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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호 Dec 24. 2024

사진은 소통이다.

사진은 단순히 한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소통이다. 사진을 잘 찍는다는 것은 소통을 잘한다는 의미다. 그리고 최고의 사진가는 곧 최고의 소통가다.     

오늘 나는 한 가족의 사진을 찍었다. 엄마와 초등학교 3학년, 1학년 두 자녀가 함께였다. 처음 만난 이 가족은, 예상대로 카메라 앞에서 어색했다. 아이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긴장감이 흐르는 모습이 역력했다. 평소처럼 "사랑해"라고 외치게 하지 않고, "김치"나 "치즈" 같은 익숙한 단어를 따라 말하게 했지만, 모두 딱딱하게 서 있었다. 이 아이들에게 나는 단지 낯선 아저씨일 뿐이었다.     


가족사진은 1인 프로필 사진처럼 간단하지 않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고정하고 릴리즈 버튼을 누르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가족이라는 전체를 담으려면, 카메라 렌즈 너머로 직접 초점을 맞추고 끊임없이 피사체와 소통해야 한다. 하지만 긴장한 아이들에게는 내 말조차도 쉽게 닿지 않았다.     

사진 촬영 중, 카메라 뷰파인더로 한쪽 눈을 감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김치 해보자, 치즈라고 말해봐"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그저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모습을 보며 아기 돌사진 촬영 현장이 떠올랐다. 한 사람이 카메라를 잡고, 또 다른 사람이 옆에서 딸랑이를 흔들며 아기를 웃기던 기억. 웃음은 사진 속 아름다운 순간을 담는 열쇠이기에, 나는 이 순간에도 그 열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내가 사진 찍을 때 크게 치즈! 하고 외쳐보자. 알겠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한 표정이었다. 낯선 아저씨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나는 다시 카메라를 들고 부드럽게 "김치, 치즈"를 외쳐보라고 했지만, 긴장한 아이들의 표정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결국 오늘 찍은 사진은 표정 없는 가족사진이 되고 말았다.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사진 속 표정을 통해 가족의 행복을 담고 싶었지만, 내 소통이 아이들에게 닿지 못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사진 찍는 사회복지사다. 내 카메라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소통의 다리가 된다. 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찍으며 그들이 가진 아름다움을 찾아주는 일을 한다. 그들의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그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사진은 소통이다. 최고의 사진가는 피사체와 소통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오늘의 촬영은 내게 다시 한번 그 진리를 깨닫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한다. 언젠가 이 가족이 다시 나를 찾아와 환하게 웃으며, 더 따뜻하고 진솔한 순간을 함께 담을 수 있기를. 내 카메라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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