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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Sep 13. 2024

늘 궁금한 옆 반 이야기_4편

초등학교라고 늘 그런 건 아닙니다, 대개 그럴 뿐



    늦은 폭염에 9월 같지 않은 9월이 계속된다. 추석을 앞두고 종합선물세트를 만드는 느낌으로 아이들과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팔아본다. 잘 팔려야 할 텐데...ㅎㅎ


#1. 날 이렇게 막 대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이 이야기는 3편에 등장했던 '바름이'가 내 마음속에 각인되었던 바로 그 이야기. 시간은 무려 1년 여를 거슬러 간다. 바름이는 세상 귀여운 1학년, 나는 3학년 담임이었다. 사건의 배경은 점심시간의 급식실이다. 당시 우리 학교는 고-저학년 순으로 급식 배식을 했다. 하지만 3학년인 우리 반은 손 씻고, 이동 줄을 서는 데에 늘 오랜 시간이 걸려 급식 배식 순서가 거의 전교 꼴찌 수준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들을 여유롭게 준비시키고 밥을 먹이는 게 교사인 나의 입장에서도 편해서 굳이 독촉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급식실에 가면 1학년과 마주할 확률이 80% 이상이었다.


    교사는 점심시간도 근무 시간에 포함이 된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과 같이 밥을 먹다 보면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정신이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번 여름 개학식 날, 간만에 아이들과 급식을 먹고 밥이 얹혀 고생한 경험이 있다. 나는 대개, 아이들의 바른 식습관 지도와 안전을 위해 모든 아이들의 배식이 끝난 후에 밥을 받는다. (세모야, 먹기 싫은 건 조금만 주세요, 하고 말해 보자. 네모야, 골고루 잘 먹어야 잘 크지~ 동그리, 먹고 부족하면 더 받는 거예요~~ 거의 잔소리봇이다.)


    우리 반이 꼴찌일 땐 상관이 없지만, 우리 반 아이들 뒤로 다른 반 아이들이 줄을 서 있으면 그게 또 꽤 난감하다. 그래도 대부분 학생들은 선생님인 내가 배식 지도를 하느라 뒤쳐졌단 사실을 대충 알기에 '혹시, 선생님 먼저 받아도 될까?' 하고 양해를 구하면 '네!' 하고 자리를 내준다. 줄에 끼어들 때 상황은 대충 이러하다.


글샘: (우선 눈맞춤을 시도한다.)

정체불명의 어린이: (눈맞춤이 어렵게 뒤에 있는 친구랑 장난하기 바쁘다.)

글샘: (눈맞춤 실패. 뒤에 있는 아이들 중 만만해 보이는(!) 아이를 물색한다. 목표물을 포착했다!) (조심스럽게) 혹시, 선생님 먼저 좀 받아도 될까?

고마운 어린이: (뒤로 조금 비켜주며) 네!

글샘: 고마워~ 밥 맛있게 먹어~


    그날도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모두 보낸 후, 줄을 서 있는 1학년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글샘: 친구야~ 선생님 먼저 좀 받아도 될까?

바름: (우렁차게) 아니요? 제가 받을 차례인데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식판을 챙겨 배식받고 있음)

글샘: (ㅇ_ㅇ) !!!!!!


    나를 처음으로 거절한 어린이, 바름이었다. 이 강렬한 첫인상. 드라마에서 재벌들이 '내 뺨을 때린 건 네가 처음이야.' 하며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바름이의 뒷모습이 왠지 더 단호해 보이고, 바름이가 어떤 아이일지 알고 싶어지는 이 마음은 뭘까? 모든 상황을 뒤에서 보고 있던 바름이의 친구 어린이가 나를 꽤나 안타깝게 바라보며 자리를 양보해 주었지만, (선생님, 여기 서세요.) 이미 나는 바름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후였다. 어린이들을 줄 세우느라 상황을 보지 못한 바름이의 담임 선생님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러자 바름이의 담임 선생님이 하는 말.


"부장님도 당하셨군요.(ㅋㅋㅋㅋ)"


    바름이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으며 '바름이가 원래 좀 그래요.'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1학년의 바로 옆 반 선생님도 바름이에게 똑같은 일을 당하셨다고(?). 1학년에서도 바름이의 단호한 말과 행동은 이미 유명하여 바름이는 내가 몰랐을 뿐, 유명인사였던 것이다.


    바름이의 담임 선생님과 나는 이미 급식을 받아 자리에 앉은 바름이에게 함께 가서 선생님이 끼어들려던 게 아니고, 반 아이들 배식 지도를 하다 줄 뒤로 밀려난 것이므로 원칙적으로는 내가 먼저 다는 사실을, 그러니 새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설명을 들은 바름이, 별 관심 없단 표정으로(ㅋㅋㅋ) '그래요?' 쿨하게 반응하고는, 다음번에는 내게 순서를 양보하기로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ㅋㅋ) 그리고 나는 그렇게 바름이에게 마음을 빼앗겼다는 이야기이다.


#2. 1학년한테 바람맞는 교사


    이어서 바름이와의 이야기이다. 바름이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 나는 한동안 점심시간에 바름이의 흔적을 좇고, 바름이가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보며 나름의 힐링 포인트를 찾았다. 바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어찌나 단호하며 또 1학년답게 단순한지, 그 매력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날 바름이는 친구들과 숨바꼭질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에 나는 바름이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한창 재밌게 놀고 있는 바름이에게 접근했다. (ㅋㅋ)


글샘: 바름아~ 지금 무슨 놀이 하는 거야? 재밌어 보인다!

바름: 네, 재밌어요. (귀찮음)

글샘: 그러니까. 진짜 재밌어 보이는데, 무슨 놀인지 선생님도 알려주면 안 될까?

바름: 아니요!!! (단호) 지금은 바빠서 안 돼요~~ (흘리듯이 말하며 노느라 바쁨)

글샘: (불쌍한 척) 선생님도 같이 놀고 싶은데...

바름: (잠시 생각한 후) 음... 그러면 지금 말고, 내일! 내일 같이 놀아요. 제가 오늘은 이거(그 놀이의 정체는 결국 알지 못했다)하느라 좀 바쁘니까, 내일 선생님이랑 놀아줄게요. (ㅋㅋㅋㅋㅋ)


    자존심도 없는 나는 바름이의 약속에 마음이 설레고 만다. 바름이가 혹시나 취소라고 할까 봐 그 자리에서 바로! 바름이의 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름이와 점심시간에 놀 생각을 하니 일어나면서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출근길이 이렇게까지 즐거울 수 있는 거였나. 고대하고 고대하던 점심시간이 되었고, 나는 기대되는 마음으로 바름이를 만나러 운동장에 나갔다. 그리고...


    바름이는 그날 운동장에 나오지 않았다. (ㅠㅠ)


    다음 날 바름이를 만나 물어보니 나와 약속한 걸 까먹었단다.(아, 그게... 까먹었어요! 하는 바름이의 얼굴엔 미안한 기색도 없었다...ㅋㅋ) 이토록 매력적인 나쁜 어린이(?)라니. 나는 바름이에게 바람을 맞고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바름이의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이다. 바름이에게 나는 아마 맨날 질척대고 찝쩍거리는, 귀찮은 선생님이겠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들의 마음을 바름이로 인해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3. 크게 말하지 못한 이유


    우리 학교의 J 선배가 들려주었던 이야기. 지금은 담임을 맡지 않고 있지만, J 선배는 저학년 전문가로 저학년 어린이들의 바른 생활 습관과 학교 생활에의 적응을 누구보다 잘 지도하는 교사다. 그런 J 선배가 어느 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하던 해의 이야기라고 한다.


    J 선배의 교실에 에이스 남학생이 있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전해 듣지 못했으니 내 맘대로 '상우'라고 하겠다. 상우는 우당탕탕 1학년 교실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어린이었다고 한다. 잘 잡힌 생활 습관과 학습 태도는 기본이고, 친구를 돕는 마음과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말로 표현하는 능력까지. 그런 상우가 어느 수업 중에 갑자기 손을 들고, 무어라 작게 웅얼거렸다고.


    상우의 말이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평소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잘 이야기하던 상우가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한 것이 의아하여 J 선배는 '여러분, 우리 교실에서 손을 들고 이야기할 땐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하기로 했지요? 상우는 평소에 잘 했는데, 좀만 더 크게 이야기해 줄래?' 했다고. 그래도 상우는 계속 무어라 작게 이야기할 뿐. J 선배가 여전히 상우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상우야, 선생님이 잘 안 들리는데 조금만 더 크게 이야기해 줄래?' 말하자, 상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선. 생. 님! 저! 지금! 바지에! 똥!!! 쌌다구요!!!!!" (거의 고함 수준의 큰 목소리ㅋㅋㅋㅋㅋ)


    선배는 어찌나 당황스러웠을까. 다행히 상우는 똑똑하고 야무진 어린이였고, J 선배는 베테랑 교사였다. 상우는 스스로 뒤처리를 한 것은 물론, 선배와 가정의 연락 후 옷을 갈아입은  그날의 수업을 다 듣고 하교했다고 한다. J 선배는 상우가 뒤처리를 하는 동안 이런 일이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어린이들을 지도했다고.


    "얘들아, 선생님도 어릴 때 학교에서 바지에 실수를 한 적이 있어. (선의의 거짓말) 사람이면 누구나 그럴 수 있고, 몸이 아프거나 좋지 않을 때는 더욱 그럴 수 있단다. 절대 놀릴 일이 아니야."


    그러자 갑자기 양심고백의 장이 되어버린 1학년 교실. 유치원 때부터 시작하여 얼마 전까지 바지에 실수한 이야기, 쉬한 이야기, 똥 싼 이야기를 너나 할 것 없이 자랑하며(!) 즐거웠다고 한다. (ㅋㅋㅋㅋㅋ)


#4. 도대체 어디에 나왔단 거야?


    이 이야기는 따끈따끈한 이야기. 얼마 전, 우리 반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이들과 온 책 읽기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어느 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재미있는 사건을 다룬 책을 함께 읽고 있는데, 아이들 사이에 무어라 무어라 약간의 언쟁이 일었다. 활동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데, 대체 무엇 때문에 아이들이 술렁이는지 궁금했던 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글샘: 얘들아, 문제에 무슨 문제라도 있니?

한 어린이: 선생님! 책에 학교 이름이 나왔죠?

글샘: (고민하다가) 책에 학교 이름이 나왔었나? 선생님은 못 본 것 같은데?

일부 아이들: 아니에요! 학교 이름 나왔어요! (당당)

다른 아이들: 야, 아니라니까! 학교 이름이 언제 나왔어! (답답)


    그러니까 아이들은 이야기의 중요 사건을 간추리는 문제를 해결하던 중,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학교의 이름이 나왔느냐를 주제로 토론을 했던 것이다. 책을 읽어주며 학교 이름은 본 적이 없는데, 혹시 내가 놓쳤나 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선생님이 한 번 더 찾아보겠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책을 펼쳐드는 순간, 한 어린이가 하는 말.


"선생님, 책에 학교 이름 진짜 나왔어요. 모! 초등학교! 찾아보세요."


    아... 그러니까 아이들은 '모 초등학교'에서 '모'가 '아무개'를 뜻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다.(ㅋㅋㅋㅋ) 웃기고, 걱정되는 이 어린이들을 우짤꼬. 나는 '모'의 의미를 설명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더 많이 찾아 읽으며 문해력을 기를 것을 주문했다. 어린이들, 조금만 더 똑똑해지자구~



    풍요와 감사의 명절,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추석의 의미를 새기며 즐겁고, 안전한 명절을 보내고 오라며 하교 지도를 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에 이미 보름달이 두둥실 떴다. 얘들아, 우리 명절 잘 지내고 다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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