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만들어서 하는 이유
관리하기 귀찮아서 기르던 앞머리를 자르고 매달 다듬는다.
쓰레기통에 가득 쌓이면 버리던 분리수거를 일부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한다.
힘들게 1~2시간씩 주 4일 이상 운동했었지만 이제는 아무 효과도 없을 만큼 대충 매일 운동한다.
영화는 그저 감정을 가지고 놀 뿐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지금은 영화를 주기적으로 보고 감상평까지 쓴다.
청소기 대신 빗자루로 쭈그려가면서 청소하고 종이테이프로 마무리한다.
밀대 대신 손 걸레질을 한다.
배달시키거나 간편식 먹으면 편할 텐데, 굳이 요리해서 먹는다.
침대 대신 요가매트 위에서 이불 대신 침낭 속에서 잠을 잔다.
화장대 위에 큰 상자를 올려놓고 서서 컴퓨터를 하고 책을 본다.
느린 충전기를 사용하며 인터넷 가입 없이 데이터를 아끼면서 산다.
이런 일은 아주 비효율적이며 시간도 돈도 아껴주지 않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일부로 이런 일을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늘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을 탓해왔다. 뭔가 열중하려고 할 때마다 방해하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거 없이 좋은 환경에서 하나에만 집중하며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서러워서 언젠가 한 가지에만 빠져들 수 있는 자유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더 꼼꼼히 계획을 세워도 항상 뭔가가 발목을 잡았다. 그러다 작년에 겨울 알바에서 모은 돈으로 올해 봄에 기회를 드디어 만들었다. 처음으로 돈을 아끼려는 생각 없이 최대한 시간 확보에만 투자했다. 알바도 안 하고, 사람도 안 만나고, 좋은 독서실을 다니며, 음식도 최대한 간편식으로 먹으면서 오로지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처음 가져봤다.
그러나 기대만큼 공부가 잘 되지는 않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 나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알바 후에 지친 몸으로 책을 펼 때, 친구랑 다투고 투덜대며 공부할 때는 어느 정도 툴툴대면 금방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워진 머리는 대게 과거에 트라우마였던 강한 일로 채워졌다. 공부 시간을 만들겠다고 운동을 놓아버려서 그런지 감정을 이겨낼 체력도 부족했다. 힘든 것에 비해 그만큼의 효율은 안 나오니 더 조급해지기만 했다.
이렇듯 신경 쓰이는 일이 없어진다고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쓸데없는 신경 쓰이는 일이 자잘하게 있기 때문에 너무 힘든 일이 잠시나마 잊힌 거였다.
그리고 저것과 별개로 시험 후 습관 회복이 쉽지 않았다.
운동, 전혀 되지 않았다. 운동이 이미 나의 일부라고 생각해 왔기에 금방 다시 시작할 줄 알았지만 습관을 다시 만들기가 어려웠다.
식단, 귀찮았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안 좋은 음식을 마구 먹었다.
그리고 운동이나 공부를 떠나서 하루의 습관이 다 망가졌다.
밤낮은 바뀌고, 자도 자도 졸리고, 몸이 무거웠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고, 먹으면 또다시 졸렸다.
이전에 나는 없었지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좌절보다 당황스러웠고, 절망보다 혼란스러웠다. '내 문제가 뭘까?'곰곰이 생각해 보니
첫 번째, 하기 싫은 걸 아예 안 하는 상태였다.
먹고 싶으면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하루 종일 누워있고, 집안일은 끝없이 미뤘다.
그래서 정말 소소하게 하기 싫은 일부터 작게 다시 연습해 보기로 했다.
사용한 물건을 원위치에 돌려놓으려면 굳이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더 가서 놓고 다시 돌아와야 할 때
-> 미루지 않고 가져다 놓는다.
화장실 물때 방지를 위해 샤워 후 밀대로 미는 것을 깜빡했다가 자기 전에 떠올랐을 때
-> 화장실 입구 벽에서 소리 없는 비명 한 번 질러주고 한다.
지루함을 견디기 힘든 건 쉽기 때문 같다. 그래서 일부로 어려운 쪽으로 하려는 것이다. 마음을 거역하니까 마음 가는 대로 할 때랑 결과가 나와서 이건 이거대로 약간 재밌다.
두 번째, 우선순위에 오해했다. 우선순위의 기준이 인생을 좌우할 큰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학생 때는 학교 공부, 지금은 취업, 당연히 일이나 공부를 우선순위를 두는 게 멋지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잘 나가게 되든, 완전히 망해버리든 공허함이 찾아올 때 나를 금방 일어나게 해 준 것은 비효율적이고 시간낭비 같아서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리던 자잘한 일이었다. 그래서 자잘한 일을 우선순위에 두니 하루는 어느 정도 회복이 됐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음식도 건강하게 먹고 운동도 한다.
출처가 기억이 안 나는데 귀찮은 일을 극복하는 마법의 주문을 발견해서 한 번 외치고 시작한다.
"하기 싫다는 건 '할 수 있는데 귀찮다'는 뜻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가?" 의미는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못할 때 후회한다. 하기 싫어도 내가 참기만 하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 건지 아무리 애써도 못 하는 상황이 와야 알지."이다.
하지만 시험을 다시 준비하는 것은 이 주문이 통하지 않는다. 시간과 돈을 왕창 투자했음에도 결과가 안 좋았으니 '학창 시절에 나는 시간이 있었서도 실패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리가 안 좋다는 것도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이기 힘들다. 운동을 공부하면서 운동을 미룬 내가 한심하고 우습다. 더 높이 쌓인 지식이 앞으로의 커리어와 내 운동 실력을 높여줄 거라고 기대했다. 그것은 착각이고 핑계고 욕심이었다. 나는 단지 운동 실력에 자신이 없으니 지식이라도 높게 인정받고 싶은 거였다. 그러면서 결국 지식도 높이지 못했다. 취미로 하는 사람보다 관심도 실력도 없는 내가 스포츠 업계에서 일할 생각을 한다는 게 스스로 못마땅하다. 내 몸은 꼴 보기 싫고, 책을 펴도 금방 다시 덮는다. 운동이 좋아서 운동을 공부했는데 운동이 싫어졌다.
이런 마음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하기 싫다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새로운 진로를 위해 매일 3~4시간씩 다른 공부를 할 정도로 하기 싫다. 다시 원래 길을 가야 하는지, 이대로 길을 틀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하기 싫어서 포기하고 다른 선택을 한 건지, 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어서 도망치는 건지 헷갈린다. 또 간절해서 간절했는지, 간절해야 해서 간절하려고 했는지 헷갈린다.
결론이 주제랑 빗나가버렸네...마음이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