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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Dec 03. 2024

돌이야. 누나는 아직 널 못 보내겠어.

너와 함께 했던 계절들....

돌이야!

겨울이 왔어.

눈도 펑펑 많이 내렸고 많이 추워졌어..

너는 여름에 태어나 다른 털 많은 강아지들 보다 여름을 그렇게 힘들어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털이 많은 강아지였으니까... 가을과 겨울을 특별히 더 좋아했지...


작년 눈온날의 산책.



생각해보면, 너는 분위기와 운치를 좋아하는 아이였어.

눈이 내리면 발이 시려도 눈밭을 뽀드득 밞는 걸 좋아했지.

작년 겨울, 너와 함께 한 마지막 겨울도 눈이 무척 많이 왔었다 그치...

그때도 너는 눈밭을 뽀드득 밞으며 눈의 촉감을 즐기고 그 소리를 즐겨주었어,

어릴때 처럼 신나게 뛰어 다니진 않았지만

그래도 폭닥폭닥 눈을 밞고서 눈 냄새를 가만히 맡기도 했지.

눈 밟기를 좋아했지


하얀눈 속에서는 하얀 너도 조금은 누르스름하게 보일 때도 있었지만

어떨 때는 하얀 눈 속에 있는 네가 잘 분간이 안갈 때도 있었어...

눈이 내리면 우리는 눈을 피하기 보단 눈 오니까 산책하자! 면서 나가기도 했는데...


너를 잃고 누나는 가끔 자책을 해.

눈을 녹이려고 사람들이 뿌리는 염화 칼슘이 네 발바닥에 묻어

혹시 네가 갑자기 심장 암에 걸린건 아닐까...

눈이 오는 날은 산책을 하지 말걸 그랬었나...

눈 길 산책을 다녀온 후 어떤 날은 발을 뽀드득 깨끗이 씻어주지 않고

대강 물티슈로 닦아주어 그게 네 건강에 문제를 일으킨게 아닐까...

그때 신발이라도 신겼어야 했나...

오만 가지 생각에 후회하고 자책하고.... 그러면서

그래도 그 눈길을 너와 운치 있게 걸어서 좋았다고 생각해.


요즘 누나는 괜히 길에서 만나는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참견질을 하기도 해...

눈길 걸으신 다음에는 집에가서 꼭 아이 발을 닦아 주세요 하고...

누나 참 주책이다 그치...


너는 겨울의 눈도 좋아했지만 가을의 낙엽도 무척 즐겼어.

단풍 든 정원이 딸린 카페에 가면 야외 의자에 의젓이 앉아 단풍을 바라보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곳이면 꼭 그곳에 들어가 와그작 낙엽을 밞는 소리와

여름 빛에 타들어간 낙엽의 냄새를 즐겼어.

어떤때는 몰아치는 가을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털 사이사이로 바람을 느끼는 것 같았어.  

너는 털이 많아 옷을 입진 않았지만.

그 때는 마치 트렌치코트를 입고 커피를 마시는 점잖은 신사처럼 굴었지...

우리는 그런 너를 재밌어 했지만... 너는 나름 진지했던것 같아..

계절이 바뀌는 걸 정말 진지하게 느끼고 즐기는 것 같았어.


가을의 운치를 알려주었던 너



너는 또 봄에 꽃냄새 맡는 것도 좋아했어.

어느날 장미가 핀 화단이 있는 길을 걸었을 땐

누나는 가시에 찔린다고 말렸지만 기어이 화단가에서 장미향기를 맡기도 했고

봄 꽃들의 향기를 하나하나 맡으며 폼을 잡기도 했지.

개나리향기  진달래 향기.

땅에서 자라나는 이름 모를 식물의 향기를 맡고

그리고 벚꽃이 필 무렵이면 동네 벚꽃길에서 꽃비를 맞으며 분위기 있게 폼을 잡기도 했어...  


같이 걸었던 꽃길…



많은 강아지들이 그렇겠지만

그중에서도 너는 특별히 바뀌는 계절을 즐기고 분위기 타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

T.P.O 를 좀 아는 강아지였지...


T.P.O 라고 하니까 기억난다.

언젠가 누나가 책 강연회에서 강연을 하던 가을날.

너는 벽 하나 사이를 두고 있는 강연자 대기실에서

단 한번도 짓지 않고 누나의 강연이 끝나기를 기다려주기도 했어.

그곳에서는 짖으면 안된다는 걸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너는 의젓하게 두시간동안 단 한번의 기척도 없이

누나의 강연이 끝나길 기다려주었지.

나중에 주최하는 사람들이 네가 거기 대기실에서 기척없이 있었다는 걸 알고

다들 어쩜 이런 강아지가 다 있냐고 칭찬했을 때

누나는 얘가 원래 이래요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대단한 일이었던 것 같아.

사람들의 소리가 두런두런 들리고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을텐데도

너는 참을성 있게 짖지 않고 기척 없이 조용히 누나를 기다려주었어.

어쩌면 마이크 소리였지만 누나 목소리를 듣고 안심하고 있었던 걸까...

누나도 참 그렇지?

네가 언제 짖을 지도 모르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강연장의 벽하나 뒤 대기실에 너를 데려간걸 보면...

근데 그때 누나는 이미 너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것 같아.

네가 분위기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해줄거라고 누나는 믿었던것 같아.

그랬으니까... 그 장소에 널 데려갔겠지...

어디를 가든 너는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행동했어.

너는 그만큼 누나에게 깊은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었던 것 같아...

그래서 누나는 너를 어디든 데려갈 수 있었어.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너는 어쩌면 그런 T.P.O를 익혔던 거니...

그건 지금 생각해도 참 불가사의 해....


가만히 곁에서 바다도 함께 바라봐주었다



너와 함께 살면서 생각하게 된 게

어쩌면 인간의 지능으로 보지 않고

그저 생물로서의 지능을 생각해보면

가끔은 동물이 인간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럴 것이 인간은 자기에게 맞춰진 환경속에서 삶을 당연한 듯 영위하지만

대개의 생물들에게 환경은 맞춰져 있지 않잖아...

젼혀 호의적이지 않은 환경에 적응하면서 사는 거잖아...


너만 해도..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

모든 것이 인간위주로 만들어진 집에서

너는 어떻게 이렇게 현명하게도 자신의 자리를 찾고

그렇게 적응해준 것일까...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너는 어느순간 많은 것을 알고 있었어.

우리와 함께 사는 법을...

참 불가사의 했어... 그리고 참 대견했어..


너를 만나기전 누나에게 인간 외에 생물은 그저 생물일 뿐이었어..

네 덕분에 누나는 생각하게 되었어.

어쩌면 인간 이외의 생물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는 걸

어쩌면 인간 이외의 생물이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음도 깊을지 모른다는 걸....


사실 너를 만나기전 계절의 변화를 이렇게 마음으로 느껴 본 적도 없었어.

그저 춥다. 덥다 그 뿐이었는데...

너는 하루하루 날씨와 기온과 그날의 분위기를 누나가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지....


너무 많은 걸 가르쳐주고 떠난 너…



돌이야...

봄에 너를 떠나보내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어...

사실 지난 여름 가을을 누나는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

네가 없으니 계절도 다 소용없고

그리고 그걸 느낄 수 있는 마음도 생기지 않아...

너 없이 매일매일을 살긴 살았는데

의미있는 날은 하루도 없었어...


이제 겨울......

너 없는 겨울을 누나는 또 어떻게 나야하나

걱정이야...


202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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