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부터 죽음으로, 죽음과 함께

에세이

by 이건우

유독 흐리던 오늘. 아침과 점심사이 애매한 끼니를 적당히 챙겨먹고 집을 나선다. 왜인지 오늘은 늘 가던 곳 대신 어젯밤 네이버 지도에서 찾은 드립커피전문점을 가고 싶어졌다. 일본 여행 중엔는 아메리카노만 들이키며 찾지도 않던 드립커피가 여행이 다 끝나고나서야 땡긴다. 패션욕구와 함께 이번 여행이 나에게 남긴 것들이다.



드립커피를 하나 시키고 책을 편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 저기 먼 나이지리아에서 한국까지 번역되어 들어온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요즘 이 책 덕분에 국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던 것이다. 부족중심 사회인 원래 아프리카지역에 서양식 '국가'를 억지로 입히고, 너희들은 이제 한 국가이니 부족간 경쟁은 그만두고 하나의 국가로 살아가도록 강요되는 것들. 여러개의 부족이 억지로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며 생겨난 삶의 비극들.



책을 덮고 드립커피의 시큼한 향을 즐긴다. 그리고 할머니에게로 가는 애도의 길. 노래를 들으며 리듬과 지하철을 타다 보니 어느새 인천가족공원에 도착해있다. 밑에서부터 걸으며 위로 향하는 길. 날씨가 개었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을 느끼며 계속 나아간다. 옆에 넓고 길게 퍼져있던 비석들. 저렇게나 많은 사람들은 죽는구나. 나도 죽는구나. 저 죽음들로부터 아마 사람은 태어난다. 육신이 흙이 되고 먼지로 흩어져도 여전히 남게되는 '생명' 자체가 다음 삶, 세대에게로 전이된다. 그러니까 죽음이 많은 것들을 태어나고 살아가게 한다. 나는 그런 죽음들로부터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구나. 그렇다면 나는 살아있는 김에 삶을 다 해내야 한다. 즐거움을 만끽해야겠다. 삶에 의무란 오직 살아있으며 즐거움을 만끽하라는 것뿐. 이런 나의 정의에 더욱 힘써야 겠다.



그리고 할머니와 마주했다. 다시 과거의 우리 기억들을 되살리고 이 순간까지 나는 기억할 것이다. 할머니는 흩어졌지만 여전히 내게 남아있다. 존재한다. 단 하나의 육체에서 수천 수만개의 입자들로 할머니는 흩어졌다. 단일성의 고통에서 평안의 세계로, 그녀는 가버렸다. 이제는 그녀의 파동을 기억속에서 느낀다. 그렇다면 내 삶의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다. 사람들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 기억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존재하게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연결되고 살아간다. 죽음으로부터 태어나고 죽음으로 간다. 죽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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