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운이 좋았다. 물려받은 성격인지, 아니면 아끼고 사셨던 부모님과 절약하려고 노력하는 아내 덕분인지 몰라도 불필요한 구매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경제활동을 한 시기의 반 정도는 요즘처럼 유튜브나 SNS로부터 심한 유혹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가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난 2000년대 후반에도 충분한 유혹이 있었다. 백만 원에서 천만 원이 넘는 유모차나 고가의 카시트, 아이들에게 십수만 원이 훌쩍 넘는 메이커 유아동복을 입히고, 가족을 위한 것이라면서 고가의 자동차를 사고, 아이에게 필요하다면서 주기적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모습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어떤 장소에 가면 내 아이가 가진 것이 초라하게 느껴진 적도 사실 있었다.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회사에서 나쁘지 않은 연봉으로 시작했지만, 실수령액을 가지고 저축이나 필수 보험 등에 지출하고 나면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부족한 경제적 환경에서 물질적 풍요를 즐기는 모습이 나는 이해되지 않았고, 시도하는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모습을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결정에 부담을 느끼면서도 고치지 않고 심지어는 그러한 소비가 맞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또한 늙기 전에 젊었을 때 폼나게 해 보는 것이 더 옳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 저렴한 옷을 구매해서 입히고, 좋은 옷들은 물려받아 입히기도 하고 내 것을 다른 이들에게 물려주었다. 유모차나 카시트도 최소한의 기능을 갖춘 것으로 합리적으로 구매했다. 해외여행 대신에 날씨가 좋은 주말마다 어린이박물관이나 잔디밭, 꽃이 많은 공원을 가서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 세대에 비할 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자녀들에게 알뜰하고 합리적인 지출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의 내 아이가 고가의 브랜드를 원한 적이 없었다. 물론 평소보다 값이 나가는 옷을 선물 받아서 입혀본 적은 있다. 하지만, 내 아이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은 좋은 공원에 가서 뛰어놀 때였다. 옷이 내 아이들에게 행복과 웃음을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