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이 더이상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치누아 아체베]를 읽으며

by 이건우

오늘은 조금 쓰기 싫다. 어떻게 매일, 그것도 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겠는가. 타인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하루들이 늘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쓴다. 관점을 나로 향하는 것이 아닌 바깥으로 향하게 하면 언제나 쓸 말은 있다.



아체베의 소설 [더 이상 평안은 없다]를 다 읽었다. 따로 감상글을 남길 것 같지는 않아서 이렇게라도 남긴다. 그래서 어떤 책이었냐 하면,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보수적인 집단의 한 젊은이가 밖으로 떠나 새로운 것들, 더 나아간 것들고 마주하고 다시 돌아와 집단 권위에 도전받는 이야기. 그러니까 집단과 개인의 불일치이다. 새롭다고 느껴졌던 것은 배경이 아프리카라는 것. 그간 나 또한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문화에 대한 편견이 심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비'는 나이지리아의 한 부족연맹에서 엘리트로 나고 자란 한 청년이다. 영국에 유학을 하고 돌아와 황금빛 미래를 꿈꾸며 고위 공무직을 차지하였지만 가족의 부양, 부족연맹에 대한 헌신, 동생들의 학비, 갚아나가야할 학자금 등 그를 짓누르는 집단의 중압감은 무겁다. 설상가상으로 가문의 해가 될 수 있는 '클라라'와 결혼을 결심하면서 그는 부모와의 갈등을 겪게 되고 마침내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뇌물수수혐의로 체포되며 소설은 비극적 결말을 맷는다.



언젠가부터 주입되었던 서구식 문물에 대한 칭송, 서양식, 현대적 사고방식이 더 우월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들,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세상은 계속 나아지고 있다는 견고한 믿음. 그런것들이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이런 종류의 환상을 쉽게 깨지지 않는다. 현재는 고통스럽고 미래는 언제나 불안하니까,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으니까. 얼마전 봤던 영화 '하얼빈'에서의 이토 히로부미처럼, 한국을 지배하고 나아가 동아시아를 모두 일제화하여 통합하게 되면 더 좋은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제국주의적 환상에서 우리는 아직 덜 깨어나 있다.



이런 소설은 재밌다. 새로운 문물을 알 수 있으니까. 알지 못했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까이 가게하니까. 아마 오비는 출소한 이후에 잘 살아갈 것이다. 오히려 그간 소속되어 그를 짓누르던 집단과 멀어지는 계기가 됨으로써 더 자유에 가까워 지리라 감히 예상된다. 지금 선 자리가 끝이 아니라는 진실에는 이런 힘이 있는 것이다. 비극이 더이상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새로운 전환점이 되어 세상의 자유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그런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어떠한 좌절도 두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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