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준 청소 기회
슬슬 유리창의 얼룩과 방충망의 검은 때가 거슬리기 시작한 건 만물이 파릇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특히 방충망의 격자 속 칸을 검게 칠한 듯한 모양새가 내 심기를 건드렸다. 아주 자그마한 벌레가 죽어 검은 때처럼 남은 흔적도 있고, 각종 먼지와 때가 눌어붙어 그리된 경우도 있었다. 처음에는 청소용 스펀지에 물을 잔뜩 묻혀 닦아보기도 했지만 스펀지만 검게 될 뿐 방충망은 그다지 깨끗해지지 않았다. 게다가 먼지도 어찌나 많이 나던지, 마스크도 쓰지 않고 무모하게 덤볐다가 한참이나 재채기를 했다. 아파트 정책상 평소에 물을 뿌리지 못하게 하니(이웃에 피해가 될 수 있으니 당연하다.) 제대로 청소하려면 아무래도 비가 많이 오는 날을 기다려야 할 거 같았다.
내적으로 기우제를 지낸지 며칠 후, 드디어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장마가 와서 하루 종일 비가 많이 온다는 예보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마침내 베란다와 다용도실의 창문 및 방충망의 묵은 때를 씻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심지어 내가 집에 있는 날 비가 온다고 하니 단단히 준비했다. 세차할 때 사용하는 압축 분무기도 마련했다. 세제 대신 물을 넣어 창문에 뿌릴 참이었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예보대로 오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내리는 양이 적었다. 계획대로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 결국 일을 저질렀다. 압축 분무기에 물을 2리터가량 넣고 방충망에 뿌렸다. 처음에는 강도를 약하게 했는데 별 효과가 없는 거 같아 강도를 높였더니 구정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위에서 아래로 뿌려야겠다 싶었다. 방충망과 수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물을 뿌리고 물을 채우고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한 번씩 돌고 나서 처음 청소했던 방충망으로 돌아오니 그 사이 물이 흘러내렸는데 전보다 깔끔해지긴 했으나 문제의 검은 칸들은 여전했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는 생각으로 압축 분무기의 강도를 더 높여 검은 칸을 향해 발사했다. 오! 말끔히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먹물이 든 풍선을 맞힌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표적을 명중시킨 느낌이라 그때부터는 청소가 아닌 놀이의 영역으로 흘러갔다. 그야말로 홀린 듯이 조준하고 쏘았다. 그 과정에서 처음 생각과 달리 아래에서 위쪽 방향으로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위쪽의 검은 칸을 먼저 공격하면 그 땟국물이 흘러나오며 아래의 검은 칸이 보이지 않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검은 칸을 다 공략하고 전체적으로 물을 뿌릴 때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하니 깔끔해졌다. 캬, 속이 다 시원하다.
방충망 다음 상대는 유리창이다. 평소 같으면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물이 닿을 수 있도록 압축 분무기의 강도를 최대한 높여 쏘았다. 전체적으로 물 샤워는 되었으나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생각했다. 그렇게 마무리했는데 청소를 마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가 그치고 청명해진 날씨 속에 유리창과 방충망을 다시 확인해 보니 방충망은 꽤 깔끔해졌으나 유리창은 물로 해결 안 되는 얼룩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 싶다. 게다가 전완근을 많이 써서 양 팔뚝이 뻐근해진 것도 덤이다. 청소 덕에 근력 운동도 제대로 했네? 하긴 창문 방향에 따라 2리터의 물이 든 통을 양손 번갈아 들고 뿌렸으니 2kg 아령을 들고 수 십여 분 운동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마가 내게 준 선물이다.
이 글은 <잔기술>이라는 에세이 쓰기 소모임에 제출한 글입니다. 지정 주제 세 가지 중 하나로 글을 쓰는 주간이었으며 제가 선택한 주제는 '장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