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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Sep 27. 2024

혼내는 사람의 마음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 때론 혼도 내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얼마 전의 일


    선천적으로 목이 약한 나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면서도 평화롭고 수월하게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가 되기를 지향한다. 멋모르던 신규 교사 시절에는 아이들의 소리가 커질 때마다 함께 큰 소리를 내느라 교사들의 고질병-성대결절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목 쓰는 법도, 아이들을 다루는 법도 몰랐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래도 지금은 목을 많이 쓰지 않고 아이들을 다룰 수 있는 수준이 되어 환절기나 감기에 걸렸을 때가 아니면 목소리를 잃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시 말해 내가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를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 뜻이다.


    정말 얼마 전에 나는, 우리 반 아이들을 크게 혼내야만 했다. 2학기 들어서 학교생활에 임하는 태도가 급격히 나빠진 어린이가 둘 있었다. 어린이들의 변화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피다가, 기어코 혼내야만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 것이다. 한없이 풀어져가는 어린이들을 혼내며 동시에 교실에 있는 다른 어린이들의 경각심도 함께 일깨우기 위해 나는 큰 소리를 내어 혼내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기어이 큰 소리로 아이들을 나무라고는 여러 날 목과 마음이 모두 좋지 않아 심난했다.


혼냄의 이유


    교사의 고유 업무가 '가르치는 일'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겐 더 잘 가르치는 교사, 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이제 조금 감을 잡은 것도 같지만, 때론 잘 가르치는 일이 해가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지는 퍼즐 같이도 느껴진다. 쌓이는 경력에 따라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은 분야가 확장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롯이 아이들 때문일 때다.


    현장 교사의 입장에서 체감하는 사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매년 더 개인적이고, 자기중심적이 되어간다. 이는 비단 우리 교실만의 문제는 아니다. 또 아이들만의 탓도 아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 했던가. 물질만을 쫒고, 각자도생이 곧 진리처럼 작동하는 요즘 사회와 어른들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투영되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한창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모습으로 따뜻하게 빛나야 할 아이들이, 이기적이거나 배려심 없는 행동으로 어른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일 때면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내가 교사이기 때문인 걸까?


     그날의 사정은 이러했다. 어떤 이유로 아이들 사이에 교사의 개입이 필요한 사건이 생겼고, 나는 청소 시간을 빌려 사건과 관계된 아이들을 지도해야 했다. 우리 반은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청소를 하는데, 그날 나는 아이들에게 사정을 설명한 후, 청소를 마무리하고 각자 자리에 앉아 조용히 다음 수업을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는 교실 앞문을 닫고, 지도해야 하는 아이들과 교실 문 앞에서 문제 상황을 정리했다. 그런데 아이들과의 실타래를 열심히 풀어나가는 도중, 귀에 와서 꽂히는 큰 목소리와 웃음소리. 내가 눈여겨보고 있던 어린이들의 목소리였다.


    선생님이 교실 문 밖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면서도, 같은 교실 속 다른 친구들은 조용히 책을 읽거나 차분히 나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저들만의 잡담을 하며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두 어린이의 행동에 나는 크게 실망했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즉시 문을 열고 해당 어린이들의 행동을 큰 소리로 꾸짖었다. 흔치 않게 큰 소리를 내는 나를 보며 두 명의 어린이들도, 다른 어린이들도 모두 놀란 눈치였다.


    그간 어린이들에게 학교란 배움을 위한 공간이고 잘 배우기 위해서는 우리 교실이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는 점을, 그리고 안전한 교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단 점을 꾸준히 강조해 왔기에 나의 불과 같은 화(火)에는 아이들도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모두가 함께 생활하는 교실에서 두 어린이가 둘만의 잡담을 굳이 큰 소리로 하며 다른 친구들에게 불편을 끼친 것이 매우 잘못된 행동임을 짚었다. 그러한 행동이 매우 배려 없는 행동임을 짚었다. 두 어린이의 얼굴에 크나 큰 부끄러움과 반성의 기색이 스쳤다.


잘 혼내는 방법


    다년간의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잘 혼내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다. 잘 혼내기 위한 첫 번째 방법, 아이들을 혼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나 내향인인 나는, 아이들을 혼내고 나면 기운이 쭉 빠져 하루를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혼낼 타이밍을 마주했을 때는 생각보다 큰 용기를 내야 한다. 둘째, 혼내는 시간이 길수록 효과는 떨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겨우 혼낼 용기를 냈으니 효과적으로 혼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혼낼 때에는 벼락같은 찰나에 잘못을 명료하게 짚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셋째, 혼내는 것보다 혼낸 이후가 중요하다. 특히 학교에서 내가 아이들을 혼낼 때 그 목적은 잘못된 행동을 교정하는 데에 있다. 혼난 경험으로 인해 어린이가 지나치게 위축되거나, 기가 죽어서는 안 된다. 나는 혼을 낸 이후에는 어린이들을 평소와 같이 대하며, 내가 혼을 낸 것이 '어린이'가 아닌 '어린이의 행동'임을 온몸으로 알려주는 편이다. 또한 같은 교실을 쓰는 친구들이 '선생님이 이유 없이 우리에게 화를 내서 무섭다'거나, '선생님이 우리 모두에게 화가 났다'고 느끼지 않도록, 교정이 필요한 행동과 관련 없는 어린이들에게는 더더욱 평소와 같은 선생님이 되려 노력한다.


    그날도 그랬다. 잘못을 한 어린이들이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고, 반성의 기색을 보였으니 혼냄은 효과적이었다. 혼난 어린이들은 머쓱한 얼굴이 되어 나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업을 진행했고 특히 혼을 낸 두 어린이를 평소와 같이 대하며 잘 혼내기 위한 나의 세 번째 방법을 실천했다. 머쓱해하던 아이들은 내가 평소와 같이 저들을 대하자, 긴장을 풀고 한층 정돈된 모습으로 수업에 참여하다 하교했다. 그러한 일이 있고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혼남을 계기로 두 어린이는 꽤나 진지해진 태도로 마음을 다잡고 잘 지내려 노력 중이다.


때론 나쁜 선생님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들을 혼낸다'는 표현이 옳은 표현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아니, 이는 사실 잘못된 표현이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거나 단호하게 지도하는 행위는 단순한 '혼냄'이 아닌 '교육' 또는 '훈육'이 맞다. 하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이번 일처럼 어쩔 수 없이, 말 그대로 혼을 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당근보다 채찍이 필요한 순간이 있는 것처럼, 차분하게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서 꼭 큰 소리를 내며 혼을 내야만 하는 순간도 있다.


국어사전에서 설명하는 '혼나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언제 혼났던 적이 있냐는 듯, 오늘도 본래의 해맑고 개구진 모습을 되찾아 잔뜩 신이 난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어린이들을 보다 문득 마주한 질문. 나는 어떤 마음과 각오로 아이들 앞에 서고 있나?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어린이들이 저마다의 속도와 방식으로 평화롭게 성장하는 것이다. 반짝임과 눈부심의 순간을 더욱 소중히 지켜주기 위해 나는 가끔은 혼을 내는 교사가 되어야만 한다. 과정에서 아이들이 불필요한 상처를 받지 않도록, 세심히 혼내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내게 주어진 숙제다. 나쁜 선생님이 되고 싶지 않지만, 아이들을 위해 때론 나쁜 역할을 나서서 맡아야 하는 부담과 어려움을 감당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가 되는 길은 여전히 요원하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성장하며 내게 보여주는 꾸밈없이 빛나는 순간들이 곳곳에 보물처럼 숨어 있기에, 나는 보물 찾기를 하는 탐험가와 같이 기대에 찬 마음으로 멀고도 험난한 그 길을 기꺼이 걸을 테다. 때론 울고, 웃으며 무럭무럭 성장하는 어린이들과 함께 끝없이, 무한히 성장할 테다. 혼남을 계기로 학교생활에 임하는 태도를 고치고 나름대로 노력하며 애쓰고 있는 두 어린이들에게 조만간, 선생님은 너희들의 노력을 알고 있단 이야기를 건네야겠다는 작은 다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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