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누가 내게 무엇으로 살고 있느냐하고 물으면, 나는 대화의 따뜻함으로 살고 있노라고 대답할 것이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어느 한 순간 전해지는 따뜻한 기운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보았을 것이다. 나에게는 22살 무렵이었다. 군대 휴가 중 마주했던 진심어린 대화들. 그 이후 첫 개인적 이야기를 꺼내게 했던 심리상담. 주변인들과의 속얘기 등. 처음 따뜻함을 마주했던 순간 이후로 나는 계속 그런 순간들을 기억해내고 만들어나가고자 살고있다.
그 따뜻한 기운의 정체가 '응원'이며 동시에 '위로'라는 것임을 안지는 얼마 지나지 않았다. 여행 중 여자친구의 말이었다. 살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그때는 항상 응원과 위로의 순간이었다고. 나의 언어로는 단지 막연한 추상으로밖에 묘사되지 않던 '따뜻함'이 그렇게나 구체적인 행위의 명사로 표현 가능하게 한 그녀의 언어력의 놀랐다. 정확했다. 우리가 학교, 직장, 일상을 살아가면서 관계를 맺는 이유는 서로를 응원해주기 위해, 위로해주기 위해서였다.
인간 지각의 한계로 자신의 우주에 갇혀있을 수 밖에 없는 우리는 고독하고 외롭다. 자신의 생각과 온전히 같은 이는 하나 없고 심지어 거쳐온 역사, 경험들이 달라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때가 부지기수이다. 이것이 많은 선대인들이 삶은 고통이라고 하나같이 역설하는 이유인데, 이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계가 필요한 법이다. 우리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살아갈 의지가 생긴다. 나의 삶을 온전히 이해시킬 수는 없지만 응원해주는 이가 있고 이따금 위로의 순간을 맞이하는 덕분에 나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아무 관계도 맺지 않는다면, 나의 생활에 관심 있는 이가 하나도 없다면, 나를 바라보는 이가 단지 '나'뿐이라면, 삶의 만연한 고통 속을 헤쳐나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견뎌야 하나? 답은 단순하다. 살기 위해. 왜 살아야 하나? 타인을 응원해주고 위로해주기 위해. 이런 결론으로 다시 되돌아 온다. 다시 말해, 사람은 응원과 위로로 살아가고 동시에 응원과 위로를 위해 살아간다. 원인이자 목적인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사회를 만들었다. '나'를 위해가 아닌 '서로'를 위해. 우리는 곧 서로가 없다면 생존할 수도 없으며 , 살아갈 목적도 잃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야 결론은 단순해진다. 돈이나 명예따위를 위해, 자신의 생산성과 가치를 드높이기위해 자신을 착취하며 삶을 복잡한 하루와 미래들로 가득채울 필요가 없다. 단지 관계만으로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사랑일 터이다.
물론 가야할 목적지가 단순하다고 가는 길이 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위한 노력에는 끝이 없을 테이고 수많은 좌절은 기대된다. 하지만 이제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가. 어려운 순간마다 언제나 응원과 위로와 마주하게 된다고. 그럼 다시 쉽게 일어날 수 있다. 사랑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