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망설임 사이에서

묘제에 다녀오다

by 허정호

전통과 망설임 사이에서


2020년 코로나 발생 첫해는 종중 묘제를 지내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별다른 공지도 없이 카카오톡으로 회비 납부 독촉과 함께 묘제 날짜만 공재했다.

백신을 맞았다고는 하지만 시국은 여전히 불안했고, 확진자 수 또한 줄지 않았다. 참석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마음이 쉽게 정해지지 않았다.

김해에 사는 동생은 만나는 사람이 많아 참석하지 않겠다고 했고, 막내는 직업상 멀리 있어 올 수 없다고 했다. 사촌 동생 역시 몇 해 전부터는 아예 묘제에 나오지 않는다. 감기 기운까지 있어 몸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나까지 빠지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묘제 날 아침, 아내와 나는 묘제만 지내고 음식은 먹지 말고 돌아오자고 약속했다.

서둘렀지만 제사 시간에 맞추지는 못했다. 산소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종중 회장님에게서 “어디고?” 하는 전화가 왔다.

산길을 한참 걸어 들어가야 했다. 풀은 무성했고, 아내는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장화로 갈아 신었다. 나는 운동화 차림이라 바짓가랑이에 도둑놈(도꼬마리의 경상도 방언)이 잔뜩 붙어 엉망이 되었다.

이미 산신제는 끝났고, 묘제상은 차려져 있었다. 열아홉 분 조상님께 술을 따르며 인사를 나눴다. 악수 대신 주먹을 맞대는 인사가 어색하지만 자연스러웠다.

이번 묘사는 참석 여부를 강요하지 않았다. 관심 있는 자손들만 모여 간소하게 치르기로 했다는 말에 마음이 조금 놓였다.

제사가 끝나고 음식을 차려 둘러앉았지만, 나는 감기 몸살 기운이 있어 함께 먹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내는 같이 사는 짝지가 감기 기운이 있으니 먹지 않는 것이 좋겠다며, 대신 음식 차리는 일을 도왔다.

이렇게라도 참석해 친척들의 얼굴을 보고 돌아오니,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을 지키는 일과 나 자신을 지키는 일 사이에서, 그날의 나는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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