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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Oct 27. 2024

작은 것들을 위한 시(詩)

학교 안의 모든 작은 것들에게 보내는 아주 작은 찬사



초등학교 안의 작은 것들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을 마주하며 가장 처음 느꼈던 감정은 '생경함'이었다. 어린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작았었나? 내가 어렸을 때도 이렇게 작고 어렸을까?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내 기억 속 나의 어린 시절에서 어린이였던 나는 나름 의젓하고 어른스럽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잘못되었나 싶어 조금은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게 아주 잘못된 기억이며 또 잘못된 일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나는 서서히 깨달을 수 있었다.


    작은 것은 작은 대로 아름답다. '어린이'라는 낱말은 그 얼마나 솔직하고 투명하며, 아름다운지. '어린 사람'인 어린이가 작은 것은 당연하다. 어린이는 자신의 작음에 관계없이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소중하다. 어린이는 어린이다워야 하고, 어린이다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어린이였던 시절에는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가 요즘과는 달랐다. 나는 나도 몰랐던 그 사실_내가 충분히 어린이다울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사실, 을 아이들을 보며 뒤늦게 깨달았다. 얼마간은 억울했지만 내가 하지 못한 몫까지 다하는 양, 저들의 어린이다움을 만끽하는 아이들을 가까이서 보며 대리만족과 치유를 경험하기도 했다.


    어른은 자신이 어린이였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작고 여렸었는지, 손과 발이 얼마나 작으면서도 야무졌는지, 아주 사소하고 작은 일에 작은 마음이 얼마나 기뻤고, 슬펐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러한 망각은 성장을 위한 축복이며 동시에 끔찍한 저주이다. 자신이 어린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빛났던 순간을 기억한다면, 어려운 일을 만나거나 힘들어 주저앉고만 싶을 때에도 생각보다 큰 용기를 낼 수 있을 텐데. 아무리 힘든 순간이 와도 꺾여버리지는 않을 텐데. 아직은 작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작은 마음이 가득한 초등학교에서 생활하며, 나는 작은 모든 것들로부터 위안을 얻고 어느새 그것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작은 것들이 주는 위안


    지난 나의 글(어느 맥시멀리스트 교사의 고백)에서도 일부 언급한 바 있는데, 나의 책상 위는 늘 뭔가가 많다. 특히 모니터를 중심으로는 '작은 것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그저 쓸데없는 물건 모음처럼 보일 수도 있는 작은 것들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아이들이 써 준 포스트잇 쪽지들, 정성스레 만든 종이접기 작품들, 춘식이나 펭귄 또는 토끼와 같은 동물 모양의 클레이 작품들, 주머니 속이나 손 안에서 얼마나 만져졌는지 포장이 잔뜩 구겨진 젤리나 초콜릿 같은 것들.


    그중 가장 작은 것은 준우('그 아이가 빛나는 이유'의 주인공)가 만들어 온 '세상에서 가장 작게 접은 종이 하트'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게 접은 종이 하트는 정말이지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작품이다. 준우의 손에서 가장 작은 새끼손가락의 손톱, 그것의 반의 반 크기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준우가 그 종이 하트를 내게 전해주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여 준우에게 어떻게 이런 작은 하트를 접었느냐고 물었다. 준우는 발그레 웃으며 작은 하트를 만드는 게 본인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니, 선생님 가지시라며 내게 그 하트를 선물했다.


준우가 완성한 세상에서 가장 작게 접은 종이 하트


    처음부터 그 작은 것들을 늘어놓을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내게 그것을 내밀 때 전해지는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예쁘고 소중해서 언제고 볼 수 있도록 잘 보이는 곳에 두려다 보니 그렇게 됐다. 누군가는 내 모니터를 보며 대체 왜 이런 것들을 여기에 두었냐고 힐난하거나, 어쩌면 흉을 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작은 것들이 가진 효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된다면 쉽게 그러지는 못할 것이다. 아이들을 나무라거나 질책해야만 하는 상황이 왔을 때, 그것들을 보면 잔뜩 부풀어 오르려던 마음에서 바람을 뺄 수 있다. 가끔 어려운 일을 마주하거나 막막한 기분이 들어 기운이 나지 않을 때, 그것들을 보면 생각보다 큰 용기를 낼 수 있다. 작은 것들이 주는 위안은 절대로 작지 않다.


작은 것들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에 관하여,


    작은 것들을 그렇게나 사랑한다면서도 나 역시 작은 것들의 의미를 종종 잊곤 한다. 산만하고, 주변 정리가 잘 되지 않으며 어딘가 뾰족한 구석이 있는 민진이('말의 힘'의 주인공)의 작은 마음을 다 헤아려주지 못하는 때가 많다. 작은 것들 사이에서 더 빛나는 준우에게 작음을 향유하는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리코더를 집에 두고 왔다며 종일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을 소희의 작디작은 마음을 보듬어주지 못했다. 작고 여린 마음 탓에 눈물을 자주 보이는 민하에게 '그건 울 일이 아니야.' 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인다.


    그뿐일까. 부쩍 사춘기에 접어든 태도로 삐딱해진 태호, 주변에까지 그 영향력을 끼치려 온통 애를 쓰고 있는 태호를 이해하지 못하고 마음으로 미워하기도 했다. 작은 것들을 대할 때에는 그에 걸맞은 태도로 눈을 낮추고, 몸을 기울여야 하는데 항상 실천하진 못했다. 작은 것들이 언제까지나 작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특히 어린이는 눈 깜빡이는 사이에도 자라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 소중한 순간을 그저 흘려보내는 적이 많았다.


    얼마 전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찾던 중, 올해 초에 찍은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랐다. 모든 아이들의 얼굴에서 앳됨과 아기 같은 느낌이 묻어 나와 아이들의 성장을 새삼스레 인지했기 때문이다. 성장의 과정에 물론 나도 얼마간은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 작은 몸과 마음을 키워 내는 동안 아이들도 각자 나름대로의 성장통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잘했다, 대견하다는 말과 함께 아낌없는 응원을 퍼부어주고 싶어졌다. 아이들이 매일 다니는 학교에서 '오늘의 아주 작은 성취' 하나만 얻어간대도 충분히 대견할 일이다. 당연하고도 명백한 이 사실을 나는 다시는 쉽게 잊지 않으리라.


작은 것들에 대한 아주 작은 찬사


    작은 것들을 떠올리며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은 내게 있어 약속의 순간과도 같다. 작은 손과 발을 가진 아이들, 작은 마음으로 큰 용기를 내어 기꺼이 상처받고 용감히 성장하는 아이들, 작지만 작지 않은 아이들과 세상 모든 작은 것들을 더욱 깊이 사랑하고자 한다. 작은 것들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를 갖추어 결국에는 세상에서 가장 작고 여린 무엇도 기꺼이 보듬을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내일은 통통 튀는 탱탱볼과 같은 민진이의 작은 마음을 기꺼이 헤아려 보리라. 점심시간, 작은 것들에 관심이 팔린 준우의 곁에 앉아 준우의 마음을 빼앗아 간 그 작은 것에 나 역시 마음을 빼앗겨 보리라. 늘 초조하고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은 소희의 작은 마음을 보듬어주리라. 민하가 내일 작은 일로 눈물을 보인다면 그 눈물을 닦아주리라. 그리고 저 역시도 혼란스럽고 복잡할 태호, 아직은 작고 어린 태호의 손을 잡고 작지만 단단한 태호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보리라 다짐한다.


    작은 것들을 사랑하다 보면 작았던 그 무언가가 어느새 훌쩍 커 버린 모습으로 낯설게 날 찾아온대도 역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는지, 혼자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해 본다. 작은 우연들로 인해 작은 것들이 가득한 초등학교에서 생활하게 되어,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함께 해 본다. 이것이 바로 내가 세상 모든 작은 것들에 보낼 수 있는 아주 작은 찬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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