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미래를 알고 싶다는 마음]
아마도 청춘들은 자신들의 모호한 미래탓에 고통받고 있다. 몇일 전 친구들과의 대화로 느끼게 된 것은 아무리 생각하고 상상하려 해도 도무지 불안하며 흐릿하기만한 현재 자신의 모습과 그에 연장되어 알 수 없는 미래의 모습에 대해 자책하고, 무력해 한다. 그런 우울감의 나날들을 보냄으로써 당장의 구원은 오로지 취업뿐이라며 자신을 채찍질하고 달리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제발 고정되기를, 뚜렷해지기를 바라며 그 좁디좁은 취업의 문을 두들기고 있다.
당장의 구원'일수도' 있다. 다만, 나의 예상컨데 취업 후 자신의 뚜렷한 미래에 대해 잠깐의 기쁨을 느끼겠지만 1년안에 그들은 다시 좌절할 가능성이 높다. 불안때문에 무턱대고 들어간 업장은 자신이 바라던 미래가 아닐 확률이 높을 테니까.
[가능성, 간접경험에서 체험의 세계로]
그리고 나는 집단 속 구원을 거부한다. 아마도 환상일테니까. (지금까지 계속 '아마도'라는 뉘앙스로 글을 전개한 이유는 내가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탓이다. 나는 그저 직감으로 예상할 뿐이니까.) 졸업 후 앞으로 무엇을 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문득 떠오른 생각은 나는 그동안 간접경험에 몰두해왔다는 사실이었다. 책, 특히 문학을 통해 다른 여러가지 인생들을 탐색하고 나에게 펼쳐질 다른 가능성들을 줄곧 고민해왔었다. 당장의 삶에 만족스럽지 못했던 탓에 나는 계속 다른 가능성 속 '나'를 탐색해왔던 것이다. 심지어 더는 아무리 생각하여도 당장에 서서 상상될 수 있는 진부한 미래로는 가고 싶지 않았었다. 그러니까 현재에 나로써는감히 상상할 수 없는 영역의 삶으로 도달하는 것. 이것이 그렇게 대학시절 줄곧 문학읽기에 정신을 쏟았던 이유였다.
그리고는 결정했다. 간접경험으로써의 가능성 탐색은 충분하니 이제는 돌아갈 곳도 없겠다, 직접체험해보기로. 제주에 살아보고, 유럽에서의 삶을 체험해봄으로써 앞으로의 내 삶에 가능성들을 직접 탐색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로지 나의 선택, 믿음]
지금의 이런 선택은 위험하다.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부를 될 수 있는대로 쌓아야하고 빠르고 효율적으로 안정적 미래를 도모해야 하므로 이런 사고흐름은 가히 비-적응적이다. 그러나 나는 자본주의 바깥이 존재함을 안다. 그간 단련해온 문학읽기 덕에 현대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란 우주 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이제는 알기만 했던 삶을 체험할 때라는 것을, 실행할 때라는 것을 느끼니 위험은 충분히 감수할만 했다. 카프카의 소설처럼 벌레로 살아간다 해도 그 안에서 나름의 기쁨이 있다는 것을 믿으니 그렇게 행해진다.
물론 가끔은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싶을 때가 있다. 스스로의 확신에 대해 의구심을 품을 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나는 금방 다시 돌아올 수 있다. 결국 나를 믿고있으니까. 나의 역사를, 가치를, 기쁨을, 삶을 믿고 있으니까. 과거를 회상해보면 언제나 나의 믿음으로부터 출발한 선택인 경우 좋다고 느꼈었다. 결과가 좋지 않았더라도 금방 일어날 수 있었다. 믿음이 있으니 지금이 끝이라는 생각은 금세 지워지고 앞으로의 수습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타인의 생각과 가치관들이 반영된 경우엔 남을 탓하기도 하고 무턱대고 따랐던 나를 자책하기도 하며 번뇌에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그렇게나 힘들었었다. 그러니 이런 나를 믿을만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