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좋아했던 장소에 너를 묻고서.
오늘도 하루종일 비가 내리네.
너를 묻은 그곳이 강가에 있는 큰 나무 아래라 비가 많이 내리니 걱정이 또 되기 시작하네... 누나는 청개구리 아들이 되어버린 것 같아.... 어제 네가 묻힌 곳에 가서 괜찮다는 걸 보고왔어도 또 걱정이 되기 시작해....
네가 심장암으로 시한부를 선고받고 짧은 투병을 시작했을 때, 네가 하늘나라로 가고나면 너의 유체는 어디에 있게 할까. 너와의 추억을 생각하며 네가 정말 좋아했던 장소는 어디였을까? 그곳에 너를 있게하자 그렇게 누나는 형과 의논했었다.
너는 우리에게 와서 처음 5년은 양수리에서 누나의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지. 그곳에서 너는 평일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두물머리 강가 여기저기를 쏘다녔대. 네가 어렸을때, 아마 한살 쯤이었을텐데...누나와 형과 함께 주말에 두물머리에 갔을때 그때 막 생기기 시작하던 두물머리의 노점상 아가씨가 너를 보고 '얘는 멋쟁이 할머니랑 같이 다니는 아이인데... ' 하고 너를 알아봐주기까지 했었지. 아마 그 무렵 평일 두물머리에는 대개 자유롭게 풀어기르던 큰 강아지들이 많았고 너처럼 사람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는 많지 않았던 것 같아. 게다가 시어머니는 당시 70대 후반의 연세답지 않게 멋쟁이셨고 너는 하얀털이 풍성해서 눈에 금방 띄는 편이었으니 사람들에게 인상적이었을 지도 몰라. 너는 그때 누나와 형에게 시어머니와 지낸 한주일을 보고하듯이 평일 걸었던 길을 안내해주고 호젓한 벤치도 가르쳐주었어. 여기 벤치 참 좋으니까 쉬어가면 좋을거야 하듯이. . 지금 그 곳은 주말에 사람들이 넘치는 관광지가 되었지만, 그때만해도 참 조용하고 평온한 곳이었지....
평일에 시어머니와 둘만 있던 너는 금요일 밤마다 서울에서 너를 만나러 양수리까지 허겁지겁 간 누나와 형을 얼마나 반겼는지 몰라. 그리고 그 3일을 우리는 꼭 붙어 지냈다. 우린 금토일 양평일대를 쏘다니며 정말 재미나게 지냈던 것 같아. 누나는 사람들한텐 혼자 지내시는 연로하신 시어머니가 걱정되어 매주 양수리에 간다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어머니는 그때만해도 늘 건강하셨고 엄청 독립적이셨기 때문에 우리가 갈 필요도 없었고, 어머니도 그렇게 우리를 대단히 반기지도 않으셨지. 그리고 누나도 사실은 시어머니 안부같은 건 별로 관심없었던 거 같다. 누나가 형을 재촉해 매주 금요일이면 꼬박꼬박 양수리에 간 건 순전히 너를 보기 위해서였어. 우리가 가면 시어머니는 약간 불만에 찬 목소리로 말씀하시곤 했어. '얜 산책할때 외엔 늘 너희들이 자는 방의 베란다에만 가 있는다. 니들만 기다리는 것 같다. 주인은 난데...'
누나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었어. 애초에 너한테는 주인이란 개념 같은건 없었던 것같지만... 만약 네가 보호자로 정한 사람을 주인이라고 부른다면 주인은 누나라고 생각했어. 너는 처음부터 이상하게 마치 주말부부가 시댁에 맡겨논 아이처럼 그렇게 굴었어, 주말에 오는 엄마만 목빠지게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렇게 말야. 너는 주말 내내 시어머니는 안중에도 없었고 누나와 형과 헤어질 때면 엄마아빠와 헤어지는 아이처럼 그렇게 슬퍼했지.
시어머니는 처음엔 좀 섭섭해 하셨지만, 곧이어 너의 그 마음을 받아들이셨던 것 같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무렵 시어머니는 그리 살가운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지 못하셨던 것 같아.
누나가 금요일에 시댁에 가서 보면 너의 배변 패드는 더러웠고, 나중에 시어머니께서 고백하셨지만 어떨땐 잊어버리고 너의 사료도 못챙겼다고 하셨지. 그때 시어머니는 시아버지를 여의고 슬픔에 젖어 계실때여서 어쩜 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을 수도 있고... 어머님 성정이 처음부터 그렇게 누굴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신것도 나중에 알았지만... 그때도 네가 며칠씩 서울 누나 집에 와 있다가 양수리로 돌아가기 싫어했던 걸 생각해보면 아주 초기부터 용기내서 너를 그냥 내 옆에 둘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와.
그때는 이상하게 너는 양수리에 혼자 계신 어머니를 위해 온 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니가 얼마나 누나 옆에 있고 싶어했는지... 내가 너를 얼마나 곁에 두고 싶은지 챙길 수가 없었다. 지금도 많이 후회가 된단다....
주말에 우리는 그 무렵 막 생긴 양수리 생태공원에 꼭 가곤 했어. 거기에 작은 공터에서 너는 프리스비를 했었지. 몇번이고 너는 프리스비를 쫓아 쏜살같이 달렸고 프리스비를 던져달라 가져오곤했어. 그때 기쁨으로 빛나던 네 눈을 보면서 눈은 마음의 창이란 말을 누나는 처음으로 실감했어. 사람한테는 별로 발견하지 못했던 눈에 드러나는 감출 수 없는 마음의 빛깔을 네 눈에서 보고 누나는 얼마나 감동했던지....
너는 생태공원을 참 좋아했어. 형아의 차가 생태공원으로 향하는 걸 알아차리면 너는 기뻐서 낑낑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팔짝팔짝 뛰기도 했고 그 언젠가 여름에는 너무 기뻐하며 살짝 오줌을 지리기도 했었지....지금 그곳은 여전히 호젓하지만... 그래도 잦은 조경변화로 안정감이 없는 곳이 되어 버렸네...
네가 5살 무렵 시어머니가 서울 누나의 집 옆으로 이사오시고 나선 너는 마침내 누나와 함깨 살게되었지. 아들 곁에 살게 된 시어머니께서 심리적인 안정을 얻으시곤 마침내 누나한테 '돌이는 니네가 맡아 키워라.' 하셨을 때 누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어. 너와 늘 함께 할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너무너무 감격스러웠다.
너는 누나 동네에도 곧이어 잘 적응해줬어. 네가 오기전 누나는 집근처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단다. 동네 산책 같은건 생각도 안했었어. 하지만 너와 함께 산책하면서 동네 여기저기를 알게되었어. 집 뒷편에 있는 아트막한 산에 오른 것도, 그곳에 산벚꽃이 아름답게 피는 걸 본 것도 네 덕분이었어. 가을이면 단풍이 너무너무 붉게 물드는 아름다운 뒷길을 알게 된 것도 네 덕분이야. 눈이 많이 내려 쌓인 날, 집 옆의 고등학교 운동장을 형아와 함께 뛰어다니기도 했었지. 우리는 매일 매일이 탐험이었어. 아파트의 이 단지 저 단지를 쏘다니며 함께 정원을 품평했고, 사방이 초록신호등으로 바뀌는 사거리를 너는 위풍당당한 걸음걸이로 가로지르곤 했지. 누나와 함께 샛길을 발견하기도 하고 같이 여름 비를 맞기도 하면서 그렇게 너는 동네를 즐기고 사랑해줬어. 너는 어디서든 삶을 즐길 줄 알았던 아이였던 거야...
시어머니께서 서울로 오시면서 주말의 양평 생활을 잃어버리기 싫었던 누나와 형은 문호리에 세컨하우스를 마련했어. 너와 양평 여기저기를 쏘다녔던 행복을 잃어버리기 싫었던 것 같아. 우리는 주중엔 서울에서 주말엔 문호리에 가서 강과 자연을 만끽하며 늘 같이 재미나게 지냈지. 그러다가 지금 네가 묻힌 그곳을 알게되었어.
생각해보면 그 곳엔 다른곳 만큼 아주 자주 가진 않았던 것 같아. 그 외에도 너와 함께 갈만한 재미난 곳이 많았기 때문이었을거야. 그곳에선 날이 선선하고 좋을때 봄 가을로 피크닉을 하곤 했지. 이미 5살이 넘어 점잖해진 너는 그곳을 품위있게 즐겨주었어. 나무 밑에 바람막이 텐트를 치고 피크닉을 할때면 너는 우아하게 앉아서 강을 바라보며 바람 냄새를 맡곤 했지. 형아에게 안겨 텐트안에서 낮잠을 자기도 하고 심심하면 누나와 함께 강가를 산책하기도 했어. 그곳에서 너는 편안하고 느긋하고 행복해 보였어,
사실 그 장소를 제일 좋아한건 누나 였을지도 몰라. 그곳에서 너를 쓰다듬으며 강을 바라볼때 누나는 정말 세상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힐링을 느꼈던 것 같아. 잔잔히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면서 그냥 온갖 스트레스를 다 잊어버리고 너와 형과 누나만 있는 그 공간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
그래서... 네가 하늘나라로 갔을때 형아와 누나는 네가 어디에 제일 있고 싶어할까 함께 고민했어. 강아지 장례식장에서 한줌 가루가 된 너를 데리고 나와서 네가 어디에 있고 싶어할까 생각했어.
처음에 형과 누나는 너를 그냥 강에 뿌려줄려고 했단다. 애기때 부터 북한강 자락에서 살았고 나중엔 주말마다 갔으니 그곳에 뿌려 주면 괜찮겠다 생각했어. 하지만... 결국 뿌려주는 건 하지 않기로 했어. 아니 못했어...
너는 너무 깔끔하게 가버렸지만 누나는 도저히 너를 그렇게 깔끔하게 흘려 보낼 수가 없었단다....
형아는 이미 너는 그곳에 있는게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어딘가. 니가 있는 곳을 하나 만들고 누나는 거기 집착하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 너의 유골을 품에 안고 니가 좋아했던 장소들을 돌아봤어. 어딘가 니가 있고 싶은 장소는 니가 정해서 누나와 형아에게 알려줄 거 라고 생각했어.
애초에 서울 집의 뒷산은 나중에 네가 다리가 조금 불편해지고 난 다음엔 오르지 못했으니 제외되었어. 그리고 누나와 형이 이사를 가면 굳이 옛동네를 찾을 거 같진 않아서... 그래서 두물머리, 생태공원, 그리고 강가의 큰 나무밑 세군데를 네 유골과 함께 돌아보았어.
네가 응답을 해줬다고 생각해. 물가의 큰 나무밑에서 누나도 형아도 동시에 여기구나 네가 여기서 조용하고 평온하게 강을 바라보며 있고 싶어하는 구나 하고 느꼈으니까.....
벚꽃이 지기 시작하던 4월에 너를 강가 큰 나무 밑에 묻으면서 혹시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려 혹시나 흙이 쓸려 나가도 괜찮다. 어차피 처음엔 강에 뿌려주겠다 생각했으니까.... 했지만.
이제 여름이 오고 비가 많이 내리니... 누나는 걱정이 앞서... 그렇게 너의 한줌 뼈가 흘려내려가버리면 어쩌나.... 그렇게 또 집착하네...
돌이야.
아직은 가지마...
누나는 널 아직은 못보내겠어.
강가의 그 큰나무밑에 있는 화장한 한줌 뼛가루라도 거기 니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네가 누나 곁에 있던 13년 5개월을 강가 큰 나무를 바라보며 누나가 늘 기억할 수 있게. 그렇게... 거기 그렇게 있어줘.
비가 많이 내려도 강이 넘치지 않아 너는 그렇게 평온하고 조용하게 넘실대는 강물 곁에서 편히 쉴수 있기를...
돌이야.
언제나.... 사랑해.
2024.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