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사진을 배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한 후, 중앙대학교 평생교육원 앞을 지나며 문득 생각했다. “주말에 치맥 할 친구라도 사귀어야겠다.” 그런데 뭘 배워야 할지 몰랐다. 외국어, 골프, 그림 교실 같은 강좌들이 많았는데, 딱히 마음에 와닿는 건 없었다. 그러다 DSLR 사진반이 눈에 들어왔다. DSLR 카메라는 만져본 적도 없는데 “사진을 찍으러 여행도 많이 다니겠네.” 그렇게 단순한 기대감으로 등록한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됐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께 물었다. “완전 초보인데 어떤 카메라를 사야 하나요?” 추천받은 카메라를 사서 처음 셔터를 눌렀을 때, 어딘가 서툴고 긴장된 내 모습이 그대로 사진에 담겼다. 회사에서 행사가 있어 카메라를 들고 갔던 날, 동료들이 서로 찍어달라며 다가왔는데, 결과물은 엉망이었다. P 자동모드로 놓고 찍었어야 하는데, M 수동모드에다 놓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ISO와 셔터 속도는 만질지도 몰랐다. 그 일이 오히려 나를 자극해서 사진 공부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다.
DSLR을 들고 다니니 주변 풍경이 달라 보였다. 교수님은 매주 과제를 내줬다. “매일 보는 걸 다른 각도로 찍어보세요.” 그렇게 나무, 강, 곤충, 일몰과 일출을 찍으며 4년 동안 풍경 사진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 특별한 무언가를 찍고 싶다는 갈증이 생겼다.
그래서 선택한 게 바로 인물 사진이었다. 사진관을 쉽게 이용할 수 없는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프로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조명을 구입하고, 복지관과 협력해서 무료 촬영을 제공했다. 그런데 인물 사진은 풍경 사진과는 달랐다. 한 장의 사진에 사람의 인생을 담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특히 복지관에서는 어르신들이 고운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받으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오시는데, 실망하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신중해졌다.
촬영 전날이면 유튜브에서 인물 사진 강의를 찾아보고, 조명 연습을 반복했다. 사진은 빛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하는데, 나도 조명을 다루는 법을 배우며, 빛이 사람 얼굴에 가져오는 변화에 자주 놀랐다. 나중에는 얼굴의 관상을 공부하며, 인물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은 사진 한 장에 찍히는 이의 삶과 이야기를 담는 것, 그게 내가 지향하는 사진의 목표가 됐다.
어르신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으면서 이런 걸 깨달았다. “이분들도 한때는 자신의 청춘이 있었고, 사랑받았던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아서 선물하고 싶었다.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어르신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삶과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얼굴에 미소가 번졌고, 그 미소를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으며 말한다. “당신도 모르는 당신의 아름다움을 찾아드립니다.”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어르신들에게는 자신의 가치를 다시 확인할 기회가 됐고, 나에게는 사진이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삶의 사명이 되었다.
앞으로도 사람들의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사진 한 장이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