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이 지루한 6살
뚱이네 가족 세 명이 공통으로 싫어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쇼핑!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교복을 입고 출근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가끔 하는 사람이다. 아침에 뭘 입을까 고민하는 시간은 즐거움이 아닌 의무감으로 견뎌야 하는 시간이다. 아, 견딘다는 단어를 쓸 만큼 고민을 오래 하지도 않는다. 오늘 해야 하는 업무 중에 바지를 입어야 하는 일이 있는지, 상하의가 창피할 정도로 부조화인지 잠시 생각하는 정도?
남편은 더 하다. 십여 년 전에 산 바지를 아직도 옷장 어딘가에 보관하고 있다. 5년 전쯤 이사를 하며 꽤 많이 버렸는데도 가끔 어딘가에서 추억의 아이템이 툭 튀어 나온다. 옷에 애착이 있거나 비싼 옷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구석에서 옛날 옛적 옷이 발견되면, “아니, 이게 아직도 있었어?”라고 말하니 말이다.
내 남편은 출근할 때 입을 옷도 참 단순하게 고른다. 내가 서랍에 고이 접어놓은 반팔 티셔츠를 맨 위에 있는 것부터 입는 사람이다. 7월 초인 어느 아침에는 얇은 긴팔을 입고 있길래 안 덥냐고 물어봤더니, 다른 생각을 하면서 입느라 이걸 입은 줄 몰랐다고 했다. 이렇게 옷에도 관심이 없지만, 사람이 많은 곳은 더 싫어하기에, 이 두 가지의 교집합인 쇼핑은 싫어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뚱이는? 엄마 아빠와 이유는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어쩌다 쇼핑몰 같은 곳에 가야 할 일이 있으면 영 미지근한 반응이다. 뚱이는 쇼핑을 지루해한다. 우리가 다 같이 쇼핑을 하러 간다면 그 목적은 99% 뚱이 것을 사러 가는 법인데, 정작 주인공은 신나지 않아 보인다. 패션 테러리스트를 겨우 면한 수준인 엄마에게 “그냥 엄마가 알아서 골라서 주문해 주면 안 돼?”라고 한다. 내 평생 옷 고르는 안목에 대해 이렇게 신뢰받은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 쇼핑과 옷에 관심이 없으니, 남편과 나는 연애할 때도 커플 아이템을 맞춘 일이 거의 없다. 패션 피플들은 옷, 신발, 각종 액세서리 등 수많은 것을 맞춰 사는 것 같던데, 우리에겐 그저 남의 얘기일 뿐이었다. 사실 나는 둘이 같은 옷을 입고 나간다는 것 자체가 좀 쑥스럽다. 같은 디자인의 티셔츠를 남편과 유니폼처럼 입고 나간다고 생각하니, 한 팀에 소속된 축구 선수 동료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그런 우리 가족에게도 소속감을 나타내는 물건이 하나 있다. 바로 운동화다.
언젠가 한 번 뚱이의 운동화를 사러 간 매장에서 엄마 아빠 것도 같은 디자인으로 샀던 일이 있다. 그때 그 운동화를 두고 뚱이가 가족 신발이라며 얼마나 애정을 쏟았는지 모른다. 할머니가 오시면 이건 우리 가족 셋만 신는 신발이라며 자랑을 하고, 발이 제법 커져서 불편해질 때까지 마르고 닳도록 신었다. 뚱이의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 이제는 신지 않는 작은 운동화지만 버리지 않고 신발장에 고이 간직해두고 있다.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어쩌다보니 뚱이와 엄마만 갖고 다니는 커플 아이템도 하나 생겼다. 바로 손뜨개 가방이다. 나의 취미 중 하나가 코바늘 뜨개질이다. 잘 뜨지는 못하지만 나는 뜨개질을 하며 손끝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출산 이후에는 한참을 손에서 놓았던 일인데, 뚱이가 자라고 밤에 여유가 생기면서 다시 시작했다.
초여름을 알리는 어느 습했던 저녁, 시원한 푸른색의 여름 가방을 뜨고 있던 내게 뚱이가 물었다. “엄마, 그거 누구 거야?”
뚱이는 엄마가 가방 하나를 완성하면, 늘 자기 것도 작게 하나 떠주기를 바랐다. 옷에 관심 없는 아이가 갖는 그 작은 바람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나는 늘 뚱이 몫도 하나씩 떠주었다. 그 쬐끄만 가방을 뚱이는 ‘커플 가방’이라며 한동안 나와 함께 잘 메고 다녔다. 자신의 유일한 카드인 도서관 대출 카드를 넣고 다니기도 하고, 멀리 이동할 일이 있을 때는 작은 캔디류를 넣고 다니기도 했으니 말이다.
내게는 뚱이가 크면 물려줄 샤넬 가디건은 없다. 안 쓰는 물건은 잘 버리고 나눠주는 편이라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아기 물건도 별로 없다. 그런데 이 커플 가방만큼은 하나쯤 간직해두고 싶다. 이 가방을 볼 때면 커플이라는 단어를 배우고 쫑알거리던 귀엽고 작은 뚱이가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