는 격언이 여기에도 적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몸도 이렇게 관통할 수 있는 길이 위아래로 이어져 있구나.
때때로 노란 안전모와 조끼를 입은 분들이 부지런히 깨어진 도로면과 흐려진 선의 보수, 노후장비 교체 등을 하느라 애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우리 몸의 도로들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하자보수 점검을 하는 것이로구나.
세상사 어쩌면 이리도 닮은 꼴들의 확장인지!
그래, 보수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점검하면서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다시 생각해도(갑자기 그 약맛이 입안에서 느껴진다 윽!) 우웩!이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5년 뒤를 기약해야겠다. 5년 뒤 대장내시경을 할 때는 전날 미리 빵과 우유를 배불리 먹어두어야지!(참, 요즘은 물약이 아니라 알약으로 먹기도 한다는데 5년 뒤에는 알약을 활용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