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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공영 Nov 08. 2024

동화: 모루의 크리스마스 선물-6

-자전거 바퀴 밑에 커진 동그라미

 모루가 큰길을 지나 비탈길로 오르려던 참이었어요. 길모퉁이에서 자전거 수리점을 하는 지노 삼촌이 모루에게 아는 척을 했어요. 


 “모루야, 경태랑 싸웠니? 왜 풀이 죽었어?”


 “삼촌, 이 세상에 진짜로 산타 할아버지가 없어? 흑!”


 모루는 지노 삼촌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어요. 지노 삼촌은 모루가 엄마 아빠 다음으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모루가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지노 삼촌은 어김없이 아는 척을 했어요. 모루가 시무룩할 때면 자전거 뒷좌석에 태워 수지 할머니네 집까지 바래다주기도 했어요. 그러면 모루의 기분이 금세 좋아졌어요. 그런데 모루는 지노 삼촌이 어디에서 살다 왔고 누구랑 사는지 아무것도 몰랐어요. 단 한 번도 그런 것들을 물어본 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모루에게 지노 삼촌은 그냥 지노 삼촌이었으니까요. 모루의 엄마 아빠가 그냥 엄마 아빠인 것처럼 말이에요.


  “왜 울어? 무슨 일 있었어?” 


 지노 삼촌이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다 말고 장갑 낀 손으로 모루의 눈물을 닦아주었어요. 지노 삼촌의 손에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이상한 힘이 들어 있는 것 같았어요. 모루의 마음이 서서히 진정이 되었어요. 


 “준호 형이 그러는데 이 세상에 산타 할아버지가 없대. 사람들이 전부 지어낸 얘기래. 참말이야? 삼촌?”


 모루는 눈물을 그치고 또박또박 말했어요. 그러자 지노 삼촌이 모루의 이마를 콕 쥐어박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이 맹추야, 산타 할아버지가 없으면 이 세상의 아이들이 어떻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을 수 있니?”


 그 순간 모루는 밤하늘의 별을 되찾은 것처럼 가슴이 환해졌어요.


 “정말이야? 삼촌? 정말로 산타 할아버지가 살아 있어? 루돌프 사슴은? 루돌프 사슴도 있어? 그럼 준호 형의 말은? 준호 형이 잘못 알고 있었던 거야? 응? 응?”


 모루는 숨 돌릴 새도 없이 지노 삼촌에게 질문을 마구 퍼부었어요. 


 “정말이고 말고.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자신만의 산타와 루돌프를 간직하고 있단다. 어른이 되어서도 말이야. 준호는 책만 많이 읽었지 아직 세상을 반 밖에 모른단다. 마음의 눈을 뜨지 못했거든.” 


 “마음의 눈?”


 모루가 지노 삼촌의 말을 따라 읊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러자 지노 삼촌의 눈동자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영롱해졌어요.  


 “그래, 마음의 눈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눈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난단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주변엔 온통 신기하고 아름다운 것 투성이지.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차츰 현실에 눈을 뜨는 대신에 마음의 눈을 감고 살지. 자신만의 산타와 루돌프를 보려면 마음의 눈을 떠야 해.”


 “어떻게?”


 “손에 쥐고 있던 것을 잠시 내려놓기만 하면 돼. 그러면 평소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잊고 지냈던 것들이 서서히 되살아나지. 그리고 이 세상에 하찮고 불필요한 존재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단다. 평소에 무심코 걷어찼던 돌멩이조차 자신에게 어떤 말을 걸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지. 그래서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된단다. 꼭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마음이 여유로워지거든.”  


 지노 삼촌의 목소리에는 이상한 힘이 느껴졌어요. 모루는 왠지 마음이 숙연해졌어요. 

곧이어 모루는 지노 삼촌에게 이렇게 아는 척을 했어요.


 “엄마 생각할 때처럼? 손을 배꼽에 올려놓고 이렇게 눈을 감고 있으면 엄마 얼굴도 보이고 엄마 목소리도 들리는 걸?”


 “그래. 모루가 엄마 생각할 때처럼 말이야. 하하.”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뜨는 시늉을 하는 모루를 보며 지노 삼촌이 가볍게 웃었어요. 덩달아 모루의 기분도 좋아졌어요.


 “그럼, 삼촌. 오늘 밤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도 다녀가실까?”


 “당연하지. 모루는 산타 할아버지한테 무슨 선물을 받고 싶은데?”

 지노 삼촌이 모루의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그러자 이번에는 모루의 눈동자가 별빛처럼 초롱초롱 빛났어요.


 “금색이랑 은색이 들어 있는 삼십육 색 크레파스. 진짜 살아있는 별을 그리고 싶어.”


 “이야, 멋진 걸.”


 지노 삼촌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감탄을 했어요. 그때 하늘에서 흰 눈이 포슬포슬 내리기 시작했어요.


 “집에 가자마자 산타 할아버지가 잘 보실 수 있도록 현관 앞에 양말을 걸어 두어라. 오늘 밤에는 산타 할아버지가 모루의 집에도 틀림없이 들리실 테니까. 알았지?” 


 지노 삼촌이 모루의 목도리를 꼭꼭 여며 주며 당부를 했어요.


 “응. 삼촌. 안녕.” 


 모루는 지노 삼촌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비탈길을 올라갔어요. 골목길로 접어들자 담장 위에 있던 삼식이가 모루를 보더니 샐쭉한 눈빛으로 고개를 휙 돌렸어요. 모루는 그런 삼식이에게 소리를 질러 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요. 오늘 밤에는 분명 산타 할아버지가 다녀가실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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