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표를 찍으며
어느 날 문득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에 대한 글을 쓸지, 어떤 글을 쓸지 백지상태였던 그때, 마음속에서 희미하게 잡힌 신호가 있었다. 그것은 뚱이의 얼굴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임신했을 때는 열 달을 한 몸으로 지냈고, 세상 밖으로 나온 후론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나에 대한 글을 쓰려면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아야 하는데, 뚱이는 내 삶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온다. 나는 일을 하면서도 뚱이를 생각하고, 길을 걸으면서도 뚱이를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 아이의 삶에서 작은 점으로 내 몸집을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육아의 목표는 독립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언젠가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품 안의 작은 아기가 커가는 것은 기쁘면서도 조금은 섭섭한 일이다.
그렇게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은 최근에 있었던 뚱이와의 즐거운 추억, 인상 깊었던 문장, 뚱이의 취향과 일상, 뭐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것들을 목차로 모아 보니 자연스럽게 ‘6살의 뚱이’라는 주제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오늘의 뚱이’라는 제목도 생각했으나, 글을 계속 쓴다면 7살, 8살, n살의 뚱이까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6살로 못을 박았다.
7살의 뚱이도 6살의 뚱이 만큼이나 에피소드가 많을 예정이다. 최근에는 손잡이가 떨어져 있는 젓가락을 비교적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응가를 혼자 닦으려고 노력 중이다. 젓가락질과 응가 닦기는 소재만 들어도 벌써 언니의 의젓함이 뿜어져 나온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겪는 후유증 아닌 후유증이다. 뚱이의 모든 일상이 글감으로 보인다.
현생이 몹시 바쁘다는 핑계로 서랍에 끄적거려 둔 원고를 모두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하나의 연재를 나름 매듭짓는 것은 너무나 뿌듯하고 기쁜 일이다. 약 100일의 시간 동안 얻은 것은 뿌듯함 만이 아니다. 주기적으로 무언가를 창작하고 연재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다. 또 직장 생활을 하게 된 이후 처음으로, 나이 들어서까지 꾸준히 하고 싶은 무언가를 마음속에 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감사했던 경험은, 내 글을 읽는 누군가의 조용한 응원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엄마 아빠 이외에는 아무도 관심 없을 6살 꼬맹이의 성장기를 누군가 읽고 예쁜 하트까지 남겨주시다니.
아이 옆에서 자는 척하다가 잠들어 버리는 날이 많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서 깨어 있는 날에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내 글을 읽은 누군가의 소중한 글을 나도 열심히 읽었고, 많이 읽었고, 재밌게 읽은 글에는 폭풍 하트를 날렸다. 출근길 만원 버스에서도 읽고, 일 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읽었다. 편집자를 통해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글을 읽는 시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즐거웠다.
우리 가족은 아직 분리 수면을 하지 못했다. 고양이 두 마리까지 다섯 식구가 한 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잔다. 며칠 전에는 자고 있는데 귀에서 슬며시 온기가 느껴졌다. 뚱이의 손이었다. 뚱이는 어릴 때부터 잘 때 엄마의 귀를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었는데, 여섯 살이 된 지금도 여전하다. 잘 때 뚱이의 손길이 느껴지면 귀에서 출발한 온기가 마음까지 스며드는 기분이다.
내가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은 그런 글인 것 같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온기가 한 숟가락, 아니 한 대접 정도 들어가 있는 글 말이다. 뚱이는 아직 엄마가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언젠가는 나의 독자가 되어 줄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자랑스럽게 말해주고 싶다. 엄마의 글을 따뜻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연재를 마칩니다.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