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가 지날수록 맛이 깊어지는 씨간장
맛집에는 저마다의 비법 양념이 있다. 씨간장이 대표적 그 예이다. 세대를 거쳐 이어오는 씨간장은 그 세월만큼이나 유수한 깊은 맛을 내면서 그 가게만의 독창적인 맛을 상징하는 비법이 된다. 같은 간장이라도 그 맛은 가게마다 모두 다를 것이다. 감칠맛을 추구하는지, 깊은 맛을 추구하는지, 그리고 이를 이어내려 가는 사람이 어떤 가치를 더욱 중시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우리 집안에도 오래도록 내려온 씨간장이 있다.
할아버지는 마음이 크신 분이셨다. 크지 않은 양푼 속에서 일곱 남매의 고봉밥을 차리셨으나, 양념이 넉넉한 밥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넉넉한 게 좋은 거지"라는 마음으로, 배고픔을 걱정할 일 없는 한 끼를 마련하셨다. 풍족한 맛은 아니었지만, 언제나 든든하게 채워지는 밥상이었을 것이다.
이에 아버지는 스스로 조금 더 강한 맛을 추구하셨으리라 생각한다. 함께하는 재료들이 더욱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그는 책임감이라는 양념을 듬뿍 넣었다.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지켜내면서도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내가 보는 그의 사랑이자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이어온 그 맛이 제법 마음에 든다. 집안의 가장과 맏이라는 상황 속에서 누구보다 풍족한 상을 차려낸 아버지의 양념은 더할 나위 없는 멋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맛이 아직 조금은 강하고 묵직하게 느껴진다. 내가 추구하는 맛은 조금 더 소박하지만, 감칠맛이 살아 있는 따뜻한 한 상이다.
소박하지만 감칠맛 넘치는, 그리고 어디에나 조화로운 만능 간장
그래서 나는 나만의 씨간장을 익혀가려 한다. 강한 맛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부드럽고 조화로운 맛을 내고 싶다. 때로는 깊고 진한 맛이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간이 세지 않아도 충분히 풍족하고 따뜻한 밥상을 차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만들 씨간장은, 즉 나만의 사랑의 방식은 그렇게 완성되어 갈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씨간장은 강한 풍미보다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맛이다. 억지로 끌어안기보다는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고, 필요할 때 더해지는 감칠맛 같은 사랑을 담고 싶다. 때로는 자극적인 양념보다 깊이 배어드는 은은한 맛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감칠맛은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다양한 재료들과 함께 만들어질 것이다. 가족이 될 사람, 함께할 사람, 그리고 삶이 주는 크고 작은 만남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맛을 조율해 나갈 것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맛이 아닌, 함께 어우러지는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내고 싶다.
이어지는 사랑, 깊어가는 맛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담근다. 지나치게 짜지도, 맵지도 않지만, 그 안에 따뜻함과 온기가 가득 배어 있도록. 그리고 그 사랑이 더욱 깊어질 수 있도록 함께하는 사람과 조화로운 맛을 만들어가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양념을 조금씩 더하며 사랑을 익혀갈 것이다. 때로는 깊고 진한 국물 같은 위로가 되고, 때로는 소박한 된장국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존재도 될 수 있는 만능 양념이고자 한다.
세월이 흐르면 내 아이도 언젠가 자신의 씨간장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때 나는 그 아이가 어떤 맛을 추구하든 존중해주고 싶다. 내 것을 강요하기보다 그 아이가 원하는 맛을 찾아갈 수 있도록 따뜻한 밑간이 되어 주고 싶다. 실수로 짠맛이 강해지더라도, 혹은 너무 싱겁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조화를 찾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렇게 우리의 씨간장은 이어지고, 각자의 방식으로 더욱 깊어져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