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동안 일자리를 구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내 본연의 일을 다하지 못했다. 교보문고 파트타임을 그만둔 뒤로 말이다. 한순간에 내 삶에서 노동이 없어지자 (물론 내가 결정한 일이다) 나는 다시 또 '일'이라는 것에 사로잡혀 그 생각만 하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지, 어떤 일을 찾을 수 있을까, 일을 구하긴 해야 하는 데 하고 싶지가 않네" 등.
시간이 흘러 어찌 됐든 일은 구했다. 주 5일 40시간으로. 그러고 나서 나는 전에 스스로 스쳐 지나왔던 일에 대한 한 생각을 떠올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이란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 것이다.
나는 가끔 내가 쓴 글들을 둘러본다. 어려운 과학 개념을 읊듯이, 철학서와 문학을 읽듯이 나는 나의 글들을 곱씹어 보며 한 자 한 자 다시 소화되도록 삼킨다. 왜냐하면 내 속에서 나온 생각들, 직접 타이핑한 글일지라도 나는 금세 그것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글 쓰는 당시만 해도 고양된 감정에 휩싸여 이제는 정말 모든 것이 해결되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는 감각을 갖지만 단 1시간, 아니 30분만 지나도 그런 생각은 사라진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나가 다양한 삶의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면 그때의 확고했던 신념들은 어느새 먼지처럼 흩어지고 나는 다시 멍청한 생각들로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해결되었다고 믿었던 문제를 똑같이 다시 마주하는 일은 불쾌하다.
그러나 나는 이것에 극복 방법을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 나의 글들을 다시 읽어보며 되새기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 '일에 대한 생각'도 다시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최근 일을 너무나 삶과 동일시했었다. 일이란 삶의 부분일 뿐인데, 꿈은 일이 될 수 없는 건데도, 나는 어느새 '일'에 매몰되어 그 밖의 삶들을 놓치고 있었다.
내게 [워라밸]은 필요 없다. 라이프 안에 워크가 있어야 한다. 전에 '일'에 대해 내렸던 결론은 이렇다.
성인이 되어 어린 시절의 꿈을 잊어버리고 현실을 사는 이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1. 어떤 직업적 소명을 꿈꾸거나 특정 커리어를 고정하여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2. 안정적이고 많은 수입을 얻기 위해 안정적이며 큰 직장에서 오래 일하고 싶다.
전에는 이 두 가지 길밖에 보이지 않았었다.
둘 다 별로 원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가질려 하니 정신이 피로해질 수밖에.
지금의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사람들은 워크와 라이프를 구분하여 벽을 세우고 살아간다. 그리 그중 워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유는 돈 혹은 직업적 꿈이다. 그래서 워크를 먼저 정하고 그 워크에서 가능한 라이프들을 선택한다.
예를 들면, 삼성전자에 입사해 기흥의 반도체 공장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써 살기를 정한 후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고 여가생활을 즐기고 그곳에서 가능한 취미를 설정한다.( 보통은 골프와 술이다.)
그런데 나는 이 좋은 것을 항상 상상하기만 하면 비참해졌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나는 라이프를 더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러니 그 라이프스타일이 구현 가능한 것에 한에 워크를 정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음악, 책, 옷을 좋아하니 그것들에 둘러싸여 있는 삶을 원하고 또 세계의 확장이 나의 즐거움이니 나는 다채로운 사람, 방식과의 만남을 원한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한 깨달음들을 글로 써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 라이프스타일을 위해서 워크가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집은 유동인구가 많은 서울이면 좋고 일터도 그래야 한다. 또 정체되거나 B2B 업종보다는 빠른 변화 흐름 속에 있으며 B2C 업종인 것이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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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고정한 채, 일을 구하고 그렇게 생활한다.
일에 너무 몰입하지 않는 것. 왜냐하면 내게는 돈을 버는 일 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랑하고 사람과 대화하며 웃고 떠드는 일이 훨씬 중요하며 더 행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커리어 성장보다는 인간적 성숙을 삶의 목표로 삼는다. 더 평화롭고 더 자유로운 더 사랑스럽고 더 아름다운 인생을 위해.
이렇게 나는 나만의 성서, 내가 쓴 성서를 뒤지고 다시 깨달음을 얻으며 삶에 적용시킨다. 종교인들이 복음을 읊고 그들의 성서를 공부하고 번역하는 것처럼. 나는 나의 글들이 나의 기반이 된다.
이것이 초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