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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샘 Aug 29. 2024

이별을 마주하는 우리의 자세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서 우리는,



방학 끝 학교 이야기


    짧았던 여름 방학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2학기가 시작되었다. 방학을 잘 보냈다는 징표라도 되는 양 구릿빛으로 건강하게 익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니 새삼 반가운 마음과 함께 다시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적으로 이젠 정말 딸린다, 할 때쯤 여름 방학이 오고, 이제 더는 못하겠다! 할 때쯤 겨울 방학이 온다. 한 가지 희한한 게 있다면, 방학이 끝나는 건 싫지만 개학식날 아이들을 만나면 '내가 그간 이 아이들을 나도 모르게 보고 싶어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나름대로 무탈하고 즐거운 방학을 보내고 온 아이들의 얼굴은 묘하게 빛이 나고, 왠지 즐거워 보기만 해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다시 힘을 내어 2학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2학기의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우선 1학기보다 수업 일수가 짧다. 물론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2학기는 대개 1학기보다 순수한 수업 일수로 10일 정도가 더 짧다. 배워야 할 교과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에, 2학기는 보통 1학기보다 좀 더 바쁘고 빠르게 돌아간다. 한 학년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큰 임무 역시 2학기에 주어진다. 1학기 때는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를 탐색하고, 서로 익숙해지는 데에 주로 노력을 한다면 2학기는 좀 다르다. 졸업식, 종업식과 같은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하는 큰 행사들까지 더해 2학기는 한마디로, 정신없이 바쁘다.


교장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


    공공기관인 학교에서 구성원들은 매 학기를 기준으로 인사이동을 한다. 누군가는 만기를 채워 이동을 해야만 하고, 누군가는 명예로운 퇴임을 하기도 한다. 물론 계약 기간이 만료되어 아쉬운 인사를 나눠야 하는 때도 있고, 정년을 맞이하여 학교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리 학교에는 이번 8월 말을 기준으로 정년 퇴임을 맞이하는 교장선생님이 계신다.


    교장선생님과 나는 조금 인연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개 학교에서 연달아 함께 근무를 한 인연이다. 이동 시기와 임지를 함께 정하고 옮긴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됐다. 교장선생님은 내가 좌충우돌하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시절부터(물론 지금도 많이 배워야 하고, 그러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 경력이 적었던 시절을 의미한다.) 나름 중견 교사가 되어 부장 역할도 어렵지 않게 하게 된 지금까지 나의 성장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본 분이다. 첫 부장 단추도 교장선생님의 임명과 함께 꿰었고, 교장선생님의 진심 어린 격려와 여러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으니 이는 인연이 맞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배운 점이 많지만, 그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따뜻함'의 미덕을 꼽을 것이다. 교장선생님은 내가 보거나 들었던 다른 관리자들과는 다르게(?) 따뜻한 마음과, 온화한 성품 그리고 넓은 포용력으로 주변에 영향을 끼쳤다. 관리자로서 후배 교사에게 꼭 해야만 하는 질책을 세상 부드럽고 온화하게 하고서, 여러 날을 두고 곱씹으며 편치 않으셨던 교장선생님을 가까이서, 그것도 여러 번 본 적 있다. 교장선생님의 그러한 성정을 알기에 나는 교장선생님 앞에서 마음 편히 까불기도 했고,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교장선생님껜 좀 죄송하지만(!) 하늘에 맹세코, 교장선생님을 어렵게 느껴본 적은 없다.


인생은 늘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지


    그런 교장선생님이 퇴임을 하신다. 교장선생님의 퇴임을 나는 사실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았다.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이 언제 우리의 의도였던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아주 가볍고 사소하고 때론 얄궂기까지 한 우연의 결과였을 뿐. 생리가 그런 이 바닥에서 때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려니 생각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2학기 초, 교장선생님의 퇴임에 대해 깊이 생각할 시간과 마음적 여유도 부족했다. 교장선생님의 퇴임식 직전까지도 그랬다.


    퇴임식 날 아침, 교장선생님의 퇴임을 축하하며 송사를 하겠다고 나섰던지라 나는 나름의 예의를 갖추어 예쁜 원피스를 꺼내 입고 옷에 어울리는 (평소엔 잘 신지 않는) 샌들힐을 신었다. 교무부장님과 함께 교장실 문을 열고 아침 인사를 드리러 들어갔다. 우리에겐 일종의 아침 루틴과도 같은 것이었다. 교장실에 들어서자 교장선생님은 내 차림새를 보곤, "뭐야~ 새신부야? 오늘 왜 이렇게 예뻐?" 하셨다. 나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장난스러운 말투로 "마지막이잖아요. 예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 드리려구요." 했다. 그러자 교장선생님이 하시는 말. "마지막이란 말, 하지 마. 눈물 나려고 해." 그러며 정말 금세 눈시울을 붉히셨다.


    교장선생님의 눈물에 당황한 것도 잠시, 어쩌면 이따 송사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단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본래 눈물이 많은 나는, 한 번 눈물샘이 터지면 쉬이 그치질 못한다. 퇴임식은 40년이 넘는 긴 세월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보냈고, 그 긴 시간을 큰 탈 없이 잘 지나오신 교장선생님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이다. 분명 축하할 일이고, 어쩌면 부럽기까지 할 일이니 분명 웃으며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릴 작정이었다.


    그런데 누가 봐도 신경 쓴 옷차림으로 많은 사람 앞에 서서 눈물 콧물 범벅 찌질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하니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제2의 '슬픈 졸업식' 사태를 만들면 안 되는데!) 평소 까불기는 또 좀 까불었나. 이건 마치 반에서 가장 까불었던 아이가 졸업식 날 펑펑 우는 꼴이다. 저리 울 거면 평소에 좀 더 잘하지, 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상황이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울지 않으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오늘만큼은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틈틈이 내가 쓴 송사를 열 번도 넘게 보고 또 보았다. 눈물이 날 것 같은 부분은 부러 담백하게 고치고, 괜히 심심한 웃음 포인트들을 곳곳에 넣기까지 했다.


눈물겨운 작별 인사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수업을 시작하여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정신없던 와중에 퇴임식에 대한 걱정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덕분에(?) 나는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들을 하교시킨 후, 퇴임식장을 꾸미고 이런저런 준비와 점검을 할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송사는 이미 여러 번 읽어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포인트는 모두 수정했고, 심지어 웃음 포인트까지 여기저기 숨겨두었으니 자신이 넘쳤다. 거기에 더해 전혀 계획적이지 못한 성향 탓으로 소품으로 쓰려했던 대형 풍선을 직전까지 빠듯이 불고(왜 이럴까 정말), 만들어 영상이 있나 확인하고, 놓고 물건을 챙기다 보니 슬플 겨를은 더욱 없었다.


    식이 시작되고 나서도 분명 괜찮았다. 나는 교무 보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 했기에 이것 세팅하랴, 영상 틀랴, 화면 켜랴, 끄랴, 바쁜 와중에 교무부장님이 하시는 웃긴 멘트에 배를 잡고 여러 번 웃기도 했다. 그간 교장선생님을 담은 사진을 수소문해 나의 서툰 솜씨로 만든 영상을 틀 때까지도 정말 괜찮았다. 심지어 귀여운 후배가 나의 앞 순서로 송사를 낭독할 때까지도 그랬다. 후배는 자꾸 눈물을 훔치는 교장선생님께 미소를 보이며 중간중간 '울지 마세용~~' 하며 애교스런 멘트를 날렸고, 그 모습에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웃었다.


    문제는 앞에 나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교장선생님이 우신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송사의 제목을 읽는 순간, 눈물을 보이는 교장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친 바로 그 순간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시작부터 이렇게 처참히 무너지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자신 있게 숨겨두었던 웃음 포인트를 황급히 보아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웃기려고 썼던 대목들이 더 슬프게 다가와 나는 오열을 하고 말았다. 무슨 대작가도 아니면서, 사람들을 웃기겠다고 자기가 작정하고 쓴 글을 엉엉 울면서 읽는 이런 블랙 코미디언이 또 있을까.


    결국 나는 계속해서 눈물샘과 싸우느라 송사를 잘 읽었는지, 어쨌는지 알 수도 없게 정신없이 송사 낭독을 마쳤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긴 했다. 중간중간 사람들이 웃었던 기억은 희미하지만, 사람들을 웃기려던 나의 의도가 잘 먹혔는지도 알 수가 없게 울었다. 그 와중에 '교장 선생님이 앞에서 자꾸 우셔서 저도 눈물이 나는데, 저 그냥 뒤돌아서 읽으면 안 될까요?'라는 세상 말도 안 되는 말을 하고, 교무부장님께 '네, 안됩니다.' 하고 거절당했던 기억만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지는 바람에 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내가 미쳤지. 도대체 왜 그런 말이 나왔을까? 만약 된다고 하면 정말 뒤돌아서 읽을 생각도 아니었으면서. 생각 좀 하고 말할걸. 부끄럽고, 부끄러웠다.


꼭 쿨해야만 하나? 때론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금 평정심을 찾은 지금, 나는 생각한다. 물론 울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간 교장선생님과 함께한 시간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40여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온 선배님을 보내는 일은 분명 기쁘면서도 아쉽고, 슬프기도 한 일이다. 아이들에겐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매일 강조했으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나의 눈물댐은 울면 안 된다는 생각에 더 걷잡을 수 없게 터졌던 건지도 모른다.


    교장선생님께 썼던 송사의 일부를 끝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인생 2막, 새로운 챕터를 열게 된 교장선생님께 오늘은 웃으며 응원의 마음을 보낼 테다. 교장선생님, 늘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생략) 한창 이 일이 싫어 어리고, 철없고, 무모했기에 늘 관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20대 중후반의 제게도 교장선생님은 늘 관대하셨지요. 그래서 교장선생님의 퇴임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교장선생님의 퇴임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슬픈 마음보다 부러운 마음이 더 큰 것도 같아요. 정년을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겠단 최근의 뉴스를 본 후, 부러운 마음이 더 커진 것도 같습니다. 교장선생님, 정말로 부럽습니다! 다시는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으며 명예롭게 퇴임을 하신다는 사실이 부럽습니다. 이런 결말을 맞이하기까지 교장선생님은 그간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셨을까요?


    잠시 교장선생님의 과거를 상상하며 시간 여행을 떠나봅니다. 20대 초반의 앳되고 앳된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본 적도 없고, 볼 수도 없음에도 풀꽃 같은 소박함과 여린 마음씨로 아이들에게 모진 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셨을 어린 ㅇㅇ 씨(그 와중에 교장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며 또 까불었다.)가 눈에 선합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학교 일과 가정일에 모두 열심이셨을 교장선생님도 떠올려봅니다. 직장 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며 말 그대로 눈물 나는 경험도 많이 하셨기에, 육아를 하는 후배들에게는 더욱 관대하셨던 ㅇㅇ 씨를 알고 있습니다. 경력이 쌓이고 여러 보직을 맡으며 노련해지신 교장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어려운 일은 내가 할게, 혼자 고민하지 말고 같이 해! 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셨을 든든한 ㅇㅇ 씨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집니다.


    그리고 여기, 교장선생님으로서 교직을 마무리하는 ㅇㅇ 씨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고백합니다. 교사가 된 후 많은 교장선생님을 겪어보지 못한 제겐 ㅇㅇ 씨가 곧 교장선생님이었습니다. 앞으로 만나게 될 많은 교장선생님들 앞에서 제가 혹여나 너무 까불거나, 철없이 굴어 혼나진 않을지... 저는 가끔 혼자 걱정합니다. 만약 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교장선생님 때문이라며 연락해서 실컷 투정 부릴 참이니 꼭 받아주세요.


     이렇게나 많은 분 앞에서 제가 이토록 마음 편히 까불 수 있는 까닭은 모두 교장선생님에게 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우리 학교에 꼭 어울리는 분이셨습니다. 햇살 같은 따스함으로 우리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잔잔히 스미셨지요. 교장선생님께서 늘 강조하셨던 ‘선순환’, 그리고 ‘연대’의 의미를 깊이 새기겠습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께 받았던 따스함을 고스란히 주변에 전하며 생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 부장 수당은 제 돈이 아니라는 가르침 역시 잊지 않겠습니다. 조금 바빠 소홀하긴 했지만, 학년 선생님들과 주변 선생님들께 더 많이 베풀며 생활할게요. 이 작은 약속들을 마지막으로 교장선생님께 인사드리며 저의 송사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ㅇㅇ 씨, 명예로운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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