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수식어가 필요 없는 풍경
연화도, 바람에 실려온 하루
2025년 4월의 어느 날.
그날은 계획보다 기분이 앞섰다.
조 소장님이 보낸 카카오톡 홍보물에서 하루는 시작되었다. 통영의 여섯 섬이 아름다운 사진으로 줄지어 있었다.
“통영 시민 무료, 동반 외지인 50% 할인.”
욕지도의 맛집과 카페에 잠시 마음이 기울었지만, 최 원장님이 연화도를 꼭 가보고 싶다며 손을 들었다. 그렇게 목적지는 자연스럽게, 별다른 토론 없이 정해졌다.
최 원장은 섬 안에 순환도로가 잘 되어 있다며 전기차를 가져가겠다고 했다. 조 소장은 이미 예약해 둔 차량을 취소했다. 모든 것이 유연했고, 쿨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매표소에서 돌아온 조 소장은
“전기차는 배터리 40% 이하일 때만 승선이 가능하대요.”
결국 조 소장의 차를 가져가기로 했고, 그의 낭군님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차를 가져가도 괜찮을까. 오히려 짐이 되진 않을까….”
출항 시간은 가까워졌고,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배에 올랐을 땐 객실마다 사람이 가득해 앉을 틈조차 없었다. 돗자리를 펼 자리를 찾아 헤매다, 우리는 결국 화장실 입구 굴뚝 옆 좁은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휴식의 자리가 아니라,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였다.
돗자리를 깔자마자 최 원장 아내가 사과와 생강차를 꺼냈다. 따뜻한 차 한 모금에 겨우 숨을 고르려던 순간, 배가 기적을 울리며 방향을 틀었다.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솟고, 환풍구에서는 거센 회오리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종이컵 속 생강차는 출렁였고, 돗자리는 바람에 실려 나뒹굴었다. 입에 사과를 문 채, 넘칠 듯한 컵을 붙들고 우리는 어정쩡한 균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미로 향하자 갈매기들이 파도를 타듯 따라왔다. 사람들은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를 불러 모았고,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춤추듯 몰려들었다.
최 원장은 사과 조각을 손에 쥐고 갈매기와 눈을 맞췄다. 갈매기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부리로 사과를 물어갔다.
그 장면은 묘하게 낭만적이었고, 그날의 모든 소란을 잠시 잊게 했다.
배는 연화도 선착장에 닿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섬에서 내렸다. 우리는 차를 타고 연화사로 향했다.
수국이 심긴 길에는 아직 꽃이 없었지만, 봄 공기만은 싱그러웠다. 알록달록한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며,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연화사는 단정했다.
조용한 절집은 바다 쪽으로 마음을 열어 두고 있었고, 우리는 그 품에서 잠시 시간을 내려놓았다. 사람들이 떠난 뒤 길은 다시 고요해졌고, 우리도 그제야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었다.
연화사를 나서며 고민했다. 해안 산책길을 걸을지, 차를 타고 끝까지 들어갈지.
결국 모두 차에 올랐다. 시멘트로 포장된 좁은 길이었지만, 곳곳에 마련된 공간 덕분에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보덕암을 지나자 전망 좋은 삼거리 길이 나왔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무덤가 옆 잔디밭에 돗자리를 다시 펼쳤다.
조 소장이 준비한 통영 꿀빵, 유람선에서 먹다 남은 사과와 생강차, 그리고 울산에서 공수한 호두과자. 간식은 푸짐했고, 바다 위 윤설은 눈부시게 반짝였다.
“차를 가져오길 정말 잘했어.”
누군가 말했고,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쳤다.
길 끝의 동두마을에 닿았을 때, 몇몇 등산객들이 출렁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그 다리를 건너 용머리 전망대로 향했다. 해안을 내려다보며 또 한 번 감탄이 흘러나왔다.
몽돌해안으로 내려가는 숲길은 조용했다. 돌밭에서 최 원장과 조 소장은 돌을 뒤집어 성계를 잡으며 잠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담을 그릇을 찾다 결국 다시 돌 아래로 돌려놓았다.
그 조심스러움이 괜히 고마웠다.
보덕암에 들러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연화도의 해안은 어떤 수식도 필요 없을 만큼 스스로 아름다웠다. 우리는 말을 아꼈다. 그저 눈에 담고, 마음에 넣었다.
돌아와 선착장 근처 횟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푸짐했던 하루. 바람과 사과, 생강차와 통영 꿀빵이 함께한 여정이었다.
그날 연화도에서 우리는, ‘가져온 승용차’ 덕분에 더 많은 풍경을 보고, 더 오래 감탄했고, 더 깊은 여유를 얻었다.
그리고 아마도 가장 오래 남을 기억은, 바람에 흔들리며 웃던 그 순간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