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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미 Dec 23. 2024

돌이야. 누나는 아직 널 못보내겠어.

너와 함께 한 행복한 순간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제일 먼저 마주친 것이 너의 맑고 약간 갈색빛이 도는 투명한 검은 눈동자였지...

누나가 출근하지 않는 날엔 그 맑은 눈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누나를 가만히 응시해주거나

때론 옆에 슬쩍 다가와 몸을 붙히며 앉아 있곤 했어. 그 체온이 얼마나 따스했던지...

너의 그 아기같이 말랑한 살과 부드럽고 윤기나는 털이...

쓰디듬으면 살짝 만져지던 가늘지만 단단했던 네 뼈가....

너무 그립구나....돌이야...


너와 닿아 있으면 참 행복했단다.



너는 뽀뽀를 잘해주는 강아지였어.

우리가 가르치지 않아 다른강아지들이 하는 손, 엎드려. 같은 재간은 부리지 못했지만,

우리와 의사소통하고 사랑을 표현할 때 필요한 말들은 모두 다 알았지.

그중에서도 넌 뽀뽀! 라는 말은 기막히게 잘 알아들었어.

누나가 뽀뽀!라고 하면 다가와 너의 따스한 혀로 누나의 입술이나 코를 쓱하고

핥아주었지. 그 촉감이 너무 좋아 누나가 자꾸자꾸 뽀뽀!를 외치면 너는 할만큼 해주다가

나중엔 그만하라는 듯이 진짜 귀찮다는 듯 쓱 누나의 볼을 핥아주기도 했어.

그런 네 의사표시도 너무 귀여워서... 누나는 자꾸 너를 귀찮게 하기도  했는데...

그래도 어김없이 누나의 뽀뽀! 소리에 반응해주었던 너.


누나와 너는 남들이 보면 이상해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끼리는 재미있던

큭! 놀이를 종종했었지.

네가 개껌을 물고 있을때 누나가 마치 껌을 빼앗으려는 악당같이

큭! 이라고 하며 다가가면

너는 껌을 문 채로 대응하듯 이빨을 보이며 큭!! 이라고 짜증내는 척 하는 놀이였어.

너는 개껌 자체를 씹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 큭! 놀이를 하고싶어서 개껌을 좋아했던 것 같아.

때로 개껌을 주면 씹지 않고 누나한테 다가와 큭! 놀이를 하자고 보채기도 했지.


우리끼리의 큭! 놀이



개껌하니 생각하는 네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

너는 개껌을 받으면 누나에게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라고 요구하곤

그 양반다리위에 쏙하고 올라가 개껌을 가열차게 씹었어.

누나의 양반다리 크기가 딱 네 몸집 사이즈였었어.

누나의 체온을 느끼면서 너는 행복하게 찹찹찹 소리를 내며 개껌을 씹었지.

누나는 그 순간이 너무 황홀해서

사실 네가 양반다리를 하라고 하기 전에

이미 네개 무릎을 내주거나

너를 끌어안아 무릎 위에 올려주곤 했지...

아마 한살이나 두살때까지 그랬던 것 같은데

네가 몸이 더 자란 이후엔  누나의 무릎에 올라앉는게 불편했는지

더 이상 누나의 체온을 느끼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감을 얻었던 건지

별로 누나의 무릎을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무릎위에 올라왔던 어린시절




너는 무릎강아지는 아니고 애교를 자주 부리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사랑을 표현하고 함께 공감하고 무엇이든 함께 하는 걸 참 좋아했어.

형아의 차에서 우리가 먼저 내리고 형아가 주차를 하는 동안

누나는 빨리 실내로 가고 싶어 너를 끌고 가면

너는 형아가 우리와 합류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우기면서 발걸음을 떼지 않았지.

너의 그 완강함에 누나는 할 수 없이 너와 함께 형아를 기다리기도 했어.


때로 저녁산책에서 퇴근하는 형아의 차를 우연히 만나서 같이 타고 돌아오는 걸 너는 너무 좋아하기도 했지.

그때 형아의 차에 올라타면 너무너무 반갑다는 듯 뽀뽀 세례를 하곤 했던 너.

어떤 날은 너무 반가운 나머지 마치 박치기 하듯

형아의 입을 향해 돌진해 형아가 아이쿠! 비명을 지르기도 할 만큼.

그렇게 함께하는 순간의 기쁨을 기꺼이 표현하곤 했던 너.


가급적이면 독립적으로 스스로 해결하는 걸 좋아했던 너였지만

큰 마트안에 있던 동물병원에 가는 무빙워크 타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좀 무서워했던 것 같아.

그래서 그 순간이면 형아에게 안아달라고 의사표시를 했지.

형아 품에 꼭 안겨서 마트의 풍경을 바라보며 무빙워크를 오르고 내릴때 너의 표정은

우리 형아다! 하는 듯이 뽐내며 때로 누나마저 무시하듯이 형아에게 꼭 안겨있었지.

형아는 그 순간을 무척 좋아했어. 네가 온전히 형아에게 안겨주고 의지하는 게 너무 좋았었나 봐.


네가 품에 폭 안기먄 형아는 참 좋아했단다


너는 안기는 걸 그다지 즐기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순간엔 도움을 요청했고, 기꺼이 안겨주기도 했어.

그때 누나 품에서 혹은 형아 품에서 네가 느끼는 안정감을 형아도 누나도 함께 느끼며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구나... 그렇게 누나는 덩달아 더 큰 안정감을 느끼기도 했단다.


일전에 누나는 외출했다 집에 들어오면서

우리가 외출했다 들어올때 했던 세러머니를 너 없이 혼자 해보았어.

너의 키높이에 맞추어 너를 쓰다듬는 척해보고

반가워 팔짝거리는 너를 진정시키듯 외투를 벗어 던지고

거실 바닥에 주저 앉아 두 손을 뻗어 품을 벌리며 네가 신나게 몇 발자욱 뛰어와 누나에게 뽀뽀하고

무릎을 부비고 배를 보여주며 쓰다듬어 달라하던

그 순간을 혼자서 해보았어...

너의 기다림과 누나의 안타까움이 해소되던 그 아릿하고 행복했던 그 순간의

교감이...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너무 서러워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엎어져 혼자 오래 서럽게 울었단다...


네가 떠나기 전,

누나는 삶이란... 누리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그냥 살아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요즘 누나에게 삶이란.... 그냥 견디는 것 같아.

너 없는 슬픔을 그리움을 괴로움을 그냥 견디어 가는 것....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잃어버리고 되찾을 길 없는 절망을 견디어 가는 것....

그런 것인가.... 싶어.


작년. 너와 보낸 마지막 크리스마스.




2024.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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