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글샘 Oct 04. 2024

그 아이가 빛나는 이유

세심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어린이를 보는 기쁨



당황스러웠던 첫 만남


    올해 우리 반에는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어린이가 한 명 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준우(당연 가명이다.). 준우는 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누비는 듯한 아이이다. 유독 어리게만 느껴졌던 올해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서도 준우는 눈에 띄었다. 교사나 학생이나 긴장하는 새 학년에서의 첫날. 준우는 뭔가 남다른 모습과 행동으로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긴장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서였을까? 눈썹을 한껏 치켜올리고, 세상 가장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준우 때문에 나는 왠지 초조해졌다. 준우가 어떤 아이일지 궁금도 하고, 조금은 걱정도 됐던 시업식 날의 오후를 잊지 못한다.


    준우를 지도해야 하는 상황은 종종 생겼다. 준우는 내가 교과서 몇 쪽을 펴라고 안내하고도 한참 후에 갑자기 "선생님, 몇 쪽이라고 하셨죠?"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수업이 시작했음에도 본인이 하고 있었던 종이접기를 이어서 하거나 본인이 읽던 책을 놓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대단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큰 장점이지만, 여럿이 함께 생활하며 꼭 배워야 할 내용을 배우기 위한 학교에서 준우의 행동은 자칫 잘못하면 단점으로 승화되기 쉬웠다. 그래서 나는 자꾸 준우에게 신경이 쓰였다.


차츰 드러나는 그 아이만의 매력


    그런 준우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뀌었던 사건이 있다.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과학 시간에는 '동물의 한살이'를 배우며, 교실에서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직접 기르고 관찰한다. 우리가 매일 정성을 들여 기르는 우리 교실 속의 배추흰나비 애벌레도 물론 소중하지만, 교실 밖의 다른 생명의 무게도 다를 바 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생명 존중을 주제로 수업을 하던 날이었다. 그날 나는 아이들에게 주변의 작은 생명도 우리와 똑같이 소중하다는 당연하고도 자명한 진리를 가르칠 계획이었다. 초등학교에서의 수업은 조금 웃긴 점이 하나 있는데, 분명 내가 계획한 수업 내용이 있음에도 아이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새로운 경유지를 들르게 된다는 점이다.


    그날도 그랬다. 분명 나는 명은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똑같이 소중하다는 점을 가르치고, 주변에서 생명존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누던 중이었다. 한창 호기심 많을 나이인 열 살, 아이들의 경험을 나누고 여러 질문들에 답하다 보니 왠지 모르게 수업은 '길고양이 학대 뉴스' 이야기로 흐르고 있었다. 우리 학교 옆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그 공원에 붙은 고양이 학대 금지 현수막을 본 어느 어린이의 질문 때문이었다. 뉴스에도 나온 이야기이고, 고양이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생명이기도 하니 나는 어린이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급히 뉴스 영상을 검색해 수업 자료로 활용했다.


    그때였다. 준우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모습으로 분노했다. 못된 마음을 먹고 길고양이 새끼를 학대하고, 길고양이들을 괴롭히는 어른들을 마주한 준우는 잔뜩 흥분하여 벌게진 얼굴로 내게 말했다. "아니, 선생님. 저기 뉴스에 나온 어른들은 바보예요? 도대체 왜 소중한 생명을 저렇게 괴롭히는 거예요? 고양이도 귀엽고, 새끼 고양이는 보기만 해도 더 귀여운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저런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모두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세상에서 가장 큰 벌을 줄 수는 없어요?" 그렇게 말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은 준우는 격앙된 감정을 어쩔 줄 몰라 더 안절부절못했다. 준우가 표출한 감정은 '말 그대로' 분노였다.


    나는 그런 준우에게, 어린이가 모두 같은 어린이가 아니듯 어른 역시 모두 같은 어른이 아니란 사실을 설명하며 준우를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안타깝고 부끄럽지만 세상에는 어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어른도 있단 사실을 설명했다. 고양이가 그렇게 된 것은 선생님도 너무 마음이 아프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주변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고 보호하는 일이란 사실을 짚었다. 나아가 뉴스에 나온 나쁜 어른들은 분명 경찰에 체포되어 벌을 받게 될 거라 말하니 준우는 차츰 진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매일의 작은 기쁨


    그 일이 있은 후에 나는 준우를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준우에게 관심을 갖고 여러 날에 걸쳐 유심히 보니, 준우는 그 누구보다 감수성이 빛나는 세심한 어린이였다. '느림'의 미학이라는 내 글의 주인공이었던 '상현이'처럼 느렸지만, 준우가 느린 순간은 오로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깊이 탐구하는 순간뿐이라는 사실도 발견할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면 축구나 미끄럼틀 타기와 같은 놀이가 아닌 흙 파기와 생태 탐구에 열중인 준우. 급식에 간혹 요구르트 병이 나오면 누구보다 좋아하며, 그 병을 소중히 가져다가 모래 놀이에 활용하는 준우. 종이 접기를 잘하고, 좋아하며 곤충 접기 등과 같이 어려운 종이 접기에 도전하여 성공하기를 즐기는 준우를 보는 일이 어느새 일상의 작은 기쁨이 됐다.


    생각해 보면 준우는 늘 누구보다 많은 것을 느끼고, 무언가를 받아들임에 있어 본인의 기준이 분명한 아이였다. 아이들에게 오일 파스텔이란 새로운 도구를 소개한 후 미술 수업에 활용했던 어느 날을 떠올려 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크레파스와 비슷하지만 색이 더 다양하고 밀도 높은 오일 파스텔을 좋아했다. 서로 다른 색을 섞고, 쌓으며 내가 제시하는 예시 작품과 얼추 비슷한 작품을 완성해 낼 수 있도록 해 주는 마법 같은 도구인 오일 파스텔에 열광했다.


    하지만 준우는 조금 달랐다. 준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와서 오일 파스텔이 싫다고 했다. 선생님이 보여준 예시 작품은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데, 자신이 그린 그림은 그에 비교하면 형편없어서 조금 화가 난다고 했다. 그에 나는 준우에게 우리가 오일 파스텔을 처음 써 보는 것이기에 처음부터 예시 작품처럼 멋진 작품을 완성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준우가 완성한 오일 파스텔 작품을 슬쩍 보니 오히려 다른 아이들의 작품보다 완성도가 있었기에 나는, 준우에게 선생님은 준우의 오일 파스텔 작품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나의 말은 결코 준우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준우는 그럼에도 자신의 작품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새로운 종이를 받아갔다. 나의 눈은 자연스레 준우를 좇았다. 준우는 열심히 작품 활동에 임했지만, 이내 완성된 두 번째 작품 역시 준우의 기준을 충족하진 못했다. 준우의 얼굴이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점차 심각해지던 중, 나는 문득 준우의 마음이 언젠가 어렸을 적 나의 마음과 같단 사실을 깨달았다. 감수성이 풍부한 준우, 마음이 말랑말랑하고 조그마한 것들에 쉽게 움직이는 준우. 자신만의 기준이 높기에 어쩌면 아름답지 않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들이 싫기도 할 준우에게서 나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다.


    준우에게 필요한 것은 오히려 단호하고 정확한 선이었다. 준우의 기준이 너무도 높고, 좁기에 그 기준을 낮추고, 넓혀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나는 직감했다. 나의 예상대로 준우는 두 번째 작품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내게 다시 나왔고, 나는 준우에게 새로운 종이를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예시 작품은 오일 파스텔을 우리보다 몇십, 몇 백 번은 더 많이 만져보았을 전문가의 작품임을 강조했다. 예시 작품의 멋짐은 선생님도 이해하지만, 작품을 있는 그대로 따라 하는 것보다 나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것이 더 멋진 일임을 짚었다. 준우는 금세 나의 말을 이해하고, 자신의 작품을 조금 더 보완해 보겠다 했다. 그날 준우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멋진 작품을 완성하여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 준우의 성장이 마치 내 자식의 성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기쁘고 값지게 느껴졌다.


반짝반짝 빛나는


    돌아보면 교실에서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열심히 살찌우고, 번데기 과정을 잘 지나 나비로 날려 보내는 두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 반 어린이들 중 배추흰나비 애벌레에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인 건 준우였다. 무사히 변태를 마친 배추흰나비들을 축하하고, 이름을 지어 불러주며 응원과 함께 날려 보내주는 시간을 가장 기다리는 것도 준우였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순간들 속에서도 준우는 자신만의 온도와 색깔로 빛나고 있었다.


    학교에 오던 중 바닥에서 크고 기다란 지렁이를 보았다며 기뻐하고, 점심시간에 놀이터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새로운 곤충을 보았다며 신기해하는 준우가 있어 나의 일상도 빛이 났다. 어느 날엔가 준우는 등교하다가 어제 우리가 날려 보내줬던 배추흰나비인 '하양이'와 똑같이 생긴 나비를 봤다고 했다. 나는 그 나비가 부디 하양이가 맞기를 바랐다. 이토록 빛나는 준우를 만나 기쁜 순간이 많기에, 하양이도 특히 자신에게 애정을 쏟았던 준우를 기쁘게 해 주려 일부러 준우를 찾아온 것이길 바랐다.


     여름 방학을 보내고 준우가 가족과 함께 체험학습을 다녀왔던 다음 날, 책을 읽는 국어 시간에 준우는 대뜸 내게 나와서 손바닥을 내밀었다. 준우가 내민 손바닥에는 아주 작은 도토리 열매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도토리를 내민 준우의 얼굴에는 세상에서 가장 뿌듯한 표정이 가득했다. "와, 준우야. 가족여행 갔다가 주운 거야? 이렇게 작고 귀여운 도토리는 선생님도 처음 본다." 나는 준우에게 속삭였다. 준우는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 얼굴을 끄덕였다.


    수줍음이 많고 세심한 준우가 도토리를 주워서 학교에 가져오기까지 얼마나 마음을 썼을까. 도토리를 내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수업 중에 내게 나와 손바닥을 내민 준우의 행동에 왠지 모를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면 아마도 준우가 도토리를 내게 주고 싶어서 용기를 낸 것도 같은데, 그날 나는 준우의 손을 감싸 주먹 모양을 만들며 도토리를 손에 꼭 쥐어줬다. 이건 아주 소중한 도토리니, 언제까지고 잘 간직하란 말을 덧붙였다. 준우는 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토리를 쥔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세상 가장 환한 미소를 보이며 자기의 자리로 들어갔다.


    준우가 주는 크고 작은 감동은, 준우가 나의 품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 모래 장난을 하느라 손이 더러워져도, 때론 옷을 버려 꼬질꼬질해져도 준우는 반짝반짝 빛이 난다. 준우가 눈 부시게 빛이 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준우가 더 잘 알았으면 좋겠다. 준우를 생각하다가 문득 올해 맡은 어린이들과 나의 궁합이 썩 좋지 않다고, 앓는 소리와 함께 힘든 기색을 보였던 것을 반성해 본다. 이토록 귀한 빛으로 반짝이는 어린이를 만났으면서, 엄살이 심했다.



이전 08화 혼내는 사람의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