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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만랩 Jun 17. 2024

벼랑 끝에서 달리기를 시작하다

첫 번째 달리기  / 무기력한 50살 가장의 무작정 달리기

베개에 머리만 대도 금세 잠이 들던 내가 도대체 잠이 들지 못하고 있었다.

설령 잠이 들더라도 새벽에는 어김없이 중간에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새벽잠이 없어졌다고 하기에는 그 성격이 다른 게, 불안함에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았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어쩌면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은 점점 바닥을 치고 있고,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하기에도 너무 늦어버린 나이.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해도 소심하고 두려움 많은 나는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고민만 늘어갔다. 

너무나 무기력한 일상이 반복되는 어느 날, 와이프가 '너 너무 살이 찐 것 같아.'라고 얘기했다.



실제로 운동은 거의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살이 쪘다는 건 알고 있었고, 그 모습이 또 보기 싫어서 거울 보는 것도 별로 하지 않았고, 얼굴이 나온 사진도 제대로 찍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당연히 체중계에 내 몸을 올려보는 것도 하지 않던 일이었다. 그날따라 왠지 와이프의 말에 가시처럼 아프게 찔려 체중계에 몸을 실었다. 

여태껏 한 번도 찍어보지 못한 몸무게였다. 거울도 그날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나는 없었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모습도 아니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그다음 날 문득 새벽에 신발장 깊숙이 구겨져 있던 운동화를 꺼내 신었다. 조깅하려고 2~3년 전에 사두고 몇 번 신어본 적 없는 조깅화를 신고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작정 동네 개천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날씨는 2월 초였고 추웠다. 추운 기운이 입과 코를 타고 폐에서 심장으로, 머리로, 급기야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더 추워지기 전에 열을 내야겠다 생각해서 더 달렸다. 그렇게 10분 넘게 달렸을까... 

어느덧 더운 기운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그 추운 날에 몸에서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숨은 턱밑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떨리기 시작하는데 다리를 멈출 수 없었다. 다시 멈추면 식은땀과 함께 다시 더 추워지는 게 무서웠다. 이만큼 집에서 달려왔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도 그만큼 남았다는 걸 생각하니 추운 상태로 떨면서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감기라도 걸리면 더욱 낭패였다. 

거친 숨소리는 귓전에 쏟아져내리고 있었고,  아직 집으로 돌아갈 길은 멀었는데 이상하게 기분만 좋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다.


나는 운동이라는 것을 올해 들어 처음 시작했구나. 좀 멋진걸?

어차피 이 길의 끝은 따뜻한 집이라는 곳이고 그 끝이 정해져 있어. 

이 숨차고 힘든 상황은 약 20분 정도 후에는 끝날 거야... 난 그걸 알고 있어. 



그랬다. 고통이 언제 끝난다는 걸 알고 있고, 그 끝에는 행복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그 시작은 올해 처음으로 시도한 달리기를 통해서 느낀 사실이었다. 

달리기가 나의 끝없는 고통과 고민을 없애 주지는 않았다. 달리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달리기에만 몰입할 수 있지만 끝나고 난 후부터 다시 몰려드는 불안감은 여전했다. 그래도 그 마약 같은 즐거운 순간이 좋아 다시 새벽이 되면 주섬주섬 운동복을 입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이제 추운 겨울을 지나 여름으로 흐르고 있다. 아직까지 나의 인생에서 드라마틱하게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일찍 일어나는 변화를 겪었고 그때 이후로 지금도 아직 달리고 있다. 


달리기로 인해 내 인생에 잔잔한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연재는 매주 월요일 정기적으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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