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한 해의 열두 달 가운데의 여섯째 달, 일정한 한도를 넘음
나는 두 고양이의 집사다. 흔히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을 '가슴으로 낳아 지갑으로 모신다'라고 하는데 누가 만든 말인지 참 제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존재라서 빠져들 수밖에 없고, 모시는 데 생각보다 돈이 든다. 인천 어느 동네에서 박스에 담긴 채 유기된 두 아기 고양이 사진을 보고 홀린 듯 데려왔는데 그때만 해도 이럴 줄 몰랐다. 어쩌랴, 책임지기로 했으니 끝까지 책임져야지. 아니, 책임질 수밖에 없다. 고양이의 장점은 귀여움이고 그 외 모든 게 단점이라는데, 그 귀여움이 지나쳐 무슨 사고를 쳐도 용서가 된다.
그렇게 모신 지 어언 십 년이 되어간다. 2015년 11월에 모시고 왔고 그땐 내 한 손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너무도 작은 존재라서 만지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의 이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기는 정말 짧아요'라던 동물병원 선생님 말씀 그대로, 아이들은 폭풍 성장하여 금방 덩치가 커졌다. 지금은 사람 나이로 치면 나보다 나이가 많은 '묘르신(고양이 묘+어르신)'이다. 여덟 살이 되었을 무렵, 매년 받던 건강검진에서 '이제는 시니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철렁하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내 눈엔 아직도 아기 고양이인데, 나이 든 고양이 수준의 검진을 받아야 한다니? 다행히 여태 크게 아픈 적 없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는 모범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실제로 집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은 평생 아기 고양이라는 말이 있다. 하는 행동을 보면 그 말이 맞다. 어릴 때처럼 아직도 가끔 자기 꼬리를 붙들고 자고, 여전히 깨방정 떨면서 우다다 달리기 시합을 하고, 반찬으로 참치나 먹을까 하며 참치캔을 꺼내면 자기들 것인 줄 알고 냥냥 대고,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꾹꾹이(고양이가 어딘가를 반복해서 누르는 행동)를 하거나 내게 찰싹 달라붙어 코오 자고, 좋아하는 장난감을 주면 지나치게 잘 갖고 논 나머지 쉽게 박살을 낸다. 본묘들은 자신들이 나이 먹음을 잘 모르는 것 같고, 자기들이 늘 아기 고양이인 줄 아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일상에서 사소한 변화가 매년 켜켜이 쌓이고 있다. 몇 년 전 사진과 비교하면 얼굴에서 다른 점이 조금씩 보이고, 체력이 전 같지 않아 쉬이 지치는 모습도 보인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가 느껴지는 것은 털 빠짐이다. 고양이는 털이 어마무시하게 빠지므로 빗질을 잘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처음 데려올 때부터 숱하게 들었다. 어릴 때는 거의 털이 빠지지 않아서 '무슨 털 관리를 해주라는 거지? 얘들이 단모종이라 털이 덜 빠지는 건가?' 생각했다. 그 생각은 절반 정도는 맞았다. 코리안 숏헤어, 즉 털이 짧은 종이기에 털 관리를 좀 덜해도 되는 건 사실이었다. 다만 매년 5~6월쯤 털갈이할 때 나오는 털 양이 해가 갈수록 늘어갔다. 올해 6월 들어 그 양은 훨씬 많아져 빗질을 할 때마다 한 뭉텅이씩 털이 나온다. 어릴 땐 빗질을 피하더니 요즘은 빗질해 주면 기분 좋다고 '그릉그릉' 노래를 부른다. 끝없이 나오는 털에 지쳐 빗질을 거두면 더 해달라고 난리다. 어릴 때 때밀이가 아프고 따가워 싫었다가 성인 이후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
세월에 따른 변화는 이별이 다가오는 것을 의미하는 듯한 느낌에 슬프지만 한편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수 밖에. 내년 6월에는 또 얼마나 털이 빠질지 모르겠지만 빗질 열심히 하고 잘 모실테니 그저 건강하게 오래 함께 했으면 한다. 나와 함께하는 일상이 행복한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쁘지는 않다면 조금이라도 무지개다리를 늦게 건넜으면 한다.
[六月] 한 해의 열두 달 가운데의 여섯째 달
[逾越] 일정한 한도를 넘음
이 글은 <잔기술>이라는 에세이 쓰기 소모임에 제출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