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
돌이야.
네 목소리를 너무 듣고 싶다.
너는 잘 짖는 아이는 아니었지.
처음 네가 우리에게 왔을때 한동안 안짖어서 우리는 네가 못짖는 아이인가 걱정을 했을 정도였어.
네 목소리를 처음 들은건 네가 우리에게 온지 한 한달 정도 되었을때 쯤 이었나..그보다는 전이었나...
아기 강아지에게 꼭 해야하는 예방접종을 하러 동물병원에 갔을 때였네.
주사를 맞아도 어쩌나 의젓하게 맞았던지...너는 갈 때마다 칭찬들었던것 같아. 물론 짖지도 않았고...
그러다가 몇번째 예방접종이 있었던 날... 그날 동물병원엔 다른 강아지가 좀 많았었지.
누군가 좀 아팠거나 예민한 강아지가 있었던 것 같아.
그 아이가 짖기 시작하자 병원 안에 강아지들이 일제히 따라 짖기 시작했어.
그때 였어. 누나품에 가만히 안겨있던 네가 너무너무 위엄있는 목소리로 서너번 왕왕 짖었지.
그러자 놀랍게도 강아지들이 일제히 조용해졌었어.
13년 전 일이지만 형아와 누나는 그날 일을 아직도 가끔 이야기 해.
그날 조용히 기다리며 관망하던 네가 진짜 한소리 해야겠네 하듯이
마치 짖고 있던 강아지들을 꾸짖듯이 짖었지.
그리고 그 소리에 조용해졌던 다른 강아지들....
주위가 조용해지자 그때 의사 선생님들과 간호사 선생님들이 와! 하고 네게 감탄을 했었다.
그때 너는 태어난지 4달정도 밖에 안되었으면서 어쩌면 그렇게 위엄이 있었던 걸까...
함부로 짖으면 안된다는 걸 어떻게 알았던 걸까...
너의 진짜 개엄마한테 함부로 짖으면 안된다고 배워서 왔던 걸까...
그날 너의 짖음은 정말 다른 강아지들을 가르치는 듯한 짖음이었어...
하지만 그 위엄있던 목소리는 네가 우리에게 적응되고
또 중성화 수술을 하면서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지...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는 언젠가 쓸께....)
어느 순간 네 목소리는 어렸을 때 낮고 우렁찬 짖음과는 달리 조금 가늘고 높은 목소리가 되었어.
그 목소리도 참 좋았어. 스피츠다운 목소리였으니까.
여자애 목소리 같다고 누나가 가끔 놀리기도 했지만,
너의 목소리가 맑고 청량하게 울리는 순간을 누나는 참 좋아했었어.
너의 그 목소리가 너무너무 듣고 싶다....
문호리 1층 집에 사는 허브 알지? 너보다 4살 어린 허브도 스피츠잖아.
네가 묻힌 나무를 보기 위해 주말에 누나와 형아가 문호리에 가서 우리 문호리 집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면
1층 허브가 기다렸다는 듯이 서너번 왕왕 짖어.
너랑 허브는 주말마다 만나서 서로 왕왕 짖으며 인사를 했었지...
허브는 어쩌면 어리둥절 할지도 몰라.
주말마다 오던 사람들은 오는데 같이 오던 돌이가 왜 안오나 싶을지도 몰라...
허브는 누나와 형아의 기척을 느끼고 여전히 짖어 주고 있어.
너를 기억하듯 우리에게 짖어주는 허브에게 누나는 고마워 하고 있단다...
그 목소리가 네 목소리와 닮아서 누나는 자꾸만 울컥 울고만 싶기도 하지만
네 목소리를 듣는 듯이 그 순간이 소중하기도 해…
그래서 허브가 짖지 않으면 괜히 걱정되고 섭섭하기도 하단다...
너는 바다를 좋아했지... 해변을 달리는 네 행복한 뒷모습.
그리고 파도소리와 싸우듯이 바다를 향해 짖곤 했어.
누나는 바다에서 네가 짖는 목소리가 너무너무 좋았어...
그 목소리는 분명 네가 행복해서 너무 좋아서 짖는 거였기 때문에
누나는 네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틈만나면 너와 함께 바다에 갔어.
그리고 네가 좋아했던 것은
비오는 날. 문호리 가는 가는 길에 형아의 차가 물웅덩이를 지나면 나는 칙하는 물소리..
너는 누나 품에 안겨서 열어둔 창밖으로 들리는 물소리를 기다렸어.
누나에게도 네 심장이 콩콩 울리는 게 들릴 정도로 너는 그 소리를 기대하고 기대하다가
칙 하는 소리가나면 어김없이 물소리에 맞서듯이 왕왕 짖었어.
형아와 누나는 또 그때면 네게 시끄러워~ 하면서 타박하는 척 했지만.
너의 그 기대가 너무 재밌고 우스워서.. 사실은 누나도 형아도 그 순간을 함께 기다렸던 것 같아.
네가 짖을 때면 형아와 누나는 와하하 같이 웃곤 했지....
물소리에 무언가 좋은 감정이 있었던 걸까... 아님 물이 위협으로 느껴졌던 걸까... 도 싶지만
바다 소리나 빗소리에 대해 네가 짖는 모습은 위기나 위험은 아니고
그냥 장난치는 것 같은.... 소리를 겨루어보는 것 같은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
그때의 네 목소리는 너무 신나하는 것 처럼 들렸으니까....
너는 TV를 보는 강아지였어.
대개 강아지들은 TV에 관심이 없다던데 너는 분명 내용까지 어느정도는 파악하고 있으면서
TV를 보았던 것같아.
너는 TV에 강아지가 나오면 흥미롭게 보았어. 그래서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동물농장이나
네가 어렸을때 했던 슈퍼독 선발대회 같은거였지...
그리고 너는 바다가 나오는 장면과 그 소리를 좋아했어.
바다를 좋아했으니까 TV 에서 들려오는 바다소리에 귀기울이며 느긋하게 바다장면을 보는 네 모습을 보면
누나도 덩달아 느긋해지고 행복해졌단다...
너는 사람들이 싸우는 장면이나. 동물이 위기에 처한 장면같은것을 보면 말리듯이
TV앞으로 가서 짖곤했어.
그럼 안돼! 그러지마 하듯이....
그때 목소리는 새되고 다급했었지... 싸움을 말리듯이. 하지만 흥분한 목소리는 아니었어,
그리고 스포츠를 보면 흥분하고 짖었어.
야구나 축구를 보면 흥분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며 짖곤했지.
야구방망이나 축구공이 위협적이라 느꼈던걸까...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해.
TV에서 싸우는 장면이 나올 때와는 분명히 다른 목소리였어.
TV를 가만히 보다가 한순간 좀 더 우렁차게 좀 더 퍼지듯이 짖었던 것같아. 응원같은 거였을까...
언젠가 누나와 형아가 외국에 며칠 나가게 되어 너를 며칠 담이네에 맡겼을때 말야
담이 아빠는 좋아하는 야구경기를 네가 하도 짖으면서 봐서 볼수가 없었대.
TV 뒤에 야구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TV 뒤로 돌아가기도 하면서 흥분하는 너를 보고
너무 흥분시키면 안돼겠다 싶어서 못보셨다고 하더라....
지금도 야구를 보면서 종종 네 얘기를 한대.
돌이가 보면 짖었겠다 하시면서...
너는 반가울때도 짖었어.
형아가 퇴근했을때.
누나가 집을 좀 오래 비우고 늦게 왔을 때...
달려와서 왜 이제 왔느냐는 듯 멍멍 짖었지.
엄청난 반가움과 조금의 원망이 섞인 그 목소리를 들으면
집에 왔구나.... 하는 안도를 느끼곤 했는데..
너는 다른 강아지들처럼 하울링이나 낑낑댐은 별로 없었다.
담백하게 멍멍 짖으면서 네 의사를 표시하곤 했지.
우리를 너의 동료로 가족으로 편안하게 생각해서 그런거였을테지만
지금 생각하면 가끔은 투정부려주었다면 좋았을텐데.. 하기도 해.
네가 투정 부릴 만큼 누나가 믿음직하지 못했던 걸까.... 오히려 네가 지켜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던 걸까...
너는 큰 강아지를 보면 짖곤 했어.
그건 분명 경계의 목소리였지... 그 목소리도 좋았어.
우리를 지켜주려고 짖는 거였으니까....
너는 천상 남자애고... 그리고 절도있게 규칙을 지키는 걸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즐길줄 아는 평화주의자였던 것 같아...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어쩜 그렇게 너는 의젓하게 삶을 살아냈던거니....
늘 흔들리고 불안하고 망설이던 누나는 네가 있어
그 시간들 만은 함께 의연할 수 있었는데...
이제 네가 곁에 없는 지금...
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금...
누나는 어쩔줄을 모르겠다... 돌이야...
2024.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