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보트는 타고 싶어
‘차 냄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둘로 나뉜다고 본다. 첫 번째, 그게 뭔데? 방향제 냄새를 말하는 건가? 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뭔지 설명하려고 하지만 핵심은 알지 못하는 유형이다.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중고로 매입했을 때, 엄마를 모시고 어디 갈 일이 있었다. 엄마는 이전 차 주인이 차 구석구석에 매달고 뿌려 놓은 박하 껌 냄새가 나는 방향제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가짜 ‘차 냄새’다.
그럼 두 번째 반응. 차 냄새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다. 기름 냄새와 기계 냄새, 매연 냄새가 복합적으로 섞인 이 냄새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멀미를 심하게 한다는 것!
차 냄새의 정의도 정확히 내리지 못한 점, 협소한 인간관계를 가진 내가 주변인 몇 명과 면담하고 내린 결론을 결론이라 쓴 점만 봐도 이 연구는 오류 덩어리다. 그러나 때로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보다는 주관적인 느낌과 직관적인 해석이 더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멀미가 심했다. 나의 경우는 좀 특이한 것이, 후각이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냄새에는 둔감하면서, 차에 타기 전에는 늘 큰 각오가 필요했다.
아빠의 낡은 승용차, 가끔 타는 고속버스나 택시 등 멀미를 일으키는 대상은 많았다. 좀 커서는 나름 요령이 생겨서 승차 전에 심호흡을 하고, 차에 타면 입으로만 숨을 쉬었다. 장시간 차에 타야 할 때는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노하우가 쌓이며 고통이 좀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지만 멀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그 이후로 몇 살 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과학 시간에 멀미의 원리를 배우고 마음을 다잡아 보기도 했다. 멀미는 전정 기관의 감각과 시각으로 얻는 자극이 일치하지 않아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는 모범생답게 배운 대로 대응했다. 냄새로 인해 멀미가 난다는 것이 어쩐지 선풍기를 틀고 자면 죽는다는 유사 과학을 믿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차에 타면 먼 산을 바라보는 데에 집중했다. 안타깝게도 입으로 숨을 쉬는 것이나 잠을 자는 것보다 효과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까지 갖고 있던 이과적 마인드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몽땅 없애고, 스무 살 이후에는 차 탈 일이 있으면 그냥 견뎠다. 이제는 어릴 때보다 훨씬 견딜 만 하지만, 새로운 걱정이 시작되었다. 나를 똑 닮은 미니미에게 멀미하는 고통까지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뚱이는 차 타는 것을 많이 힘들어한다.
여섯 살이 된 지금, 차를 타고 최대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약 3, 40분 정도인 것 같다. 그쯤 되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는 표현이나 내리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안 그래도 나랑 똑같이 생긴 애가 차 안에서 울먹울먹하는 것을 보면, 나 자신을 한 발짝 떨어져 보고 있는 느낌이다. 겪어봤기에,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더 속상하다.
이런 이유로, 여태껏 우리 가족이 다녀왔던 여행지는 이동 거리를 1순위로 고려한 곳들이었다. 공항이 멀지 않은 도시에 살기 때문에 오히려 제주도는 편하게 다녀왔다. 공항까지 차를 타고 오래 이동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차로 한 시간 내외면 갈 수 있는 강화도, 양평 정도는 가보았지만, 태백산맥 동쪽에 있는 도시들이나 남해 바다를 볼 수 있는 도시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도저히 차로 갈 수 없는 곳을 갈 때는 KTX를 타기도 했다. 이때는 뚱이 컨디션은 멀쩡했으나, 내 손이 덜덜 떨렸다. 전주나 평창에 KTX로 다녀오려니 어마어마한 교통비 지출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로 간다고 공짜인 것은 아니지만, 체감상 경비가 두 배는 족히 드는 것 같았다.
얼마 전, 뚱이와 새로운 교통수단을 경험했다. 바로 ‘배’다. 그것도 엄청난 속력을 자랑하는 모터보트!
뚱이는 익스트림 스포츠 꿈나무다. 놀이동산에 가면 늘 눈여겨보는 놀이기구들이 있는데, 대개는 키 130cm 이상의 언니들만 도전을 받아주는 곳들이다. 이런 곳은 까치발 따위로 눈감아 줄 수 없는 곳이라 항상 입구에서 힘없이 유턴한다. 엄마 아빠는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잔소리를 얹는다. “그러니까 골고루 잘 먹어야 다음에는 이걸 탈 수 있겠지?”
놀러 가서 모터보트를 타기로 계획을 하고선 며칠을 나 혼자 고민 했다. 멀미가 심한 아이인데 배를 타고 너무 힘들면 어쩌지? 오래 타는 건 아니니까 괜찮으려나? 그러나 엄마의 고민이 무색할 만큼 뚱이는 모터보트의 스피드와 스릴을 한껏 즐기고 내렸다. 한 번 더 타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으며, 다른 손님들의 수상레저에 큰 호기심을 보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모터보트를 타러 가는 동안 뚱이는 예외 없이 멀미에 시달렸다. 토하기 일보 직전에 극적으로 도착한 뚱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모터보트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적 갈등을 했다.
뚱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과, 가깝고 익숙한 경험으로 편안함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 사이의 갈등이다. 나는 뚱이와 동해의 일출을 보러 가보고 싶고, 동백꽃을 보러 여수에 가보고 싶다. 짝꿍인 남편과는 캠핑카를 빌려 함께 국내 일주를 하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도장 깨기를 하듯이 각종 교통수단을 이용해 보았더니, 뚱이에게 제일 힘든 건 역시 ‘차’다. 고속도로가 구석구석 뚫려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하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차인데, 차로 갈 수 있는 곳이 너무 제한적이라 갈 곳을 정하기 쉽지 않다. 물론 당장은 아쉬운 마음보다는, 뚱이가 즐거워 했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역시 당분간은 차로 한두 시간 내외의 도시만 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이지 싶다.
글을 쓰며 생각해보니 철도가 발달한 나라나 도시에는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것 같다! 기차나 비행기만 탄다면 뚱이의 멀미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려면 필요한 것은?
기차표 값을 벌기 위해 오래 오래 열심히 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