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정미 Jul 30. 2024

돌이야. 누나는 아직 널 못보내겠어.

너의 사랑이 남긴 너의 흔적들.

누나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책상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문밖을 보면 바로  현관 중문 앞.

자주 거기 누워 있던 너. 여전히 네가 거기 있을 것만 같아 누나는 한참이나 그곳을 바라보았어.

이제는 청소를 해도 더이상 청소기 먼지통에 네 털이 나오지 않아 집안 구석구석 어디나 날라다니던 네 털이 너무 그리워져 누나는 또 한참을 우두커니 있다가.... 집안에 남은 네 흔적을 찾아보았다.


바로 현관 중문 앞에 그 자리에 누운 너믜 몸 높이 만큼 벽지가 살짝 변색된걸 발견하고 누나는 또 울었다. 거기 몸을 부비며 발자국을 찍으며 숨결을 남겼던  네가 살아있던 나날의  흔적을 누나는 이제야 발견한거야.  

너는 그 자리에서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시간을 보낸 것일까?

네가 누워있던 자리에 남은 너의 흔적



네가 하늘 나라 가기 2년 전부터 많이 바빠진 누나는 자주 너를 오래 혼자 집에 있게 하곤 했었지. 그때 그 시간들이 지금 와서 얼마나 아깝고 후회되는 지 몰라. 왜 너를 혼자 집에서 하루종일 기다리게 했나. 그 시간과 상황과 누나 자신이 너무 미워진다....그 당시 네가 혼자 어찌 지내나 궁금해서 집안에 홈카메라를 설치하고 네 모습을 가끔 바라보았을 때 그때 마다 너는 늘 현관중문 앞에서 귀를 귀울이고 있었어. 누나와 형이 오기만을 목빠지게 기다렸던 거야. 누나가 홈카메라로 '돌이야!' 하고 부르면 똑똑했던 너는 한번 정도 홈카메라를 쓱 바라보곤 바깥에서 그러지 말고 집에나 빨리 오라는 듯이 다시 바깥에 귀를 기울이곤 했지. 

누나가 집에 있을 때는 형아가 퇴근 할 때를 기다리며 그곳에 있기도 하고

그리고 밤이 되면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집을 지키는 것이 너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듯이 안방과 중문 앞을 오가며 자곤 했어. 누나가 물마시러 부엌으로 나오면 자다가도 몸을 돌려 배를 보이며 쓰다듬고 가라고 몸짓하곤 했지. 그래놓고선 아침이면 밤 내내 같이 잔 듯 안방 네 방석으로 돌아와 있거나 우리 침대 위로 올라와 함께 나란히 베개를 베고 누나한테 안기기도 했었지.

너에게 누나와 형은 친구이고 엄마 아빠고 그러면서도 네가 지켜줘야할 누군가였던 걸까.  


네가 우리를 기다렸던 그 자리....



네 품종인 스피츠는 원래 가족을 지키고 집을 지키려는 성격이 강해서 주인 밖에 모르고 까칠하다고 하더구나. 그래! 너는 확실이 우리를 보호자로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네가 우리를 지키겠다는 책임감 같은걸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산책하다 만나는 사람들이 너를 이뻐할 때면 너는 곤란한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곤 했지. '이 사람들 한테도 나 잘해야 하나?' 하는 허락받는 표정으로... 그래서 종종 누나는 사람들한테 '죄송해요 얘가 애교가 없어요' 하면서도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애교를 부리지 않아서 흐믓했어.

그렇다고 네가 까칠한 아이는 아니었어. 너는 우리 외에 사람들에겐 무관심했지만 강아지들과는 잘 지냈어.  어렸을 땐 호기심이 많았지만 산책하는 다른 강아지들과 인사하는 것도 점점 우아해져걌지. 나이가 들수록 다른 강아지들과 멋있게 소통하고 혹시 그러지 못하는 어린 강아지들에게는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했지. 너는 점잖고 부드럽고 약한 강아지에겐 다정하고 큰 강아지는 경계하는 그런 아이였지. 그리고 누나와 형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했어. 고맙다 돌이야. 네가 사랑한 게 우리뿐임을. 너의 그 오로지 하나뿐인 사랑이 새삼 너무 고마워...


얼마전 누나는 네가 자주 누나와 눈이 마주치곤 했던 거실 시디장 앞에 누워 보았어.  누나는 좁은 시디장에 앞에 네가 누워있다가 혹시나 낙하하는 물건에 다칠까 종종 걱정이 되서 네가 거기 있지 않길 바라곤 했는데 그래도 네가 그 자리를 무척 좋아하고 고수해서 나중엔 그러려니 하게 되었지. 네가 하늘나라로 가고 지금까지도 소파에 앉아 있으면 무의식적으로 시디장쪽을  바라봐. 거기 누운 너와 눈이 마주칠까 하고....

며칠전 누나는 네가 그 자리를 왜 고집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단다. 그래서 그 자리에 누워보있어. 그리고 누운 너의 시선 높이 정도가 되고선  알게 되었어. 네가 왜 거기 있곤 했는지. 왜 거기서 누나와 자주 눈을 맞추었는지.


  

여기서 너는 늘 우릴 바라보아주었지..
이제는 아무도 없는 네가 있던 자리....



거긴 집안 곳곳이 아주 잘 보이는 곳이었어. 소파에 앉아 있는 형아를, 부엌에서 움직이는 누나를, 방 여기저기를 오가는 누나와 형을 네가 오롯이 주시할수 있는 장소였어. 너는 거기서 줄곧 무언가를 하느라 너를 바라보지 않았던 우리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던 거야.... 미안하다.돌이야. 네가 그렇게 줄곧 우리를 바라보며 사랑을 주고 있었는데 누나는 정말 가끔씩만 너를 보았던 거야. 그레서 그때마다 너와 눈이 마주쳤던거야. 세상 대체 어디서 누구에게 네가 누나한테 준 만큼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니... 줄곧 바라봐주고 기다려준 너의 사랑에 누나는 얼만큼 보답했던 걸까.... 정말 미안하다 돌이야....


네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너의 시선을 이제야 알아차렸어…



네가 하늘나라로 가고 한동안  누나는 안방 화장실에 갈 때마다 울었어.  거기 샤워 부스에 늘 있던 너의 배변패드가 없기 때문에....

너는 주로 실외에서 배변을 하는 걸 좋아했지만 집안에서도 화장실을 곧잘 갔지. 누나와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 너의 화장실은 언제나 샤워부스 안이었어.  훈련한 것도 아닌데 너는 샤워부스안이 네 화장실이란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 심지어 반려견 동반 호텔로 여행을 가면 너는 호텔방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내 화장실 어딨어?' 라고 하듯 샤워 부스를 찾았고 거기 배변 패드를 깔아주면 단한번도 실수 하지 않고 그곳에 배변을 보았어. 그래서 누나는 너와 여행해도 하나도 조바심이 날게 없었어. 네가 여행하는 숙박지에서 돌발적인 일을 하지 않을 거란 믿음을 늘 주었지.

누나가 샤워하면서 부스 안을 청소하고 다시 너의 배변 패드를 깔아주면 너는 마치 화장실 청소를 해줘서 고맙다는 듯이 다가와서 부스안을 점검하기도 했어. 누나는 그냥 네가 정말 깔끔한걸 좋아하는 아이구나. 라고만 생각했어. 하지만, 그런 강아지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어쩌면 네가 우리를 불편하지 않게 하겠다는 확고한 신념같은 걸 가지고 강아지의 본능을 눌렀던 게 아닐가 싶기도 해.  속이 안좋아 토를 할 때도 너는 치우기 쉬운 화장실에 달려가서 했어. 때로 야외로 놀러나가 실외 배변을 하다가 너의 긴털에  대변이 좀 묻은 채로 차를 탈 일이 생기면 항상 누나 품에 안겼던 너는 그때만은 누나품을 마다하고 뒷자리에 엉덩이가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엉거주춤 앉았어. 누나에게도 형아의 차에도 더러운 걸 묻히지 않겠다는 듯이....

우리가 훈련했던 게 아니야. 그냥 넌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그렇게 행동했어. 

심지어 너는 하늘나라로 가는 날 마저도 샤워부스 배변패드에서 일을 보았어.  '돌이야 그렇게 무리 안해도 돼' 하면서 따라 갔던 누나는 그때 비틀거리면서도 화장실을 찾아가던 네 뒷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아주 오랫동안 화장실 샤워부스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곤 했어. 요즘도 배변패드가 놓여있지 않은 샤워부스가 못견디에 적응이 안돼. 누나는 샤워할 때마다 울어... 네가 얼마나 날 사랑해줬는지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야무지게 화장실을 가리며 애쓰던 네 모습을 떠올라 어쩔줄을 모르겠다... 너는 매순간 너의 본능을 눌러 가며 누나에게 사랑을 전했는데 누나는 그걸 고작 깔끔한 아이라서 다행이다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야... 미안하다... 돌이야...


투병중에도 배변을 가리던 너...




너의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누나는 약간 뭔가에 씌인 사람 처럼 너의 물건들을 정리했어. 동네 다른 강아지에게 네가 쓰던 집을 나눠주고 네 친구 강아지 담이와 도비에게는 네 의자를 물려주고 그리고 나머지 물건은 버리고 그렇게 싹 다 네 물건을 치웠어. 그러는게 좋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막연히 따라야 겠다는 강박같은 거였어. 그리고 네가 늘 쓰던 하네스와 몇가지 작은 물건들만 모아서 장 깊이 간직했다.

하지만 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니... 너는 집안 곳곳 소파 위에 침대 위에 창가에 베란다에 화장실에...서재의 책상 옆에.... 누나한텐 네가 여전히 그 모든 곳에 다 있는데.... 그리고 그 모든 곳에는 네가 왜 거기 있었는지 이제와 깨닫게 되는 사랑의 흔적이 있는데.....



돌이야. 네가 온 생을 다 해 주었던 사랑을 모두 다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미안해....

네가 떠나고나서야 네가 남긴 흔적으로 너의 사랑을 깨닫는 누나는 바보다 그치.


이제 네가 주고 간 만큼 온 힘을 다해 누나는 너는 사랑해. 영원히.


2024.7.3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