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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이네 Aug 21. 2024

독꾸를 아시나요

엄마에게 소중한 물건

  일전에 화려한 갓끈들을 보고 감탄했던 일이 있다. 갓의 쓰임이나 제작법이 날이 갈수록 다양하게 발전하면서, 갓을 매는 데 쓰던 갓끈도 사치스러워졌다고 한다. 금, 은, 수정 등 반짝이는 것들을 줄줄이 꿰어 장식하고 다녔다고 하는데, 우리 조상님들은 멋쟁이 DNA를 대대로 물려주신 것이 분명하다. 시대를 막론하고 고증이 뛰어나다는 사극을 보고 있으면 나처럼 패션에 관심 없는 사람도 눈이 호강하는 듯하다.


  화려한 갓끈으로 패션 감각을 뽐내던 조상님들을 둔 우리는 이제 ( )꾸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다꾸’다. 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이다. 신조어라기에는 이미 하나의 문화로 정착한 단어다. 인터넷에 ‘다꾸’를 검색하면, 예술의 경지에 이른 다이어리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화려하게 꾸민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들은, 내용은 소소한 일상이지만 각기 다른 개성으로 보는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다이어리를 꾸미는 데 사용하는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만 해도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몇만 원어치는 살 수 있을 만큼 종류가 많다.

  나 또한 초딩 때 샀던 3공 다이어리를 시작으로, 수험생 시절 쓰던 스터디 플래너까지 안 써 본 형태의 다이어리가 없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다꾸라는 아기자기한 단어와는 거리가 먼 소녀였다. 문구류는 샤프와 삼색 볼펜, 내용은 오늘의 할 일로만 단조롭게 구성된, 지극히 실용적인 목적의 다이어리만 써왔기 때문이다.

  다꾸 외에도 폴꾸(폴라로이드 사진 꾸미기), 백꾸(가방 꾸미기) 등 ‘갓꾸’의 후손들은 별걸 다 꾸민다. 역시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우리 집에 사는 6살 꼬맹이도 스티커를 좋아하고, 신중하게 고른 스티커로 여러 가지를 꾸미곤 한다. 꾸밈의 대상은 주로 엄마 아빠의 물건이다. 엄마 아빠의 물건 중에서 자주 쓰는 물건,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은 특히 스티커를 더덕더덕 덧붙여 준다.

  벽이나 붙박이장 같은 곳은 스티커가 깔끔하게 안 떼어지면 곤란하므로 붙이면 안 된다고 미리 말해주었지만, 그 이외의 작은 소지품들은 나나 남편이나 흔쾌히 허락해 주는 편이다. 그래서일까? 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핸드폰 뒷면은 참 일관성 있게 뭔가가 붙어 있다. 유재석도 전지현도 예외없이 핸드폰 뒷면에 캐릭터 스티커를 붙이고 다닌다는 뉴스를 보고는 동질감이 들었다.

출처 인사이트




  우리 뚱이가 가장 좋아하는 ‘꾸’는 ‘독꾸’다. 바로 엄마의 독서대를 꾸며주는 일이다. 뚱이가 스티커를 새로 사면 제일 먼저 아낌없이 붙여주는 곳이 바로 엄마의 독서대다.

  나는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답게 휜 척추를 기본값으로 갖고 있으며, 밤에 오래도록 책을 읽는 것이 점점 쉽지 않다. 그렇기에 독서대는 나에게 필수 아이템이다. 책을 올려놓은 각도가 편안해야 허리도 덜 힘들고, 눈도 덜 피곤하다. 비싸고 무거운 나무 독서대는 휴대가 불편하기에, 저렴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독서대를 사서 몇 년째 유용하게 잘 쓰고 있다.


  뚱이가 엄마의 독서대를 향해 느끼는 감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싫어! 꺼내지 마!’가 첫 번째다. 뚱이는 엄마가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싫어한다. 엄마랑 같이 놀 수 없기 때문이다. 임신 전에는 거실에 있는 커다란 테이블에서 셋이 ‘각자’ 책을 읽는 평화로운 그림을 꿈꿨건만, 그것은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다. 뚱이에게 책이란 엄마나 아빠가 재밌게 읽어주는 놀잇감 중 하나다. 아직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없기에, 뚱이에게 독서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뚱이에게 엄마가 독서대를 편다는 것은 엄마가 혼자 책을 읽겠다는 뜻과 같다. “뚱아, 엄마 10분만 혼자 책 읽을게. 10분 있다가 다시 놀자.”라는 말은 심심해질 것이라는 예고인 셈이다. 24시간 짝꿍 체제를 유지하는 주말에 길어야 일이십 분 남짓이건만, 엄마가 혼자 책을 읽겠다는 말에 뚱이는 늘 서운하다. 지루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엄마 주위를 맴도는 똥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몇 장 읽지 못한 책을 그대로 덮게 된다.


  엄마의 독서대를 보는 뚱이의 마음 한편에는 ‘소중함’도 있다. 뚱이는 엄마 아빠에게도 소중한 물건이 있고, 취미가 있다는 것을 아는 아이다. 엄마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은 자기도 아껴주려고 노력하는 마음이 고운 아이다. 엄마가 독서대를 꺼내는 것은 싫지만, 엄마에게 독서대는 자주 쓰는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기에 여섯 살 나름의 존중을 표현한다. 아끼는 스티커들로 말이다.

  그래서 내 독서대에는 뚱이의 취향과 역사가 담겨있다. 티니핑을 좋아할 때는 하츄핑을 붙여주었고, 산리오에 빠지고 난 후에는 마이멜로디를 붙여주었다. 때로는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꽃다발 스티커를 붙여주기도 했다. 스티커를 붙이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뭔가를 그리고 오려서 독서대와 어울리는 책갈피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나에게는 이렇게 선물 받은 책갈피가 집에 열 개도 더 있다. 덕분에 요즘은 책을 고를 때 책갈피를 고르는 재미가 덤으로 따라온다.

독서대와 수제 책갈피

  나는 독서대를 꾸며주는 뚱이의 마음이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물론 책을 많이 읽으면 문해력이 향상될 것이고 학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더 크다. 사랑하는 뚱이와 취미와 취향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 말이다.

  나에게 지금보다 언니가 된 뚱이와 하고 싶은 것은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데이트 하기, 멋진 암체어를 사서 책 읽고 수다 떨기, 뭐 그런 것들이다. 나는 사춘기 때 귀여니로 대표되는 로맨스 웹소설을 밤새 읽었으며, 해리포터 시리즈를 처음 읽고 신세계가 열린 느낌을 받았던 강렬한 추억이 있다. 뚱이가 그 나이가 되었을 때 무엇을 읽게 될지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런 의미에서 뚱이의 ‘독꾸’는 나에게 특별하다. 엄마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뚱이의 마음이 담겨있고, 뚱이와 함께 하고 싶은 엄마의 소망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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