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부모님이 어떤가?
엄마는 거의 같은 일로 화를 낸다. 주제는 다르지만, 결말은 항상 엄마의 두 마디로 끝이 난다. 아빠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자신은 잘했지만, 엄마의 실수로 일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럼 엄마는 "또 내 탓 하지??!"라며 언성을 높이고, "말하기 싫어진다."라며 입을 다무신다. 그 말을 들어도 아빠의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보면 내가 봐도 참 얄밉다.
내가 생각하는 이 싸움의 원인은 아빠는 마음이 약해서 자신의 잘못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에 있다. 남 탓을 해야만 자신이 지켜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일이 잘못돼도 어떻게든 자신의 잘못이 아닐 상황만 생각한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나 명백히 자신의 잘못이 확정되었을 때는 자학을 한다. 스스로에게 욕을 하고,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기도 한다. 어릴 때는 그저 무서웠지만, 이제는 흰머리 가득한 채 그러는 모습을 보면 미간만 찌푸리게 된다. '왜 저렇게까지 괴로워하는 걸까? 본인이 그렇게 싫은가? 완벽주의 때문인 걸까?' 나는 그런 모습을 오래 지켜보며 마음을 단련하는 훈련이 됐다. 내 탓을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화가 났다가도 아빠를 떠올리면 금방 풀린다. '저 친구는 이 상황에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면 괴로워지니까 내 탓을 하며 이겨내려는 거구나.'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멋대로 판단하고 넘어가는 이유는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내 탓해서 억울한 마음에서 나온 복수심,
상대방의 약한 부분을 들추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
이야기한다고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
등으로 복합적이다.
어릴 적은 한국어에 서툰 엄마랑 말이 안 통한다는 생각에 아빠랑 대화를 더 많이 했었다. 아빠는 똑똑했고, 그걸 존경했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고집을 꺾지 않은 아빠와 말이 안 통한다는 생각에 둘이 싸워도 엄마를 설득하려고 한다. 말이 통한다고 말이 통하는 건 아닌 거 같다. 올해 초에 엄마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털어놓은 이야기가 있다.
두 분은 일찍이 출발해 호텔에 도착했는데, 시간을 착각해 2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나 보다. 그 상황에서 엄마는 급하게 나갔는데 그렇게 됐으니 억울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빠는 바로 성질을 내며 시간 확인을 제대로 안 해줬냐고 엄마에게 따졌고, 엄마도 여기서 질 사람이 아니지. 직접 확인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반박했다. 아빠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는지, 직원 여러 명이 뻔히 보는 앞에서 본인의 뺨을 세차게 여러 번 때렸다. 오해가 있을까 봐 다시 말하지만, 엄마가 아닌 본인의 뺨을 때렸다. 엄마는 그런 모습은 처음 봐서 너무 놀랐다고 나에게 털어놓으셨다. 원래 밖에서는 아주 좋은 사람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사람이 남이 보는 앞에서 그럴 줄 몰랐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 온순해진다던데 우리 아빠는 안 그런 것 같다. 엄마는 걱정은 돼도 이제 지쳐서 상대하기 싫어서 피하게 된다고 했다. 안 그래도 동네 사람도 점점 줄어드는 시골에서 서로 대화가 단절된다면 같이 살아도 각자 고립된 삶을 살 것 같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별세하신 할아버지와 여전히 건강하신 할머니는 이전에 별거를 하셨다. 명절 때마다 따로 방문하는 것에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되겠지... 내가 너무 매정한 걸까?' 생각하면서 어린 시절이 다시 떠올랐다. 내가 친형제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그 사실을 이르면, 혼을 내기는커녕 그냥 서로 싸웠겠거니 귀찮다는 듯 화해를 강요했던 부모님이 생각했다. '내 고통은 결국 부모님에게 남일이구나.' 어릴 때는 그게 너무 서운하고 억울했는데 '나 또한 이렇게 되는구나.'라며 어릴 적 원망스러운 마음이 줄어들었다. 1편에서 내가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가 옆에 있어줄 수 없는 노릇이니, 참고 알아서 하기를 지켜본다."라고 썼었다. 그걸 지금 다시 보니 '부모님도 자식 싸움에 한 번 개입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으니 본인끼리 해결할 일이라도 생각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몇십 년 함께 산 부부랑 4살 차이 나는 형제와 맞서야 했던 나랑 같나? 심지어 본인은 어른이지만, 나는 어렸는데?'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결국 "나도 나밖에 생각하지 못하는구나."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나는 보살이 못 된다. '부모님은 나를 서운하게 했지만, 나는 그러지 말고 마음을 들여다보고 이해해야지.' 같은 이상적인 행동은 못하겠다. 그리고 부모님이 화해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건 이혼 전문가의 일이다. 나는 단지 부모님이 싫어지지 않게 내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 집중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부정적인 기억에 잠식되지 않도록 좋았던 기억을 끊임없이 끌어올린다.
위에서 말한 마음이 단련이 됐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공부 압박이 없었기에, 학창 시절에는 실컷 놀았고, 덕분에 공부를 어릴 때도 지금도 싫어하지 않게 됐다는 점.(그만큼 성적이 안 좋았지만)
정반대의 성격인 현실파 엄마와 낭만파 아빠 사이에서 양쪽 다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자랐다는 점.(mbti에 과몰입하게 됐지만)
그리고 두 분 다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라고 말하는 편이었기에, 나도 어디 가서 내 모습을 숨기지 않고 당당하다는 점.(말을 가려서 못한다고 혼나기도 했지만)
두 분 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어른과 그 아이들을 만나면서 낯을 안 가리게 된 점.(경계심이 너무 없어서 낯선 사람을 쉽게 따라가고, 집에 아무나 막 데려오기도 했지만)
등등 지금은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지만, 새롭게 떠오를 때마다 기록해 두고 부정적인 기억이 올라올 때마다 찾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