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바퀴 밑에 커진 동그라미
모루가 큰길에 있는 그린 타워 앞을 지나갈 때였어요. 맞은편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준호 형이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걸어왔어요.
“형, 오늘 밤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에도 다녀가실까?”
모루는 준호 형에게 다가가 물어보았어요. 준호 형은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모르는 게 없었거든요.
“무슨 말이야?”
준호 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래서 모루는 준호 형에게 자초지종 설명해 주었어요.
“아니, 경태와 아리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선물을 꼬박 받잖아. 근데 난 한 번도 선물을 못 받았잖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말이야. 음, 그러니까 산타 할아버지가 오늘 밤에는 헤매지 않고 우리 집을 제대로 찾아오실 수 있을까?”
“아, 난 또 뭐라고. 야, 이 세상에 산타는 없어.”
준호 형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모루는 너무 놀라 심장이 터질 것 같았어요.
“에이, 말도 안 돼. 그러면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이들이 어떻게 선물을 받을 수 있지? 산타 할아버지도 없는데?”
모루는 주먹을 꽉 쥐고 태연한 표정을 지었어요. 준호 형에게 꼬맹이 취급을 받으면 안 되니까요. 그러자 준호 형이 한쪽 발을 까딱거리며 심드렁하게 대답했어요.
“그거? 애들이 밤에 잘 때 부모님이 몰래 갖다 놓는 거야.”
모루는 준호 형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또 물어보았어요.
“그럼, 루돌프 사슴 코 노래랑 산타 할아버지 나오는 영화는?”
“그것도 사람들이 전부 지어낸 얘기야.”
“어떻게?”
“옛날 유럽의 어느 나라에 성 니콜라우스라는 주교가 있었대. 그 주교는 남몰래 착한 일을 아주 많이 하고 죽었대. 그래서 그 주교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사람들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대. 그 풍습이 널리 전해져 오늘날의 산타가 생겨난 거래. 암튼 넌 그 따위 옛날이야기에는 신경 끄고 공부나 열심히 해. 그래야 이 담에 어른이 되면 네가 갖고 싶은 건 뭐든 다 가질 수 있을 테니까.”
준호 형이 모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깨를 으쓱거렸어요. 그 순간 모루는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마치 밤하늘의 별이 사라진 것처럼 슬펐어요. 다리도 후들거리는 것 같았어요.
“형아, 참말이야?”
모루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어요. 크리스마스 때 산타 할아버지가 없다는 건 앙꼬 없는 찐빵을 먹을 때처럼 목이 메는 일이었어요.
“그렇대도. 난 바빠서 말이야. 안녕. 꼬맹이.”
준호 형은 성가신 듯 짧게 대답하고는 그린 타워 안으로 사라졌어요.
“형아. 잘 가.”
모루는 준호 형에게 간신히 손을 흔들어 주고 다시 길을 걸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