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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Jan 07. 2025

카메라 앞에서 빛나는 용기

할머니들의 프로필 사진 촬영이 시작되었다. 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해 한 분 한 분을 바라보며, 그들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선 할머니들은 마치 피노키오처럼 굳어버렸다.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할머니, 웃어 보세요. 할머니, 사랑해라고 말해 보세요."  

내 말에 할머니들은 처음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셨다. 사랑해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카메라가 부담스러운 걸까.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서야 할머니들은 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사랑해"를 꺼내셨다.       

"할머니, 발은 조명을 향하고 얼굴과 어깨는 저를 바라봐 주세요. 바지 주머니에 양손을 넣어 보실래요?"  

나는 부드럽게 포즈를 부탁했다. 할머니들은 천천히 그리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따라 하셨다. 본인 스스로 포즈를 바꿔가며 자연스럽게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에 내 마음이 조금 답답해질 즈음, 촬영장을 한바탕 웃음으로 채운 분이 등장하셨다.     


"이렇게 해봐! 저렇게 해봐!"  

한 성격 급한 할머니께서 내 등 뒤에서 몸소 시범을 보이며 다른 분들에게 포즈를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살짝 돌려 보이며 할머니들의 긴장을 풀어주셨다. 그 덕분에 다양한 포즈와 표정으로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모두가 웃고, 서로를 응원하며 밝아진 분위기 속에서 사진은 한 장씩 완성되어 갔다.  

   

마지막으로, 내 등 뒤에서 다른 할머니들을 지도했던 그 성격 급한 할머니 차례가 되었다. 카메라 앞에 서시니 이분 또한 다른 분들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리셨다. 몇 번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셨던 분도 카메라 앞에서는 낯선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하셨다.   

    

"아니, 할머니! 아까 다른 분들 가르쳐주셨던 멋진 포즈들 있잖아요. 그거 해 보세요!"  

나는 밝게 말씀드렸지만, 결국 이분 역시 어색한 미소와 굳은 자세로 촬영을 마쳤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을 평가하거나 가르치는 데 익숙하지만, 막상 자신은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것은 단순히 렌즈를 마주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는 사진 찍는 사회복지사다. 내 카메라는 사람들의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한 도구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으며,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를 알게 돕는다.       

오늘의 촬영은 나에게 또 다른 교훈을 남겼다. 누군가를 평가하고 조언하는 것은 쉽지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도 사람들 속에 숨겨진 빛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일은 늘 보람으로 다가온다. 오늘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 그들의 숨은 아름다움을 담으며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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