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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Aug 21. 2024

MBTI, 너 언제까지 갈 거니?

초등학교 3학년도 느낌적인 느낌으로 안다



사람들은 왜 MBTI에 열광할까?


    MBTI를 처음 접했던 건 무려 10여 년 전 교육대학교에서였다. 아마도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육학 관련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교수님은 우리에게 MBTI 정식 검사에 응할 것을 과제로 내주셨다. 학생지원센터 같은 교내 시설에서 친구들과 MBTI 검사를 했던 기억은 어렴풋하고, 방대한 문항 수에 놀랐던 기억은 뚜렷하다.


    검사 결과지를 받고 다음번 수업에 들어가니 교수님은 우리더러 같은 성격 유형끼리 모여 앉으라 했다.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인 소그룹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였다(!). 같은 유형의 사람끼리 편히 대화하며 서로 성격이 잘 맞는지 탐색하라며 주셨던 30여 분 간, 나는 홀로 쓸쓸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홀로 앉았다는 말에서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의 MBTI 첫 글자는 볼드체 I이다.) 그러니 당연히 내게 MBTI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MBTI가 이렇게까지 많이 알려질 줄 몰랐다.


MBTI 검사 결과의 이해 (이미지 출처: Maily '마음 헤아리기 참고서')


    사람들은 왜 많고 많은 성격 유형 검사 중 MBTI에 열광할까? 돌아보면 주변에서 성격 테스트, 심리 테스트와 같은 심심풀이 테스트를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길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자신의 이야기를 흥미로워한다. 생각해 보면 그저 그런 테스트들과 MBTI의 다른 점은 '직관성''유연성'에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MBTI의 '직관성'은 검사 결과의 명확함과 이해하기 쉬운 정도(이해용이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성향을 I(내향)와 E(외향)로 나눠보라 했을 때 깊이 고민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S형(감각)인지, N형(직관)인지 대부분의 사람은 이미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MBTI가 E라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외향성을 겪어보지 않아도 알게 된다.


    내가 느끼기에 MBTI의 '유연성'은 자신의 유형을 알기 위해 필연적으로 다른 유형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데에 있다. J형(판단)은 P형(인식)을 신기해하고 이상하게 여길 수 있지만, 적어도 반대 유형의 사람이 자신과 다른 성격 유형을 가졌다는 데에는 공감한다. T형(사고)과 F형(감정)은 너무도 다르지만 F형인 사람과 T형인 사람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서로의 행동에 대해 때론 더욱 깊이 이해하거나 예측하기도 한다. 어쩌면 MBTI 검사의 유행으로 사람들 사이의 갈등이 조금은 줄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얘들아,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아니?


    어느 날인가,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저들끼리 장난을 하며 '야, 너 T야?'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건 요즘 쇼츠 등을 통해 흥하고 있는 일종의 밈(meme)인데, T 유형의 단호함과 냉정함을 비꼬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거기에 욕설을 섞되 순서를 바꾸어 'T발, 너 C야?'라고 말하는 것이 원조인 유행어이다. 그러니 욕설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비속어인 셈이다. 아직은 어린 아이들이 어떤 경로로 그러한 말을 접했을까, 걱정도 되고 성격 유형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아줄 필요가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때마침 학기 말이었고 교육과정에 계획해 두었던 진로 활동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아이들과 간이 MBTI 검사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아이들에게 MBTI에 대해 설명했다. MBTI가 성격 유형 검사의 일종임을 알려주고 성격 유형에 대한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러니 '너 T야?' 같은 유행어를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유행어에서 말하는 'T 성향'을 가진 것은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타고난 '성향'이므로 놀리거나 비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짚었다. 아이들은 그 말의 뜻은 깊이 알지 못하고 별생각 없이 썼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어서 아이들이 아직 성장 중이므로 성격 유형 검사 결과가 때마다 달라질 수 있음을 안내하고, 우리가 함께 해 볼 검사가 '간이 검사'이므로 결과를 너무 맹목적으로 믿지 않아야 함을 함께 강조했다. MBTI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인지 몰랐던 아이들은 그래도 검사를 한다는 사실에 잔뜩 신이 나 빨리 하고 싶다며 흥분했다. 아이마다 태블릿 pc를 주고, 3학년의 수준을 고려하여 나의 컴퓨터 화면을 켠 채 모든 문항의 뜻을 설명하며(성격 유형 검사 특성 상,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낱말이 많았다.) 차근차근 검사를 실시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아이들과 같은 속도로 검사를 진행하고, 모든 문항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MBTI 검사에 참여해야 한단 것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정말 MBTI 검사를 할 요량은 없었기에, 나는 문항을 설명함과 동시에 대충 아무 곳에나 체크를 하며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문항을 넘기기 위해 대충 아무 곳에나 응답을 하는 거니 절대로 선생님을 따라서 응답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얼마나 강조했는지 모른다.


이렇게나 신통한(!) 검사였다니,


    간이 검사치고는 답해야 할 문항 수가 꽤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신의 성향을 알게 된다는 점이 기뻤는지 꽤나 진지한 자세로 열중하여 검사에 임했다. 길고 긴 여정을 끝내고 드디어 마지막 문항에 응답을 완료한 후, 자신의 성격 유형을 알 수 있게 된 순간!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기쁨의 환성을 질렀다. 혹여나 아이들이 자신의 검사 결과를 까먹거나, 리셋해 버리는 불상사가 생길까 걱정이 앞섰기에 나는 검사 결과를 미리 나눠주었던 학습지에 먼저 적도록 지도했다. 모든 아이들이 학습지에 자신의 MBTI 검사 결과를 뜻하는 대문자 알파벳 네 개를 쓰는 동안, 나는 다른 이유로 놀라게 되었다.


    하늘에 맹세코! MBTI 검사에 진지하게 임하지 않았음에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대충 응답했던 나의 MBTI 검사 결과가 실제 나의 MBTI 검사 결과와 같았기 때문이다. 이건 혹시 나도 모르는 깊은 무의식이 가져온 결과인 걸까? 아니면 내가 뼛속까지 IXXX인 사람인 걸까? 놀란 마음을 숨기고 나는 아이들에게 MBTI의 네 가지 영역, 총 8개의 알파벳이 의미하는 바를 각각 설명했다. 그러자 아이들은 마치 용한 무당에게 점사를 보러 온 사람이라도 된 듯(?) 격한 공감과 세상 신기하단 표정으로 나의 설명을 경청했다.

  "선생님! 저 진~짜! E 맞아요!" 혹은 "와~ 선생님 대박이에요! 알고는 있었는데, 결과 보니까 저 진짜 P래요!"와 같은 반응과 함께였다.


    과정과 결과에서 얻은 재미만 추구하는 것은 교육이 아니다.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우리 모두 눈, 코, 입이 있지만 생김새가 다른 것과 같이, 각자가 가진 성격이나 성향 역시 눈에 보이지 않아도 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오늘 검사를 통해 확인한 것이 서로의 다름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임을 짚었다. 아이들은 훨씬 관대해진 눈빛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그때였다.  아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선생님, MBTI 검사해 보니까 정말 재미도 있고 나와 다른 친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아요. 그래서 궁금해졌는데요. 선생님 MBTI는 뭐예요?"


갑자기 벌어진 추리 대회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 아이들이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맞아요, 저도 선생님 MBTI가 궁금해요!', '선생님도 지금 저 화면으로 MBTI 검사 바로 해 보세요!' 등과 같은 말들로 교실이 한순간에 시끄러워졌다. 아이들에게 나의 MBTI를 말해주는 게 맞을지 잠시 고민이 되었다. MBTI를 알려주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그게 뭐라고, 시원하게 말해줘야 하나 하는 마음이 반반이었다.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니 아이들은 더욱 성화였다. '아, 선생님~ 선생님 MBTI도 알려주세요~ 진짜 궁금해 죽겠어요!'


    이에 나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선생님 MBTI가 그렇게까지 궁금하니? 그런데 선생님은 너희들이 너무 궁금해하니까 왠지 더 MBTI를 안 알려주고 싶은데. 그럼 너희가 지금까지 겪은 선생님 모습을 떠올리며 선생님 MBTI를 한 번 맞춰볼래? 맞추면 선생님 MBTI를 바로 알게 되는 거야." 그러자 아이들이 재미있는 게임이라도 하는 양 신이 나서 나의 MBTI를 추리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I(내향)일까, E(외향)일까?" 내가 물었다.

  "선생님은 왠지 E일 것 같아요." 한 여학생이 답했다.

  "야, 아니야! 선생님은! 확신의 I야!" 민진이('말의 힘'에 나왔던 바로 그 어린이)가 볼빨간 얼굴을 하곤 소리로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늘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 앞에선 혼신의 힘을 다해 E처럼 말하고, 행동하려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민진아, 민진이는 왜 선생님이 I라고 확신했을까?" 내가 물었다. 그러자 민진이가 하는 말,

  "제가 I라서 아는데요. 선생님은 E가 아니에요. 왜냐하면 선생님은 평소에 조용한 걸 좋아하구요. 뭔가 차분한 사람인 것 같거든요. 우리 학교 선생님 중에선, 예를 들면 체육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E예요."


    내가 E일 것이라 추측했던 아이들은 민진이의 말에 하나, 둘 수긍하기 시작했다. 인간 E 자체인 체육 선생님까지 예로 드니, 모든 아이들이 '맞아', '그렇네!' 하며 '선생님 MBTI는 I로 시작해요!'라고 입을 모아 외쳤다. 영혼까지 끌어가며 E인 척하려 했으나 나의 노력은 쓸모가 없었구나, 하는 허탈한 마음은 잠시, 민진이와 아이들의 통찰력과 MBTI의 정확성(?)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아이들은 결국 나의 MBTI를 알아냈고, 지금껏 본 적 없는 모습으로 기뻐했다. 심지어 유난히 관찰력이 좋은 민호(가명이다.)는 '선생님! 선생님이 아까 문제 설명하면서 아무렇게나 체크했을 때 나왔던 결과와 원래 선생님 MBTI가 똑같아요!'란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이렇게 예리할 수가!)


끝나지 않는 MBTI 이야기


    진로 수업의 도구로 MBTI를 활용한 것은 괜찮은 선택이었다. 내가 특정 성격 유형을 설명하며 우리 반의 누가 이 유형에 해당할까? 물으니 꽤나 정확한 답변들이 나왔다. 내가 묻는 성격 유형에 해당하는 친구를 추측하되 그렇게 생각한 까닭까지 발표해야 답을 맞힌 것이라 했더니, 놀랍게도 모두 친구의 장점에 집중하며 서로의 MBTI를 추측했다. 각 성격 유형 별로 장점과 단점이 있음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서로 MBTI를 물으며, 각자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찾았다. 시키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그 부분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까지 함께 고민했다. 거창한 계획은 없었는데 어쩌다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학생 주도형 수업'에 성공한 셈이다.



    나는 아직도 가끔 궁금하다. 아이들은 어떻게 나의 MBTI를 맞춘 걸까? MBTI가 너무도 잘 설계된 검사인 걸까, 아이들이 나를 잘 파악한 걸까? 이도 저도 아닌 '집단지성'의 힘인 걸까, 아니면 그저 우연의 일치였던 것뿐일까? 여름 방학을 마치고 온 지금도 우리 반 아이들의 주된 대화 주제는 MBTI이다. 쉬는 시간에 앉아있으면 '너는 J니까 그럴 수 있지.', '야, I인 사람은 그런 게 싫을 수도 있잖아~' 같은 말들이 심심찮게 들려와 나를 웃게 한다. 그러니 궁금할 수밖에. 초등학교 3학년도 열광케 하는 MBTI 너, 도대체 언제까지 갈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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