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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꽃J Oct 15. 2024

나는 연입니다.

끊겨버린 인연

나는 연입니다.

공장에서 태어나 좁은 상자에 담겨 가게로 실려왔습니다.

어떤 주인을 만날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누군가, 저를 들고 요리조리 살펴봅니다.

나를 데려갈 사람일까? 저도 그 사람을 빤히 쳐다봅니다.

이내, 저를 놓고 돌아섭니다.


옆에 있던 친구가 주인을 만나서 떠납니다.

아이의 손을 잡은 남성입니다.

이 좁은 공간을 빨리 벗어나, 훨훨 날고 싶습니다.


드디어, 저를 집어든 사람이 몇 걸음 이동합니다.

'띡' 소리와 함께 기계에 8000이라는 숫자가 보입니다.

그 사람은 주머니에서 네모 모양의 납작한 물건을 꺼내 내밀어요.

'띠리링' 소리가 나자 그 물건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저도 드디어 파아란 하늘이 있는 세상으로 나왔어요.

햇살에 눈이 부십니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요.

먼저 나간 친구들이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어요. 신나 보입니다.

저도 이제 날게 될까요?


주인은 나를 비닐에서 꺼내더니 실을 잡고 달립니다.

하지만 갑자기 몸이 붕 떠오르자, 두려워 몸을 흔들어봅니다.

땅에 있을 때가 더 편해요.

주인은 몇 번이고 실패를 잡아당기며 나를 띄우려 합니다.

드디어, 내가 공중으로 떠오르자 주인은 빙긋 웃습니다.


공중으로 더 높이 붕 떠오릅니다.

무서워서 눈을 감았다가 슬쩍 떠보니, 사람들의 머리가 작아지고, 잔디밭과 강이 보입니다.

'한강 시민공원'이라는 쓰여 있는 표지판이 보여요.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기분입니다.

바람을 타며 기분 좋게 날아요.

주인이 나를 하늘에 띄워 더 좋은 풍경을 보여줍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넋 놓고 보는 사이, 주인은 점점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저를 데려가요.

눈앞에 검은 줄들이 보입니다.

줄이 점점 가까워져요.

안간힘을 향해 몸을 흔들어요.

주인에게 말해보지만 들리지 않는가 봐요.


검은 줄에 몸이 탁 걸리고 말았어요.

그제야 주인은 저를 줄에서 풀기 위해 노력합니다.

5분. 주인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저를 잡아당겨요

10분. 제 몸에 연결된 실을 풀었다 당겼다 합니다.

15분. 어떤 사람이 다가와요. 여자친구인가 봐요.

'안되면 그냥 줄 끊어'

'조금만 더 해보고 금방 갈게'

20분. 주인은 몸을 더 움직이지 않습니다. 망연자실 저를 올려다봅니다.


'툭'

줄을 끊고 뒤돌아섭니다.

몇 번을 아쉬운 듯 돌아보다가, 가버리고 맙니다.

왁자지껄. 사람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하늘이 여전히 파랗습니다.

바람이 여전히 시원합니다.

나는 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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